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도]는 왕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오봉도]의 뿌리는 장생도에 있으며 왕을 위한 특별한 도상의 필요에 따라 창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이 작품은 조선시대 그림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좌우대칭 구도를 사용하고 있다. 주인공인 왕이 그림 속에 파묻히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집중되도록 장치한 것이다.

[오봉도]에는 좌우로 소나무가 그려져 있다. 그림 속의 세상은 마치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다.
이상세계의 상징에는 복숭아나무 제격이다.
하지만 복숭아나무를 제치고 소나무가 선택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복숭아나무는 풍성한 열매를 자랑하지만 아쉽게도 사철나무가 아니다. 사철나무인 소나무는 선비들에게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고 궁중회화에서는 항상 푸르른 생명력을 뜻한다.
또한 소나무는 온 나라에 골고루 자라는 엄청난 개체수를 자랑했기에 모든 생명을 뜻하기도 한다.
다양한 동물과 식물들이 등장하는 장생도에는 복숭아나무만 표현해도 생명력의 풍부함이 드러난다. 하지만 간결한 [오봉도]에는 단 한 가지 사물만으로 이상세계, 영원성, 모든 생명 따위를 표현해야 한다. 여기에 가장 잘 맞는 요소가 바로 소나무인 것이다.

▲ 오봉도의 소나무에는 생명력을 상징하는 태점이 촘촘히 박혀있다. 실제 소나무 꽃을 차용한 표현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다섯 개의 산봉우리, 바위, 바다와 파도, 태양은 극단적인 추상화, 양식화 과정을 거쳐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소나무의 표현은 다른 요소에 비해 약간 복잡한 편이다. 이렇게 복잡하게 보이는 이유는 소나무 꽃처럼 보이는 태점(胎點)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의 핵심 요소는 사철나무이지 소나무 꽃이 아니다.
소나무 꽃은 그림을 어지럽게 만들고 조화를 무너트린다. 그럼에도 소나무 꽃을 반드시 넣어야 했던 이유가 있었다.

[오봉도]에는 동물이나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간결한 화면을 만들기 위해 복잡한 식물이나 구름 따위를 생략해 버렸다.
그렇다고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라는 [오봉도]의 내용이 변질되거나 약해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소나무는 꽃나무가 아니라는 점이다.
꽃은 생명의 탄생과 만개를 상징한다. 결국 이런 생명의 요소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소나무 꽃으로 태점(胎點)을 대신한 것이다.

[오봉도]에 표현된 소나무의 종류를 적송(赤松)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나무 표면을 붉은 색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십장생도]에 표현된 소나무는 붉은 색에 길고 높게 자라는 적송의 특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적송은 집이나 가구를 만드는데 적합한 나무이다. (적송은 일본식 표현이고 우리말로는 춘양목이다.) 그렇다고 [십장생도]나 [오봉도]에 표현된 소나무가 반드시 적송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실제 [오봉도]의 소나무는 짧고 굵으며 풍성한 가지와 이파리를 자랑한다. 외형만 보자면 적송보다는 금강송에 가깝다. 하지만 그림 속의 소나무는 이상적으로 재구성하여 표현했으므로 현실의 소나무와는 많이 다르다.
어쨌든 화면을 구성하고 표현하는데 필요한 형태의 소나무를 적절히 차용, 변형하여 그렸을 것이다.

▲ 오봉도의 소나무는 여러 시점을 결합해서 표현했다. 소나무의 여러 특징을 모아 이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단 좌측 사진은 아래에서 위로 본 소나무 가지와 이파리이고, 중간은 측면에서 본 나무 몸통과 전체적인 모양이다. 이 둘의 결합으로 전체적인 모양을 만들고 몸통 부분의 가지들을 깔끔하게 정리했는데 이것은 우측 사진, 춘양목(적송)의 요소를 차용한 것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또한 우리그림에서 색을 이용하여 상징은 사용하지 않는다.
붉은 색으로 소나무를 표현한 것도 오행론에 따른 오방색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오방색은 그냥 삼원색에 흰색과 검은색이 결합한 기초적인 색채일 뿐이다. 실제 [십장생도]나 [오봉도]에서는 방향에 따라 색을 배치하고 칠한 증거는 없다.

[오봉도]에 표현된 소나무는 크게 두 개의 시점이 결합한 확대원근법의 조형원리로 그렸다.
나무의 몸통은 측면이고 솔잎이 있는 윗부분은 아래에서 위로 본 시점이다. 이렇게 여러 시점을 결합하는 이유는 단일 시점에 따른 사물의 왜곡을 막고 소나무의 특성을 보편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이다.

[오봉도]를 왕을 추앙하고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는 그림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좁은 견해이다. 왕이 자신을 추앙하는 그림을 배경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염치가 없는 짓이다. 왕은 자신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정치를 하는 존재이다.
양반이나 신하들도 마찬가지이다. 대신들이 입는 관복의 흉배에는 장생도가 그려져 있다. 만약 이런 형상이 출세나 장수, 부귀영화를 뜻한다면 신하가 자신을 위해 정치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관복을 입고 왕이나 백성 앞에서 정치를 했다면 조선은 10년도 못가서 망했을 것이다.

[오봉도]는 [십장생도]와 마찬가지로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를 담고 있다. [오봉도]가 왕을 위한 특별한 그림인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오봉도] 앞에 앉은 왕은 ‘이상세계를 만드는 자, 이상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권위는 권력을 휘둘러 백성을 굴복시킨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진정한 권위는 백성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절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진다는 사실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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