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 李敦球 (특임 평론원, 절강대학 한국연구소 객원연구원)
원제 : “新冷战”爆发的五大特征
출처 : http://opinion.huanqiu.com/opinion_world/2016-07/9235545.html
역자 :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


7월 8일은 역사적인 날이다. 동아시아에서는 한국 서울에서 동유럽에서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동시에 장차 세계 대세에 필연적 영향을 끼칠 사건이 동시에 발생했다. 이 두 사건은 혹시 우연의 일치이든, 혹은 우연 중의 필연이든, 어쨌든 간에, 두 개 다 세계 수준 ‘신냉전’의 중요 표지가 될 것이다.

당일 한미양국은 주한미군 사드배치를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이는 미국의 ‘아·태재평형’ 전략이 사전 여론을 조성하여 이제 종심으로 나아가는, 본격적인 추진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는 이 방면에서 한국이 미국의 동맹체계에 기꺼이 깊게 빠져 미국의 전차에 속박되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한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에 대결하고 아울러 동아시아의 전략평형을 파괴하는 것을 서슴거리지 않음을 증명한다. 이는 미국이 조성한 ‘아·태의 작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이미 형성됐음을 상징하고 있다.

같은 날 북대서양조약기구인 나토정상회담이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소집되었다. 나토 비서장인 스토르텐베그는 기자회견에서 조약 구성국의 지도자들은 내년부터 폴란드와 발틱해 3국에 4개 진영의 다국적군 부대를, 곧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이 별도로 통솔하는 군대를 각기 폴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 파견해 주둔시키기로 결정했다고 선포했다. 나토는 이미 분명히 몬테네그로공화국을 받아들여 회원국이 29개 국가나 되었고, 또 우크라이나와 관계를 강화하여 나토와 동반자 관계를 삼기로 명확히 했다. 이같이 나토는 러시아와 군사대치의 색깔을 날이 갈수록 더욱 증가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냉전시대의 군사와 전략 대결이 마치 재현될 뿐 아니라 오히려 갈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다. 7월 12일은 헤이그 국제중재소가 남중국해 중재안을 최종적으로 판결해 내어, 필리핀에 ‘승소’ 판결을 하고 아울러 중국이 주장하는 ‘구단선’을 부정했다. 재판정은 남중국해가 자고이래 중국영토라는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고, 기본 법리도 고려하지 않으면서 경솔하게 재판을 시작했고, 독단적으로 판결했다. 이로 인해 중국 정부와 인민의 강렬한 반대에 부딪쳤다. 이것이야말로 ‘신냉전’의 최신 표현형태다.

이른 바 ‘신냉전’이라는 것은 미국의 ‘아·태로의 회귀’나 ‘아·태재평형’ 전략의 실시에 따라, 미국이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 다방면에 걸쳐 아·태 지역에 대한 개입 증가를 통해(通过) 동맹국과의 연합 및 확대를 이루고, 미국의 전 지구적 패권을 수호하고, 미국경제의 소생을 이루고, 중국의 굴기와 끊임없이 확대되는 영향력을 제어하는 것 등을 희망하는 것을 가리킨다. 동시에 미국이 전략상으로 냉전시기의 적수였던 소련 해체 후 이를 이어받은 러시아를 제압하는 것을 또한 가리킨다.

미국의 ‘아·태로의 회귀’ 전략은 일찍이 2011년 10월에 제출됐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가 이라크전쟁 종결 이후 ‘<외교정책’(Foregn Policy)>라는 잡지에 “미국의 태평양세기”라는 글로 발표·제출한 것이다. “금후 10년, 미국 외교 방략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아·태 지역에 외교, 경제, 전략과 타방면의 개입을 대폭 증가하는 것이다.” 힐러리의 이 글은 미국의 ‘아·태로의 회귀’의 신호탄이었다. 바로 이달 11월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하와이에서 거행된 아·태경제협력기구(APEC) 정상회담에서 이를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 전략으로 정식 제출했다.

‘신냉전’과 냉전은 서로 관련이 있기도 하지만 구별되는 점도 있다. 최소한 다음 5대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 ‘신냉전’과 냉전의 대상과 배역에서 다소 동일하지 않다.

냉전시기. 세계 구조와 격식은 미·소 양대 진영의 대결이었고, 주역은 미·소 양국이었고, 당시 중국은 기본적으로 소련진영에 속했지만 주역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신냉전의 주요 대결은 중·미 양국 사이에 전개되고 있다. 미국이 갑(甲)질하는 세력으로서 중국의 평화적 굴기를 저지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러시아 또한 억지 대상이다. 그렇지만 중국이 그 첫 번째 공격대상이다. 곧 주역의 자리가 바뀐 것이다. 그 근본원인은 중국이 이미 세계 제2위의 대(大)경제체계가 되었고, 중국의 종합실력이 소련 원래의 지위를 대체했기 때문이다. 실력과 지위의 변환이 ’신냉전‘의 주역을 그 변화에 맞게 변화시킨 것이다.

둘째, ‘신냉전’은 냉전에서부터 환골탈태한 모습이다.

미·소 양극의 냉전 격식과 구조가 붕괴된 후는 냉전이 지구상에서 이미 소실된 것을 의미하는 게 결코 아니었다. 사실상, 몇몇 냉전의 ‘종자’를 줄곧 보유하고 있었다. 냉전 종식 후 미국과 러시아는 시종 일정 정도의 전략대결을 지속하고 있는 것에서처럼 말이다. 또한 이와 같이 20세기 70년대 중국은 미국 등 서방국가와의 관계를 개선시켰다. 조선 역시 미국 등과 접촉 및 관계완화를 시도했다.

특별한 것은 소련해체 후 조선은 지속적으로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미국과 관계정상화를 실현시켜, 냉전의 먹구름에서 철저히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미국은 자신의 전지구적 전략 요구 때문에 시종 조선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반도에서는 장기적으로 ‘냉전의 활화석’이 지속되었다. 이 때문에 ‘신냉전’은 미국이 옛날의 냉전사고와 아울러 냉전종자의 기초를 끌어안고 상연화한 데서 도래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셋째, ‘신냉전’은 의식형태(이념—역자)를 기준으로 진영을 삼는 것이 아니고 국가이익과 지역전략의 이익을 더욱 주목하고 중요시한다.

냉전시기는 기본적으로 국가적 의식형태를 기준삼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양대 진영으로 나눴다. 그러나 ‘신냉전시기‘에는 의식형태가 국제관계 중의 지위와 작용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이미 바뀌었다. 각자의 국가이익과 지역전략 이익이 더욱 주목받고 중요한 것이 되었다. 예를 들면 베트남은 여전히 사회주의국가이고 또한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의 중·미·월 3각 전략 관계는 과거의 것과 비교하면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점을 분명 보여준다. 더구나 냉전 초기와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넷째, ‘신냉전’시기 쌍방의 대립은 경합(경쟁과 협력)관계로 표현될 수 있다.

상호 대결 강도는 냉전시기에 비해 좀 낮다. 그렇지만 경쟁은 엄청 더 많은 전략적 층위(层次)를 가진다. 협력은 더욱 더 많은 전술적 층위를 가진다. 냉전시기 대립쌍방은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교류관계를 가질 수 없었다. 혹은 교류가 있더라도 매우 한정적이었다. 심지어는 상대를 봉쇄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신냉전’시기는 대립쌍방이 일찌감치 정식으로 교류를 하고,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의 교류는 때로는 밀접하기도 하다. 심지어 군사안보영역에서조차 적지만 소통과 교류가 허용된다. 특별히 중국과 미국 사이는 더 그렇다. 중·일과 중·한의 경제·무역 영역에서 상호의존도는 아주 높다. 중국과 미국은 국제반테러 등 많은 영역에서 양호한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미·일 등은 중국의 전략적 포위봉쇄 부문에서는 오히려 추호의 모호함도 없이 분명하다. 조선반도에서부터 남중국해에 이르는 C자 형의 선상 도처에서 모두 미·일의 그림자가 깔려있다. 전략적 모순과 충돌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많아지고 또 격렬해지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사드 배치와 필리핀의 남중국해 중재안 사건은 전형적인 경우이다. 그래서 ‘신냉전’시기의 대립은 쌍방이 비록 경합관계(경쟁과 협력)를 병존하지만, 경쟁은 전략적 층위에서 더 많이 나타나고, 협력은 전술적 차원에서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다섯째, ‘신냉전’은 장기적 전략 대치 과정이 될 것이다.

2차 대전 종결에서부터 소련해체까지 냉전시기는 40여년에 달했다. ‘신냉전’의 과정은 아마도 더 느리고 오래 갈 것이다. 그 원인은 ‘신냉전’ 대립 쌍방은 경합관계이기 때문이다. 일정 정도에서는 쌍방의 단기간 내 폭발하는 대규모 전쟁 가능성을 견제할 것이다. 다만 범 대국의 전략방향은 일반적으로 장기성과 안정성을 갖출 것이다. 그래서 ‘신냉전’은 아주 느리고 길고 긴 과정이 될 것이다. 6월 4일 미국방장관 카터는 15차 상그리라대화 회의에서 말하기를 미국의 ‘아·태재평형’ 정책은 단기간이 아니고 아주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이 본란의 특임 평론원으로 절강대학 한국연구소 객원연구원이다. )

李敦球:“新冷战”爆发的五大特征
2016-07-27 15:21:00中国青年报 李敦球
http://opinion.huanqiu.com/opinion_world/2016-07/9235545.html

7月8日是一个历史性的日子,在东亚的韩国首尔和东欧的波兰华沙同时发生了必将影响世界大势的事件。这两个事件或许是偶然的巧合,或许是偶然中的必然,不管怎样,或都将成为世界“新冷战”的重要标志。

当天,韩美两国最终决定驻韩美军将部署“萨德”反导系统,这说明美国“亚太再平衡”战略在紧锣密鼓地往纵深推进,另一方面也说明韩国甘愿深陷美国的同盟体系并绑在美国的战车上,不惜与中俄战略对抗并破坏东亚的战略平衡。这标志着美国打造的“亚太小北约”已经形成。

北约峰会同一天在波兰首都华沙召开,北约秘书长斯托尔滕贝格在新闻发布会上宣布,北约成员国领导人决定从明年起向波兰和波罗的海三国部署4个营的多国部队,美国、英国、加拿大和德国将分别率领派驻在波兰、爱沙尼亚、拉脱维亚和立陶宛的多国部队。北约已明确将接纳黑山共和国为第29个成员国,还明确将加强与乌克兰作为北约伙伴国的关系。北约意欲与俄罗斯进行军事对峙的色彩日益浓重。

冷战时代的军事与战略对抗似乎在重演,而且愈演愈烈。7月12日,海牙国际仲裁庭对南海仲裁案作出最终裁决,判菲律宾“胜诉”,并否定了中国主张的“九段线”。仲裁庭罔顾南海诸岛自古以来就是中国领土的历史事实,罔顾基本法理,轻率开庭,武断裁决,遭到中国政府和人民的强烈反对。这是“新冷战”的最新表现形态。

所谓的“新冷战”是指,随着美国的“重返亚太”或“亚太再平衡”战略的实施,美国希望通过在政治、经济、军事和外交等多个方面加大对亚太地区的投入,联合并扩大盟友,维护美国的全球霸权,推动美国经济复苏,遏制中国的崛起和不断扩大的影响。同时,美国继续在战略上挤压冷战时期的老对手——苏联解体后的俄罗斯。

美国“重返亚太”战略最早于2011年10月提出,时任美国国务卿希拉里在《外交政策》杂志上发表署名文章《美国的太平洋世纪》,提出随着伊拉克战争的结束,“今后10年,美国外交方略最重要的使命之一是大幅增加对亚太地区外交、经济、战略和其他方面的投入”。希拉里的这篇文章成为美国“重返亚太”的先声。是年11月,美国总统奥巴马在夏威夷举行的亚太经合组织峰会上,正式提出美国“转向亚洲”战略。

“新冷战”与冷战既有联系也有区别,至少显示以下五大特征:

一、“新冷战”与冷战的对象和角色有所不同。冷战时期,世界格局主要是美苏两大阵营的对抗,主角是美苏两国,当时中国基本属于苏联阵营,但不是主角。而“新冷战”主要将在中美两国之间展开,以美国为首的势力企图遏制中国和平崛起,俄罗斯也是被遏阻的对象,但中国首当其冲,主要角色易位。其根本原因是中国已成为世界第二大经济体,中国的综合实力取代了苏联原来的地位,实力和地位的变换导致“新冷战”的主角随之改变。

二、“新冷战”脱胎于冷战。美苏两极冷战格局崩溃后,并不意味着冷战就已在地球上消失,事实上一直保留着几处冷战的“种子”,如冷战结束后美国同俄罗斯始终存在某种程度的战略对抗。又如,20世纪70年代中国同美国等西方国家改善了关系,朝鲜也试图同美国等接触并缓和关系。特别是苏联解体后,朝鲜一直努力将半岛停战机制转化为和平机制,与美国实现关系正常化,彻底走出冷战阴霾,但美国因其全球战略的需要始终不给朝鲜机会,使朝鲜半岛长期并将继续成为“冷战的活化石”。因此,在某种意义上可以说,“新冷战”是美国抱着旧的冷战思维并在冷战“种子”的基础上演化而来的。

三、“新冷战”不以意识形态为阵营,更注重国家利益和地缘战略利益。冷战时期基本上是以国家的意识形态为标准划分为社会主义与资本主义两大阵营。而“新冷战”时期,意识形态在国际关系中的地位和作用已变得不再重要,更注重各自的国家利益和地缘战略利益。例如越南仍是社会主义国家,也是共产主义政党执政,但目前中美越三边战略关系同过去相比就显得非常复杂和微妙,同冷战初期相比有着天壤之别。

四、“新冷战”时期双方的对立表现为竞合关系,对抗的烈度或低于冷战时期,但竞争更多属于战略层次,合作更多属于战术层次。冷战时期,对立双方一般没有正常的交流关系,或者交流非常有限,甚至相互封锁对方。而“新冷战”时期,对立双方早已正式建交,在经济、社会和文化等方面的交流或许密切,甚至在军事安全领域也有少许沟通和交流,尤其是中美、中日和中韩在经贸领域相互依存度还很高,中美在国际反恐等诸多领域有着良好的合作。但美日等国对中国的战略围堵却毫不含糊,从朝鲜半岛到南中国海的C型线上,到处都有美日身影,战略矛盾和冲突越来越多,也越来越剧烈,如最近爆发的在韩部署“萨德”和菲律宾南海仲裁案就是典型的案例。所以,“新冷战”时期的对立双方虽然是竞合关系并存,但竞争更多体现在战略层次上,合作更多体现在战术层次上。

五、“新冷战”将是一个长期的战略对峙过程。从二战结束到苏联解体,冷战时期长达40多年。“新冷战”的过程或许更为漫长,原因是“新冷战”对立双方是竞合关系,在一定程度上牵制了双方短期内爆发大规模战争的可能性。但凡大国,战略方向一般具有长期性和稳定性,这就决定了“新冷战”也将是一个漫长的过程。6月4日,美国防长卡特在第15届香格里拉对话会上表示,美国“亚太再平衡”政策不是暂时的而是长久的。

(作者为本栏目特约评论员、浙江大学韩国研究所客座研究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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