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은 개, 돼지와 같다’,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한다’라는 교육부 고위관리의 어이없는 발언이 전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던 지난 달, <로스앤젤레스 타임즈>도 그 사건을 크게 보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발언은 현 정부가 국민을 대하는 입장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미국 신문이 보기에도 그냥 넘길만한 사건이 아니었나 보다.

21세기에 마냥 거꾸로 가고 있는 대한민국. 정말이지 대한민국 집권층은 국민을 어떠한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인가. 일본의 자위대가 서울 한복판에서 버젓이 기념식을 했고, 국가의 안보와 안위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길인지 단 한 차례의 공청회도 거치지 않고 사드 배치를 졸속 결정해 버리고는 반대의견은 무조건 ‘국론분열’이라 몰아붙이고 있다.

시국이 이러하기에 120여년전 ‘사람이 하늘이다’라고 만인이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세상을 변화시키려했던 동학인들과 그들의 사상이 새삼스럽게 더욱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그것도 유교적 신분질서가 엄격한 조선사회에서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인 만민평등의 사상을 꿈꾸고 실천하기 위해 일어선 사람들. 이 땅의 불평등한 봉건모순과 외세의 침략에 맞서 들불처럼 일어섰던 그들의 목소리가 21세기 현 시점에서 더욱 절실히 메아리친다.

국내에서 열리는 동학집회는 정읍에서 열리는 황토현동학혁명기념제, 신만민공동회 등의 시민참여 행사, 그리고 1893년 보은에서 열린 전국적 집회였던 보은취회를 기념하는 행사가 있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보은취회에 참석했고, 이어서 동학시민대학에서 통일운동에 대해 강연까지 할 수 있어서 더욱 뜻깊었다.

식지 않는 ‘더운 가슴’을 노래하는 동학농민전쟁 유적지

외세에 민족 자주권이 침탈당하고 탐관오리의 폭정이 이어지던 19세기말, 1893년 음력 3월 11일 척양척왜, 보국안민 깃발을 내걸고 보은에 농민들이 결집했다. 사회변혁의 깃발을 높이든 민족사 최초의 대규모 민중집회라고 알려진 1893년 보은취회는 동학혁명의 모태가 되었고 한국의 근대적 민족, 민중운동이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의 보은취회 행사는 19년째 보은에서 해마다 열리고 있는데, 기념제 성격이 짙은 여타 동학행사와 달리 정부지원 없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행사이다. 주최측의 설명에 의하면 ‘취회(聚會)는 모이고 흩어짐이 자유로운 모임’을 뜻하며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모였다 흩어지는 민중 정신을 이어가는 행사라고 한다.

행사 기간동안 야영을 하며 산책, 명상 등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는 ‘들살이’를 기본으로, 락樂풍류마당, 청년토크쇼, 역사맞이굿, 홍익시장, 동학풍류마당, 동학순례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 지난 6월 보은취회 현장답사에서 박맹수 원광대교수가 청소년 참가자들에게 동학혁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정연진]

전봉준의 봉기에 주력한 종래의 연구와는 달리, 2대 교주 최시형이 동학의 전파에 얼마나 광범위하고 지대한 역할을 해냈는지 밝혀낸 동학전문가인 원광대 박맹수 교수에 따르면,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세계 민중운동사에서 동학농민혁명 만큼 강력한 이념과 강인한 조직을 갖추고 수십만에서 수백만에 이르는 민중들이 1년 이상 무장항쟁을 벌인 역사는 일찍이 없었다고 한다.

보은 장내리는 육임소가 설치되어 동학본부의 역할을 했던 곳이고 동학교도들이 탄압을 피할 수 있는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잡은 곳이었다. 1893년 3월 10일부터 4월 5일까지 계속된 장내리 집회에는 충청·전라·경상·경기·강원 등 전국 각지에서 약 2만 3천여 명의 집결해 척왜양운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 일본군과 관군에 의해 2천6백여명의 동학농민이 사살되었다는 보은 종곡리 북실전투의 현장에는 아직도 ‘식지않는 더운 가슴’을 노래하는 시인의 팻말이 있다. [사진 - 정연진]
▲ 북실전투에서 희생된 수많은 동학농민들의 뼈가 뭍혀있다고 추청되는 밭에서 처참했던 북실전투의 결과를 설명하고 있는 박맹수 교수. [사진 - 정연진]

1894년 11월 9일, 동학농민혁명 최대 전투인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후 전봉준은 논산을 거쳐 전라도 태인에서 마지막 전투를 벌이지만 한 달도 못가서 순창에서 체포되고 만다. 이것으로 조선 전역을 피로 물들게 한 동학농민전쟁은 막을 내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꺼져가던 혁명의 불꽃이 마지막으로 타오른 곳이 바로 보은 북실전투이다.

우금치 전투 이후 손병희 부대와 최시형이 이끄는 북접농민군은 12월 5일 무주를 점령하고 청산을 거쳐 12월 16일 보은 읍내를 점령한다. 이들 농민군이 3-4만의 규모로 보은 지역을 함락시킨 뒤 서울로 올라갈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이에 놀란 조정은 충청과 경북 주위의 병력을 모두 투입해 이들과의 전투에 돌입한다.

12월 17일 북실 마을에 주둔 중이던 동학농민군을 향해 일본군과 관군이 선제 기습공격을 시작했고 기습공격을 받은 동학농민군과 쌍방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밤새도록 전개된다. 다음날 아침, 선혈이 낭자한 붉은 눈과 농민군의 시체가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거의 전멸이었다.

이들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초강력 살인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싸운다면 목숨을 보전하기 힘들다는 것이 충분히 예측가능한데도 그들은 기어이 죽음의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을까. 박맹수 교수는 북실전투의 현장에서 순례 길의 학생들에게 묻는다. “동학군은 어째서 그러한 비극적인 결말을 택할 수 밖에 없었는가”, 한번 쯤 생각해 보아야한다.

“자신이 정말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서는 결국 내 앞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라도, 그 길을 택할 수 밖에 없는 때가 있는 것이라고. 특히 후손들을 위해서, 더 나은 미래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그러한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우리 조상들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한다고 박맹수 교수는 청소년 순례참가자들에게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동학인들에게는 죽음이 두렵다기보다 꿈을 포기하는 것이 더욱 두렵지 않았을까. 그들은 비록 죽음을 택하더라도 역사 속에 다시금 산다는 것을 믿었을 것이다. 비굴하게 오래 산 선조들보다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택한 선조들을 후손들이 더욱 자랑스러워할 것이라 여기지 않았을까.

▲ ‘거꾸로가는 동학 123’ 행사 보은취회에서 선보인 한국 전통 신녀의 춤. [사진 - 정연진]
▲ ‘조국통일’은 동학 시민들에게 꼭 빠지지 않는 화두이다. 거꾸로 가는 동학 1.2.3 보은취회에서 참가자들의 손글씨. [사진 - 정연진]
▲ 전국의 동학농민혁명 이야기를 13권의 소설로 출간한 동학다큐소설 시리즈. ‘동학언니들’ 이라고 불리는 여성들이 작가로 참여했다. [자료제공 - 고은광순]

13명의 여성작가들이 참여한 동학에 관한 다큐 소설을 기획하고 출간한 고은광순 선생님에 따르면 동학혁명 당시 본부는 보은과 가까운 옥천과 청산에 있었다고 한다. 수은 최제우가 1860년 창도한 이래 해월 최제우가 처형당한 1898년까지 38년간이나 오랜 기간 수배생활을 하며 강원도, 충청도로 피신하며 포교활동을 했던 해월은 1894년 봉기 이전 2년간 공주취회, 보은취회 등 충청도를 중점지역으로 삼았었다. 보은에서 8도 백성이 한자리에 모인 역사적 사건은 전 백성이 한자리에 모이게 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동학이 결코 일부 지역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국 8도에 골고루 확산되었다는 것을 다시금 증명한 여성동학다큐를 보면 옥천과 청산, 보은 등 충청도 지역이 동학의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3편 중에 6편이 충청도 이야기가 되었다.

동학을 여성의 눈으로 재해석하는 동학다큐소설은 앞으로 두고두고 오랜 기간 인기를 끌며 더 많은 사람들이 동학사상과 동학혁명에 대해 흥미있고 생생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내 안의 하늘, 당신 안의 하늘

누구라도 신분의 고하에 관계없이 수련을 통하여 하늘님과 일체화를 이룰 수 있고 자기 안에 모셔진 하늘님을 체험할 수 있다는 동학의 ‘시천주’ 사상은 수운 최제우에 의해 확립되어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을 통해 실천화되고 뿌리내렸다. 1894 갑오년에는 동학농민혁명에서 조선 민중의 폭발적 에너지를 결집하는 힘으로 성장했다.

동학혁명에서 드러나는 가장 혁명적 사상 중의 하나가 또 유무상자(有無相資, 가진 자와 없는 자가 서로 돕는다)라는 정신이다. 양반 상놈, 적서와 남녀의 차별없이 서로 존대하고 배고픈 자들과 밥을 나누어 먹으며 아픈 자를 고쳐주는 유무상자 정신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단계에 이르러서는 조선 민중 전체를 위한 경제혁명의 중요 원리로 발전되기에 이른다.

동학농민혁명을 연구해온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은 동학농민혁명이 중요한 통일이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동학사상에 대해 남북한 모두 거부감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비록 농민군들이 바라던 반봉건 평등사회 구현과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반침략’ 지향은 당대에 실현되지 못했지만, 동학혁명의 시대정신은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 ‘이 곳에서는 백성이 주인공’ 동학농민군이 실현한 집강소의 자치정치를 표현한 전시물.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자료사진 - 정연진]
▲ 우리나라 평등사상의 뿌리를 동학혁명에서 찾고 있는 전시물.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자료사진 - 정연진]

동학의 평등사상과 경제 혁명사상, 백성이 주인이라는 인식을 시대정신으로 만들 수 있다면, 한국사회가 양극화, 지역갈등, 강대국 개입, 남북 갈등 을 하나 하나씩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니, 한국사회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하에 날로 커지고 있는 부익부빈익빈 불평등 현상으로 신음하고 있는 지구촌에도 동학사상은 희망의 빛이 되어줄 것이다. 동학혁명의 사상을 통일의 밑걸음으로 만들 수 있다면 지구촌에서 환영받는 통일코리아의 비전도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서울과 로스앤젤레스에서 동학으로 통하다

▲ 서울에서 동학시민대학에서 강연을 마치고 참석자들과 함께 의기투합하다. 2016년 6월. [사진 - 정연진]

보은취회에 참가한지 열흘 정도 흘렀을 때 동학시민대학에 초청되어 강연할 수 있는 행운이 있었다. 지난 2년간 신만민공동회와 보은취회에 참가한 사람들로 구성된 ‘동학혁명실천행동’은 ‘우리 시대의 동학인과 만나 인내천 정신이 실현되는 세상을 꿈꾼다’는 취지에서 매달 시민대학을 개최한다. 6월 13일 서울시의회회관에서 ‘보통사람이 주인이 되는 통일운동’을 주제로 강연하면서 수많은 동시대 동학인을 만나고 교감을 나누게 된 것이 큰 기쁨이자 보람으로 남는다.

마침 거의 같은 시기에 로스앤젤레스에서는 AOK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제 1회 미주동학포럼이란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해내외 동포가 동학사상으로 한 마음이 된 느낌이다. 로스앤젤레스의 동학포럼에서는 당대의 역할극이 큰 인기를 끌었다. 동학혁명 시대 인물을 각자가 한 사람씩 맡아 해당 인물의 핵심 메시지를 간략히 발표하는 방식이다.

▲ 지난 6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 1회 미주동학혁명 기념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19세기말 동학혁명 당시의 역할극을 하고 있다. [자료 사진 - 정연진]

 

<동학혁명 역할극> (갑오년 단기4227년 서기1894년)

1. 최제우: 사람이 곧 하늘님이도다. 신비롭고 거룩한 우주의 기운이 몸과 마음을 합일케 하는 매개체와 같은 것이다. 용담 검우의 춤사위는 내 안에 새로운 자아를 발견해 일상 속에서 개벽을 이루어내는 힘이 서려 있도다.
2. 김구: 내가 18세 애기접주로써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선생님과 면담도 했으니 원을 풀었도다.
3. 전봉준: 이대로 지내서야 백성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 나겠는가? 고부 관아를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을 처단하자.
4. 조병갑: 내가 천하의 조병갑이다. 전라도 쌀은 모두 내거다. 다 쓸어서 걷어 오너라.
5. 백성 동학농민군: 탐관오리 횡포를 금지하라. 노비 문서를 불태워 신분제도 철폐하라. 토지제도 개혁 악습 폐지하라. 과부 재혼 허락하라. 폐정 개혁안을 수락하라.
6. 이토 히로부미: 살았다. 정권이 야당의 손에 넘어갈 판인데 잘 됐다. 우리 대 일본군이 조선에 쳐들어가 먹게 되면 정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천우신조이다. 빨리 침공하자.
7. 명성황후: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여라. 조선 관군과 청군이 합세하여 동학군을 쓸어 버려라.
8.김학준: 전라 감사 김학준이다. 전주화약으로 농민군이 자진해산하면 집강소를 설치하겠다.
9. 전봉준: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를 세운 것이 무슨 허물이냐, 나라를 위한 일편단심, 그 누가 알리오.
10. 백성: 일본이 우리를 침략 하려 합니다. 이번에도 우리 농민들이 힘을 모아 일본을 몰아내자.
11. 최시형: 사람이 곧 한울님이니 한울님을 속이지마라.

새야새야 합창 다함께. [각본 - 김현숙]

 

올해 출범한 제1회 미주동학포럼은 미주한인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행사이고, 앞으로 미주에서 더 큰 반향을 이끌어낼 수 있고 새로운 시대를 원하는 해내외동포들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AOK 사람들이 힘을 보탤 것이다.

미완의 동학혁명을 통일의 밑걸음으로

공주 우금치에서, 마지막 전투 현장이었던 보은 북실마을에서, 꿈을 포기하기 보다는 죽음을 택한 동학인들. 그들은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된다. 그들의 못다 이룬 꿈이 아직도 통일조국을 염원하는 많은 사람들 가슴에 살아서 메아리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를 길게 볼 때 하나의 이상이 100년, 150년을 걸려 성취된 예는 분명 존재했고, 그러하기에 우리는 인류의 역사는 진보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동학혁명이 실패한 것이냐, 성공한 것이냐 하는 역사의 평가는 후대인 우리들이 어떠한 선택을 하는가에 달려있다고 본다. 당대로서는 틀림없이 ‘패배한 혁명’이지만 실패한 혁명으로만 남아있지 않게 만드는 것 또한 우리들의 몫이다.

동학혁명의 이상을 오늘날의 시대정신으로 살려내고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 때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라지고 통일코리아가 성큼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내 안에서 하늘을 발견하고 옆 사람에게서 하늘을 발견해 보자. 그래서 저 마다 하늘을 품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동학혁명 정신을 통일시대 횃불로 살려가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부터 할 수 있을까.

로스앤젤레스에서 AOK가 광복과 분단 71년을 기해 기획한 행사인, 70년만에 고향 땅 북녘하늘을 찾아가는 김대실 감독님의 <사람이 하늘이다>(People are the Sky)‘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회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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