박양범(제주평화나비 제주대학교지부장)

 

▲ 11.12 민중총궐기를 맞아 서울 대학로에서 청년총궐기 집회가 열렸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광화문으로 행진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가을이 한창인 11월 12일, 청년 총궐기를 준비 중인 대학로의 풍경은 내가 집회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정말 아름다웠다. 특히 바람에 흔들려 떨어지는 낙엽은 제주도에서 여기까지 찾아온 나를 반기는 손길 같았다.

길바닥에는 독한 냄새를 풍기는 은행 열매들이 많이 떨어져 있었는데 평소의 나에겐 단순히 밟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존재였지만, 오늘의 나에겐 매우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이 거리의 은행들이 마치 부패한 현 정권의 추락, 그로부터 퍼져나가는 독한 냄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총궐기가 진행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도로 위 청년들의 모습과 이따금 머리 위로 떨어지는 은행잎은 오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전국 각지에서 하고픈 말을 품고 온 청년들의 표정은 비장해보였다.

그러나 곧 대학생답게 재치 있고 힘찬 구호들과 활기찬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제주도에선 이처럼 전국 학생들이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자리가 거의 없기 때문에 낯설면서도 매우 설레고 기뻤다. 비록 박근혜 정부의 부패를 계기로 우리들이 모이게 된 것이기는 하나, 전국 학생들의 생각을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고 청년들의 목소리를 함께 외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청년총궐기 이후 광화문 방향으로 행진을 하였다.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박근혜 퇴진!’을 함께 외쳤고 행진하는 우리들을 응원해주었다. 박근혜 정부의 반민주적 행태가 국민들을 극한의 분노로 몰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민들은 오히려 가장 민주적인 방법, 절제된 모습으로 행진을 하였고 촛불을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질서정연했던 점이 인상 깊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문득 셰익스피어가 한 말이 생각났다. “피는 피로 씻는 것이 아니라 물로 씻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아무리 독단적인 행동을 했더라도 우리가 똑같은 방식으로 저항한다면 그것은 피를 피로 씻는 행위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민주적이고 절제된 모습으로 저항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의 촛불의 바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행진 후 도착한 광화문 광장에선 본격적인 민중총궐기가 진행되었다. 제주도 인구 보다 두 배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곳에선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외침이 100만 민중의 하나된 목소리로 들렸다.

세월호 광장의 한 가운데에서 수많은 촛불과 함께 있는 이 순간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자신의 귀로 직접 민중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광장정치의 정점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도 총 6만여 명이 집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제주 지역에선 5천 명이 참석했다. 나와 같이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비행기를 탄 사람들 천 명을 빼고 나서도, 5천 명이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목소리를 외친 것이다.

제주도민으로서 정말 벅차고 뿌듯했다. 집회가 끝난 직후의 풍경도 인상 깊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쓰레기 봉지를 들고 집회현장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주워 담고 있었다. 이 순간은 어른인 내가 한없이 초라해보였다. 학생들을 단순히 ‘아이’로 바라보았던 나의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한국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집회로 정부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앞으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물론 그들은 임기가 1년 남은 현 시점에서 내려오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버티려고 버둥댈 것이다.

한일군사보호협정도 다음 주면 가서명에 들어간다고 보도 되었고, 국정교과서도 예정대로 올 해 안에 완성하겠다고 한다. 95%의 국민이 반대하는 정부가 이토록 바쁘게 움직이는 이유는 무엇인 지에 대해 다각도로 고민을 하는 것, 계속해서 그들을 감시하고 문제 제기를 하는 것, 이것들이 대학생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또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민중의 요구를 받들어 하야를 하겠다고 한다면, 그 이후의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맞는 승리의 열매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지난 과거의 역사를 통해 잘 배워 알고 있다. 4·19혁명 이후 박정희의 쿠데타, 6·10민주항쟁 이후 노태우의 집권. 우리는 이미 쓰라리게 경험했다.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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