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종인 선생이 27일 운명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민자통) 상임의장 류종인 선생이 27일 운명했다. 향년 79세. 유족으로 부인 유치자, 동생 옥용, 영자 씨가 있다.

고인은 오랜 옥고의 후유증과 병환에 시달렸고 이틀전 뇌출혈로 한양대병원에 입원해 이날 오전 8시 45분 중환자실에서 사망했다. 빈소는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 207호에 마련됐다.

'통일애국열사 류종인 선생 민족통일장 장례위원회'는 28일 오후 7시 빈소에서 추도식을 가진 뒤 29일 오전 8시 발인해 벽제납골당을 거쳐 장지인 용미리시공원묘지에 안장할 예정이다.

장례위원회는 이규재 범민련남측본부 의장과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등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고 김호현 양심수후원회 전 회장 등이 호상을 맡았다.

<통일애국열사 류종인 선생 민족통일장 장례위원회>

○ 공동장례위원장: 이규재, 권오헌, 조순덕, 박근창
○ 공동집행위원장: 원진욱, 이정태, 류제춘
○ 호상: 김재선, 김호현
○ 장례위원: 각 계에서 위촉

1938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한 고인은 한국전쟁으로 가족이 남북으로 갈라졌고, 1970년 부친을 만나기 위해 월북하고 돌아와 1971년 국가중앙정보부에 의해 ‘일본 거점 가족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됐다.

같이 구속된 동생은 출소 후 자살했고, 부인은 이혼하고 큰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나는 아픔을 겪은 뒤 20년만인 1990년 출소 2001년 재혼했다.

민자통 상임의장과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민가협양심수후원회 자문위원 등을 맡아 통일운동에 앞장섰지만 고혈압과 콩팥 이상에 심장 부정맥으로 박동기를 달고 살아야 했다.

<통일애국열사 류종인 선생 걸어 오신 길>

1938년 12월 18일 경북안동 부친 류기형, 모친 전재임 사이 5남매 중 둘째로 출생
1958년 단국대 야간부 수학과 입학
1960년 군 제대 후 농협 기업은행 근무
1966년 유신산업사(일본 주끼기계 수입대리점) 설립, 일본 출장 중 총련계 친척들의 연결로 부친생존을 확인하고 편지 왕래 끝에 70년 방북(청진)결정
1970년 전쟁 때 헤어진 부친을 찾아 평양행, 황해도 은율에서 온 부친과 20년 만에 상봉
1971년 6월 중정에 연행되어 4개월에 걸친 혹독한 고문 조사 끝에 '일본거점 가족간첩단사건'으로 구속, 1심 사형 선고
1972년 20년형 확정, 대전교도소로 이감
1975년 대구교도소 이감, 6살 아래 동생과 헤어짐
1990년 20년 형기를 다 채우고 3.1절 특사로 출소, 이후 석재사와 창호지공장, 목재소 등지에서 노동
민가협양심수후원회 활동
1995년 민가협 감사 역임
2000년 모친 별세
2001년 소개로 만난 유치자 님과 새 가정을 이룸
범민련 서울연합 부의장, 민자통 서울회의 의장
현) 민가협양심수후원회 자문위원, 민자통중앙회의 삼임의장,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으로 활동
2016년 7월 27일 오전 8시 45분 경, 오랜 옥고의 휴유증으로 인한 뇌출열로 운명(향년 79세)

<자료제공 - 장례위원회>

(2신 수정 :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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