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양심> 광주.전남협의회 (대표: 정진백)는 지난 5월 28일 평화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한 갈퉁 (Johan Galtung) 교수를 초청해 대화의 자리를 가졌다. 대담자로는 박해광 전남대학교 사회학 교수 겸 5.18연구소장, 정영일 동강대학교 사회복지학 교수 겸 <광주시민단체협의회> 대표, 강위원 <여민동락공동체> 대표가 참여했다.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겸 <남이랑북이랑> 대표가 진행 및 통역을 맡았는데, 이후에 갈퉁 교수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보완했다. 다음은 이재봉 교수와 김효은 ≪아시아문화≫ 기자가 대담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2007년 10월 남북평화재단이 마련한 초청강연회에서 열정적인 강의를 하고 있는 요한 갈퉁 교수. [통일뉴스 자료사진]

 

□ 이재봉: 먼저 요한 갈퉁 교수를 소개합니다. 1930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나 수학자로 시작해 사회학자를 거쳐 평화학자 겸 평화운동가가 되었습니다. 양심적 병역 거부로 감옥에 다녀온 뒤, 1959년 오슬로에 <세계평화연구소>를 세웠고, 1964년 평화연구학술지 The Journal of Peace Research를 창간했으며, <세계평화학회>를 발족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흔히 현대 평화학의 아버지 또는 창시자로 불리는 배경이지요.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유수 대학에서 강의했고, 약 100권의 단독 저서와 60여권의 공동 저서 그리고 150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또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약 150개의 갈등과 분쟁을 중재하기도 했고요.
 
오늘 이 대화의 자리를 마련한 <행동하는 양심>은 김대중 대통령의 정신이나 가르침을 따르자는 단체로 알고 있는데, 갈퉁 교수는 김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습니다. 1970년대 초 김대중 선생이 동교동에서 가택연금 당할 때 갈퉁 교수가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집에 들어가 인터뷰를 했답니다. 그런데 대담을 시작하기 전에 김대중 선생이 집안의 수도꼭지를 전부 틀어놓기에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당국이 도청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라고 했다더군요. 1997년 12월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자 갈퉁 교수가 즉시 저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1998년엔 김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해 20여년 전의 추억을 되살리며 도청의 두려움 없이 많은 얘기를 나누기도 했지요.
 
저는 1990년대 초 갈퉁 교수가 하와이대학교에서 강의할 때 평화학을 배우며 제자가 되었습니다. 2000년 그의 대표 저서 가운데 하나인 Peace by Peaceful Means를 동료들과 번역해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로 출판했고, 2011년엔 그와 둘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관한 책 Korea: The Twisting Roads to Unification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갈퉁 교수와 제 소개가 길어졌는데 가볍고 부드러운 질문부터 시작할까요?

□ 강위원:   저는 요한 갈퉁 교수님을 20여년 전 국내 신문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평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당시 운동의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는 것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관심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 문제에 관심 갖는 것도 쉽지 않은데 노르웨이의 세계적 석학이 어떻게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 관심사 중의 하나인 북한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요한 갈퉁: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아주 호되게 대우받았지만 잘 살아남았기에 남북한 온 민족이 모든 해외의 관심과 지원을 받을 만합니다. 나는 1960년대부터 평화연구와 평화운동에 관심을 갖고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일해 왔습니다.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폭력적인 나라 미국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곳이라 특히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지요. 1972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당시 가택연금을 당하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과 인터뷰를 하면서 한반도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북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라고 하는데, 나는 효도 사상을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아주 근본적인 유교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김-김-김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3대세습을 통해 김일성에 대한 효가 쭉 이어지는 게 아니겠어요? 북한을 3대세습 왕조국가라고 하는데 남한도 비슷하지요. 북쪽에 김-김-김이 있다면, 남쪽엔 박-박이 있으니까요. 남북이 서로 비슷하지만 북한이 더 유교적입니다.
 
둘째,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북한을 계속 적대시하면서 아직까지 북한이 원하는 평화협정과 국교정상화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남한도 거기에 협조하며 경제제제를 가하고 있고요. 특히 남한은 북한의 통치 체제를 반대하면서 같은 형제로서 경제제제를 통해 북녘 동포를 죽이고 있지 않습니까?
 
셋째, 많은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북한이 곧 붕괴될 것이라거나 또는 붕괴되는 중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심지어 며칠 전엔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그렇게 얘기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나는 북한이 붕괴되지 않고 중국의 개혁 개방식으로 나아가리라 생각합니다. 중국이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왔는데, 북한도 그렇게 나아가리라고 전망하는 겁니다. 그런데 붕괴와 관련해 만에 하나 북한이 붕괴될 위기에 처한다면 워싱턴과 서울을 겨냥해 자폭 수준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북한 붕괴는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뜻입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평화협정, 둘째는 미국과의 국교정상화, 셋째는 한반도 비핵화입니다. 이런 북한에 대해 남한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경제 제재를 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붕괴를 추구하는 것이지요. 아주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그런데 강 선생은 왜 북한의 미래에 대해서만 물어보고 남한의 미래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습니까?

□ 이재봉: 여기서 잠깐 북한이 원하는 세 가지에 관해 제가 보충 설명을 하고 싶습니다. 첫째, 평화협정과 관련해 우리는 1950년대의 한국전쟁을 아직도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전 또는 휴전이라는 어정쩡한 상태를 60년 이상 유지해오고 있는 것이지요. ‘호전적’이라는 북한은 불가침조약이나 평화협정을 요구하는데, 세계 평화를 지킨다는 미국은 이에 응하지 못하는 역설적 현상이 빚어지는 겁니다. 급속하게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대외정책 때문입니다.
 
둘째, 국교정상화와 관련해 냉전 시대엔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인정하지 않고 소련과 중국은 남한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냉전이 끝나자 남한은 1991년 러시아와 수교하고 1992년 중국과 수교를 시작했는데, 북한은 아직 미국이나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셋째,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우리 남한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를 ‘북한’ 비핵화로만 받아들이는 겁니다. 특히 중국도 한반도 비핵화를 자주 거론하는데 여기엔 당연히 주한미군의 핵무기를 포함합니다만, 우리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는 북한의 핵무기 포기만으로 왜곡하고 있어요.

□ 강위원: 제가 오만한 것 같습니다. 남한의 현실과 미래는 좀 알 것 같고 북한의 현실과 미래는 세계적인 이슈이기 때문에 선생님의 의견을 알고 싶었는데, 그럼 남한에 대해서도 .....

□ 요한 갈퉁: 남한은 지금 독립국이 아니지 않습니까? 미국에 종속되다시피 너무 의존적이에요. 미국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된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자주적이고 5.18 광주정신을 바탕으로 더욱 더 민주적인 국가로 나아가는 게 바람직합니다. 나는 한국 민주주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광주에 와있는 게 영광스럽습니다.

□ 정영일: 저는 광주 시민사회단체 대표를 맡고 있어서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질문 드리고자 합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한국 민주주의 정치사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걸 넘어서 아시아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도 적지 않게 공헌했습니다. 이에 대해 광주 시민으로서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그렇게 간주하지만 교수님께서는 한국의 정치 상황이나 민주주의의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둘째, 한국의 민주주의가 도약해 나가는 데 우리가 해결해야 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요한 갈퉁: 선생님과 광주시민들은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1980년 5월의 대가는 끔찍했어요. 그러나 남한과 특히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끼친 영향이 대단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는 삼권분립 즉 입법부와 행정부 그리고 사법부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상태입니다. 먼저 입법부와 관련해 지금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볼 때 국민의 대표들이 뽑히는 상황이 바람직합니까? 형식적인 숫자놀음 또는 기껏해야 절반 정도의 지지로 당선되는 데 진정한 대표성을 지닐 수 있을까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러한 민주주의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행정부 차원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너무 반일적이고 반북적입니다. 일본에게 외치는 것은 오로지 사과하라는 것 밖에 없습니다. 상당히 복잡한 이슈이지만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계속 사과만 요구하면서 너무 반일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 같아요. 북한에 대해서는 더욱 강경한 자세만 취하고 있고요. 평화보다는 안보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안보를 통한 평화가 중요한지, 평화를 통한 안보가 중요한지 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또한 남한은 계속 군비경쟁을 일삼고 있는데, 군비경쟁이 어디로 치달을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사법부에 대해선 특별한 내용이 없으니 생략하고, 네 번째 권력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언론매체에 관해 얘기하자면 미국의 영향이 너무 큰 것 같아요. 내가 한국에 머무를 때 읽는 영자신문을 보면 미국에 너무나 편향적인 기사만을 접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미디어가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겠지만 특히 한국엔 미국에 몹시 편향적인 언론 매체가 많은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은 소통이나 투명성인데 언론이 이 역할을 제대로 해줘야 합니다.
 
한국의 다섯 번째 권력기관으로 주한 미국대사관을 꼽을 수 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당시 리처드 홀브룩 (Richard Holbrooke)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광주에 있었습니다. 광주학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요. 한국은 그만큼 미국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요즘은 미국이 일본의 부정적인 측면을 계속 강조하면서 박근혜 정권에 반일감정을 심어주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국이 해결해야 될 과제와 관련해서는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주어진 것을 꼽고 싶습니다. 미국의 전통을 따라 의회제보다 대통령제를 토대로 삼은 것이지요. 미국을 추종하는 게 남한 정치의 가장 큰 문제 같습니다. 남한은 더 자율적이고, 더 독립적이고, 더 자주적으로 되어야 합니다. 미국과 등지지 않으면서 상하 관계에서 벗어나 우호적 관계를 즐겨야 하지 않겠어요?

□ 이재봉: 여기서도 제가 잠깐 끼어들어야겠네요. 먼저 한국의 언론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 때부터 특히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언론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되어왔습니다. 우리 언론역사상 노무현 정부 때 자유 지수가 가장 높았는데, 그 이후 계속 후퇴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미국이 요즘 한국에 반일감정을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저는 거꾸로 미국이 한국의 반일감정을 완화하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봅니다. 작년 말 미국의 압력으로 한일 간에 위안부 협상이 이루어졌듯이,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려고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기 위해서요.

□ 박해광: 갈퉁 교수님의 평화에 대한 개념이나 평화학이라는 학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가 단순히 전쟁이나 폭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모든 갈등이 해결되는 상태를 일컫는다는 점입니다. 굉장히 적극적으로 평화를 추구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각 사회마다 폭력적이거나 평화적이거나 여러 가지 특징들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을 것입니다. 갈퉁 교수님이 보시기에 한국 사회는 얼마나 평화적이고 또는 어떻게 폭력적인가요? 다시 말해 한국 사회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평화와 폭력의 특징이 어떤 점일까요?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비폭력 평화의 방법과 목표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 요한 갈퉁: 한국에서는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 대해 매우 폭력적이었습니다.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대외적으로는 일본에 매우 폭력적인 것을 발견합니다. 가장 큰 특징으로는 남한 내부에 지역 갈등이 항상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한민족에겐 한이 서려 있다는데 이게 국민성의 일부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 한을 공격적으로 표출한 게 북한에서는 핵문제고 남한에서는 일본에 대한 반감 아닐까요? 이러한 한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한국의 강점이 될 수도 있고 약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반도는 과거 오랫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남한에서는 중국에 대한 종속이 미국에 대한 종속으로 바뀌었고, 북한은 중국에 대한 종속에서 독립적으로 변했습니다. 참고로 여기 오기 전에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6자회담과 깊은 관련이 있는 중국인을 만났습니다. 그에 따르면 요즘 중국 고위관리들의 대북 인식이 조금 달라지고 있답니다. 북한을 대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는 것이에요. 북한이 너무 독립적 또는 자주적이라 중국의 영향력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거죠. 개가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계속 두들겨 패면 순응하지 않고 오히려 미쳐버리지 않습니까? 북한이 중국의 압력이나 영향력에 길들여지기보다는 통제하기 어려운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튼 북한은 상당히 독립적인데 남한은 여전히 종속적입니다. 나는 남한도 머지않아 독립적으로 되리라 기대합니다. 특히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바탕으로 좀 더 자주적이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 강위원: 계속 남북관계 이야기가 나와서 이와 연결해 질문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예전에 우리가 민주화운동을 전개할 때 대표적 구호 가운데 하나가 “5월에서 통일로”였습니다. 정권이 바뀌면서 언제부턴가 무슨 얘기를 하면 자꾸 ‘종북’이라고 하는데, 오늘 보니 갈퉁 교수님은 몹시 ‘종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요즘은 지식인들로부터든 운동가들로부터든 북은 자주적이고 남은 미국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정한 완성은 사실 한반도의 온전한 통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희 세대에겐 절실한 염원이었고요. 갈퉁 교수님은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논문을 쓰신 걸로 알고 있는데, 분단 70년의 질곡이 계속되고 있는 현재 남북관계를 평화론적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습니까? 북핵문제 등 남북의 대치와 갈등을 풀고 평화롭게 이행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시겠습니까? 또한 유례없는 긴 분단을 겪은 두 체제의 공존과 통일이 어떻게 가능하며, 이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관계 맺기 방식은 무엇일까요?

□ 요한 갈퉁: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 사이에 있는 게 아니라 북한과 미국 사이에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미국은 북한을 증오하고 북한의 붕괴를 바라며 한반도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통일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주체사상에 따라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자주와 독립을 지키며 붕괴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남한은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합니다. 평화협정과 국교정상화, 한반도 비핵화이지요. 그리고 미국에 대한 종속이 아니라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영광스러운 성취가 바로 그것 아니겠어요?
 
북한은 강하고 매우 자주적이며 유교 근본주의적 국가입니다. 공산주의가 아니라 중국식 사회주의 경제로 나아가고 있고요. 이에 남북은 민족통합을 위해 국경을 열어야 합니다. 그러면 국가연합을 거쳐 어느 날 연방으로 발전되고 미래 언젠가는 한 국가가 될 수 있겠지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그리고 남한이나 북한 둘 다 독재적입니다. 남한은 광주정신을 바탕으로 다시 태어나야 됩니다. 제1의 광주에서 제2의 광주 그리고 제3의 광주로 계속 재생산해야 합니다. 광주를 확산시켜야 하는 거죠. 남한에서뿐만 아니라 북한으로도 확장시킬 수 있어야 되는데, 머지않아 북한에서도 광주정신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북한은 자주적인 국가이기 때문에 광주정신이 더 발현될 수 있을 테고 그러면 더 평화적으로 될 겁니다. 남북에서 광주가 더 확장되면 평화적 공존도 더 잘 이루어지겠지요.

□ 이재봉: 갈퉁 교수는 미국이 북한을 증오하며 북한 붕괴를 추구한다고 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에게 남한은 경멸받을만한 동맹이요 북한은 존경받을 만한 적국이라는 말도 있듯, 미국은 북한을 주적이나 깡패국가로 남겨두어야 합니다.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는 것도 원하지 않고 북한이 붕괴되는 것도 바라지 않을 것이란 뜻이지요. 고고도미사일방어망 (싸드) 배치를 추진하는 것처럼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쉽거든요.

□ 정영일: 갈퉁 교수님은 아까 한국 민주주의에 관해 얘기하면서 언론과 시민사회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셨습니다. 한국 민주화과정에서 시민사회가 이뤄낸 역할과 성과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다양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시민사회가 앞으로 지속적으로 민주화를 추동해 나가려면 어떤 역할을 하는 게 바람직할지 궁금합니다.

□ 요한 갈퉁: 시민사회의 가장 기본적 역할은 서울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력이 지역공동체와 독창성을 지닌 다양한 비정부기구 등으로 분산되도록 이끄는 겁니다. 미국식 대통령제도 아니고 영국식 의회제도 아닌 게 어떨까요? 스위스 지방제를 보세요. 궁극적 권력은 무슨 이슈들에 대해 투표하는 지역공동체 주민들에게서 나오잖아요. 영원한 연립 정부라고 할까요?

□ 박해광: 요즘 한국 사회에 대두되고 있는 현상이면서도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뚜렷한 특징 중 하나가 폭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폭력이 문화적 특징이 되고 있거나 문화적 원인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화라는 게 한편으로는 굉장히 보편성을 띠는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자주성을 옹호하면서 다른 것에 대해서는 배타적으로 간주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문화의 복잡한 성격을 고려할 때 이처럼 증가하는 문화적 폭력을 해소할 수 있는 보편적 원칙이 있는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 이재봉: 지금 ‘문화적 폭력’이라는 전문용어가 나왔는데 갈퉁 교수의 답변을 듣기 전에 청중을 위해 제가 잠깐 소개하는 게 좋겠습니다. 평화학 또는 평화연구에서는 ‘평화’를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모든 종류의 폭력이 없는 상태라고 정의합니다. 분쟁이나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갈등까지 없어지는 이른바 ‘적극적’ 평화라는 거죠. 폭력이 없는 상태를 평화롭다고 말할 수 있는데, 평화학에서는 특히 갈퉁 교수는 폭력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눕니다. 첫째는 인명을 살상하거나 기물을 파손하는 ‘물리적’ 폭력이고, 둘째는 사회 구조에 의해 생기는 불평등이나 차별 같은 ‘구조적’ 폭력이며, 셋째는 전통이나 관습 또는 종교나 이념 등이 초래하는 불이익 같은 ‘문화적’ 폭력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구조적’ 폭력이나 ‘적극적’ 평화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는데, 이런 용어를 만들고 개념을 정립한 사람이 바로 갈퉁 교수지요.

□ 요한 갈퉁: 문화적 폭력을 얘기하기 전에 먼저 한반도에서 자행되는 대표적인 구조적 폭력의 사례 한 가지를 들자면 남한 기업들이 개성공단에 들어가 북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곳 노동자들 월급이 100달러도 안 되었잖아요?
 
문화적 폭력의 대표적 사례는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종교입니다. 종교는 민족문화나 지역문명에 커다란 역할을 끼쳐왔어요. 지구상에 어느 종교든 오로지 평화적이거나 오로지 폭력적인 것은 없습니다. 모든 종교가 평화적 측면과 폭력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기독교가 문제인데 이웃을 사랑하라거나 적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어요. 아무튼 문화적 폭력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면, 종교나 이념 등의 평화적 측면은 기리고 이용하며 그 가치를 높이는 한편, 폭력적 측면은 비판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남한의 적지 않은 기독교도들이 북한의 살아 있는 사람들까지 죽이고 있는 것 같아요. 대북 경제 제재를 통해서 말입니다. 물론 남한의 기독교만 북한에 대해 문화적으로 폭력을 저지르는 게 아닙니다.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한이 기독교를 통해 북한을 비난한다면, 북한 역시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남한을 비난하고 있으니까요. 남북이 서로 상대방에게 문화적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지요. 궁극적으로 문화적 폭력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대화입니다. 현재 남과 북은 대화가 단절되어 있는데, 대화를 지속하면서 상대방을 비난하기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폭력 현상은 없어질 것입니다.

□ 정영일: 광주민주화운동이 지역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안운동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특히 지역운동 차원에서의 과제는?

□ 요한 갈퉁: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지역 차원에서 더 많은 힘을 가져야 합니다. 대외정책 분야에서도 그래야 하고요. 국민투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도 가져야 합니다. 나아가 지역공동체들이 좀 더 자본주의적이기도 하고 좀 더 사회주의적이기도 있는 다른 경제체제도 가질 수 있어야 하고요. 다양성이 국가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거든요.

□ 강위원: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지 벌써 36년 지났습니다. 항쟁의 역사성과 현재성 또는 미래성에 대한 조명은 언제나 광주와 한국의 과제이자 소명입니다. 항쟁의 역사성에 대한 합의는 대체로 공감대를 이루고 있으나 항쟁의 현재성과 미래성에 대해선 여전히 관념적이고 거시적입니다. 5.18 정신의 현재화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 가치에 기반을 둔 정책과 제도로써 구현시킬만한 제안이 있는지 궁금하다.

□ 요한 갈퉁: 무엇보다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서울과 워싱턴의 압도적인 힘에 맞서 인내도 필요하고요. 5.18정신이 다시 발현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남한이 주도권을 갖고 앞장서야 합니다.

□ 박해광: 최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구조적 폭력의 증가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후퇴이기도 한데, 이러한 퇴조의 일반적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요한 갈퉁: 가장 큰 문제는 국가 안에서 그리고 국가들 사이에 불평등이 더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폭력이 늘고 민주주의와 평화가 퇴조하는 일반적 이유는 명백합니다. 시장이 더 자유로워지면서, 시장에 더 많이 투자할 수 있는 더 가진 사람들의 손에는 더 많은 것이 주어지고, 덜 가진 사람들은 더 적게 갖게 되기 때문이지요. 자본주의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들을 세워왔고 잘 작동했습니다. 그러나 더 많이 가진 최상위 계층은 더 많이 갖기를 원하거든요. 초자본주의 (super-capitalism) 또는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입니다. 나아가 그 최상위 계층은 자금력으로 정치인들을 매수하고 행정부와 사법부를 통제하게 됩니다. 민주주의는 이렇게 작별을 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다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 이재봉: 오늘 대담자 세 분이 더 많은 질문과 토론거리를 준비해 오신 것 같은데 시간이 부족하군요. 이미 정해진 시간이 지났지만 방청객 여러분께도 질문 기회를 드리고 싶습니다.

□ 이상래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갈퉁 교수님께서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5월 광주와도 관련 있는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광주가 한국의 민주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에 따라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진전되었다는 판단 아래 이제는 새로운 가치를 정비해야 할 단계에 와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평화와 인권 문제인데, 오늘 인권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어요. 최근 광주에서 인권 체제의 구축에 관한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권 중국이나 북한과 같은 경우 유엔 회원국으로서 인권의 기본적 가치를 인정하지만 정치 외교적으로 논의되면 굉장히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거든요. 그래서 아시아 지역에서의 인권 체제 구축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신지 묻고 싶습니다.
 
둘째, 일본의 정치 상황을 보면 헌법 9조에 따라 국가가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어떤 진보적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군대를 정식으로 보유하는 방향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는 뉴스를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시아 지역의 평화 체제에 상당히 중요한 요소가 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헌법 9조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 요한 갈퉁: 첫째,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셨는데 그 자체가 너무 멋있고 훌륭합니다. 우리가 인권에 관해 얘기할 때 대체로 정치적 인권만 말하는데 경제 사회적 권리도 같이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안보 (national security)가 아니라 인간안보 (human security) 차원의 개인 인권도 중시되어야 하고요.
 
지구상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인 국가 셋을 꼽으라면 미국, 이스라엘, 영국입니다. 신으로부터 선택 받았다는 이른바 선민의식이 가장 강한 나라들이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세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민주적이고 가장 인권을 중시한 국가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너무나 큰 왜곡이요 모순이지요.
 
중국과 북한을 예로 들었는데, 두 나라 모두 개방의 폭이 커질수록 인권 개선이 이루어지리라 전망합니다. 특히 북한이 폐쇄적인데 남북 사이에 항공노선이 개설되면 개방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중국과 대만 사이에는 일주일에 700-800편의 항공 노선이 개설되어 있는데, 남북한 사이엔 항공노선이 전혀 개설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대한항공회사에 평양까지 노선을 개설하라고 시위라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둘째, 일본에서 헌법을 고친다는 것은 참 끔찍합니다. 헌법 9조의 재해석엔 두 가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방어만 하지 공격은 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전수방어’이고, 다른 하나는 집단자위권을 행사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집단자위권은 미국에 의해 조종되고 있습니다.

□ 이재봉: 세계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인 국가가 미국이라는 말에 박수가 가장 많이 나오는 걸 보니 여러분 가운데 반미주의자들이 아주 많은 것 같군요. 갈퉁 교수가 여러분에게 남북 사이의 항공노선을 개설하기 위해 대한항공 앞에 가서 데모하라고 선동했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남북 교류를 하지 않거나 막고 있는 쪽은 기업이 아니라 정권이니까요. 그리고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미국이 조종하고 있다면서 그 배경이나 이유는 얘기하지 않았는데, 미국이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 위협론’을 내세우며 일본의 군대 보유를 위한 헌법 개정을 부추겨왔다는 사실을 덧붙입니다.
 
이제 끝내야 되는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갈퉁 교수의 마무리 발언으로 이 대담을 마치고자 합니다.

□ 요한 갈퉁: 지금 남북 관계가 꽉 막혀있는데 남한이나 북한이나 정상이 아닙니다. 서로 상대방을 흡수하려는 것 같아요. 그러나 머지않아 독일에서 그랬던 것처럼 해결 방안이 마련되리라 생각합니다. 독일 통일이 동독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이고 평화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서독 쪽에서 사회민주당이 동독과 계속 교류를 하면서 통합을 유도했습니다. 남한처럼 제제를 가하는 게 아니었지요. 남북 사이에 좀 더 평화적으로 화해와 협력이 이루어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월간 <아시아문화> 2016년 7월호에 실린 글을 옮겨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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