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이 합작한 초유의 헌정문란사태로 촉발된 국민들의 분노가 29일 저녁 서울 광화문 인근 청계광장의 촛불로 타올랐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최순실을 구속하라”
민중총궐기투쟁본부 주최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촛불”에 모인 3만여 각계 시민들은 거침없이 “하야”, “퇴진”, “탄핵”을 외쳤다. 3년 8개월 간 박근혜 정권의 비정상적 국정 운영과 불통 아래에서 쌓인 울분을 가감없이 토해냈다.
정현찬 ‘백남기투쟁본부’ 공동대표는 “우리 국민의 힘으로 백남기 농민을 지켰듯이 우리 국민의 힘으로 국민 스스로를 지켜내자”고 말했다.
“이 불법정권, 불통정권, 살인정권 몰아내고 우리 국민의 힘으로 제대로 된 나라 한번 만들어 보자. 이제 박근혜는 더 이상 국민들을 고통의 도가니로 몰아넣지 말고 즉시 퇴진하라. 박근혜가 하야할 때까지 우리 모두 촛불 들고 일어서자.”
지난 26일 국회 본청 앞에서 “박근혜 탄핵”을 외치다 연행됐던 한 대학생은 “국회의원들이 지금 할 일은 박근혜를 탄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래 “바위처럼”에 맞춰 몸짓공연을 선보인 대학생들은 다음달 3일 학생의 날을 맞아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겠다고 알렸다.
이화여대 김승주 씨는 “이대생 사이에서는 ‘모난 돌 골라내려 밭 팠더니 고구마는 물론 무령왕릉, 경주 왕궁터가 나왔다’는 말이 돈다”며 “공주님이 다닌다는 말은 들었지만 대통령의 절친 최순실 씨 딸일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총파업 33일째인 철도노조의 김영훈 위원장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성과연봉제가 헌법보다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 사람은 정녕 대통령이었나”라고 되물었다. “전경련의 청부입법 쉬운해고와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공공부문이라도 비틀어서 800억원에 대한 보은을 하려는 사람의 지시는 아닌가.” 최순실이 사실상의 주인으로 드러난 ‘미르-K스포츠재단’에 전경련이 800억원을 몰아주고 그 반대급부로 ‘성과연봉제’를 받아낸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도 삼성 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800억 입금을 완료한 날이 올해 1월 12일인데 그 다음날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노동개혁과 의료민영화를 공언했다고 지적했다. “돈 800억 받고 재벌의 세금 수 조원 깎아주고 이런 거래하는 게 박근혜 정권이다. 이게 나라인가.”
정의당 노회찬 의원은 “대통령이 하야하면 국정공백 상태가 오느냐”고 물었다. 역풍을 운운하며 ‘하야’와 ‘탄핵’을 입에 올리지 않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을 겨냥한 것이다. “대통령이 하야 안해서 국정공백이 오는 것 아닌가.”
울산 동구에서 당선된 무소속 김종훈 의원은 “아직도 사태 파악을 못하는 이 정부는 내일 모레 31일부터 노동자 구조조정을 발표하겠다고 한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겠다고 한다”며 “제발 가만히 좀 계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일 ‘사이다 발언’으로 주목받는 이재명 성남시장도 “대통령이 떠난다고 지금 보다 더 나빠질 수 있나”라고 쏘아붙였다. “더 나빠질 수 없을 만큼 망가졌고 더 위험할 수 없을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뜻에 따라 지금 즉시 옷을 벗고 집으로 돌아가라.”
박근혜 정권이 작성한 ‘문화예술계 1만명 블랙리스트’에 오른 가수 이수진 씨는 “박근혜는 퇴진하라”로 시작하는 ‘훌라송’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불러 참가자들의 열띤 호응을 이끌어냈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 공동대표인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다음달 5일 ‘내려와라 박근혜 범국민대회’가 열린다며 동참을 촉구했다. 다음달 12일에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20만명이 참가하는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린다.
오후 6시에 시작한 촛불집회는 7시 15분께 끝났다. 참가자들은 광교 -> 종각 -> 종로2가 -> 인사동 -> 북 인사마당으로 이어지는 행진에 나섰다.

일부 참가자들은 ‘세월호 천막’이 있는 광화문 세종대왕상 인근까지 진출해 경찰과 대치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7시간 미스테리’가 공공연하게 연계돼 거론되면서 세월호 천막을 찾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과 사회단체들의 모임인 ‘4.16연대’는 다음달 1일 광화문에서 ‘시국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주최 측은 집회에 2천명이 참가할 것이라고 신고했다. 막상 촛불이 켜지자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인파가 몰려 청계광장 일대가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 주최 측도 초반에 2만명, 3만명 등으로 추산하다가 포기했다. 집회 직후, 청계광장에서 100m 거리인 광화문까지 이동하는데 15분 넘게 걸렸다.
(추가, 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