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 3월 28일, 4월 26일.
세 가지의 날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는지요?

5등급 - 미국 펜실베니아 쓰리마일섬

1979년 3월 28일 새벽 4시, 미국 펜실베니아주 쓰리마일 섬 핵발전소 단지에서 경보가 울렸습니다. 가동 4개월째인 2호기 냉각수 급수 펌프가 파손되었습니다. 서스퀘해나 강의 냉각수로 식었어야 할 원자로 온도가 2,200℃까지 치솟으며 원자로내 연료봉이 녹아버렸습니다. 5등급의 핵발전소 대형사고 였습니다.

1977년 고리핵발전소를 건설한 박정희 정권이 20세기말까지 44기의 핵발전소를 짓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때였습니다. 핵발전소 건설비용 20억달러, 원자로 해체작업에만 10억달러가 들어가는 등 경제적 손실도 컸습니다.

이 사고로 충격을 받은 미국은 그 이후 사실상 신규 핵발전소를 추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백혈병과 암발생률 수치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7등급 - 체르노빌의 목소리

1986년 4월 26일 구소련, 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발전소에서 발생한 원자로 폭발사고로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목숨을 앗아가고 핵발전소 인근 생태계가 송두리째 파괴된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는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합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100여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단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와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적 재난을 당한 벨라루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체르노빌의 목소리』가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인근지역인 벨라루스는 때마침 지나던 비구름으로 인한 낙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지역입니다.

벨라루스인인 작가는 이렇게 독백합니다.
“군사적 핵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던 것이지만, 평화적 핵은 집집마다 있는 전구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군사적 핵과 평화적 핵이 쌍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공범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더 똑똑해졌고, 전 세계가 더 똑똑해졌지만 체르노빌이 발생한 후에야 그렇게 됐다. 오늘날 벨라루스인들은 살아 있는 ‘블랙박스’처럼 미래를 위해 정보를 기록하고 있다. 모두를 위해.”

책속에 등장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증언은 충격과 슬픔으로 몰아갑니다.
“계속 죽고, 갑자기 죽는다. 길가다가 쓰러지고, 잠들고는 깨어나지 않는다. 간호사에게 꽃을 가져가다 심장이 멎는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가…. 그렇게 죽어가는데 우리가 무엇을 견뎌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아무도 제대로 물어보지 않는다.”

당시 투입되었던 군인들과 촬영을 위해 접근했던 언론인들, 그리고 사고수습을 위해 위험수당을 받고 참여했던 가난한 사람들도 죽어갔습니다. 로봇도 새까맣게 타버리는 맹독성 방사능 앞에 인간의 목숨이야 한낱 부질없는 것이지요.

30년이 지난 지금 체르노빌 핵발전소 직원들이 거주하고 있던 프리피야트는 놀이공원, 황폐화된 벌판 등이 버려진 채 여전히 방치돼 유령도시로 남아있습니다.

7등급 - 복된 섬, 후쿠시마

후쿠시마라는 뜻은 ‘복된 섬’입니다. 자연으로부터 받은 혜택이 많은 곳이었지요. 후쿠시마의 봄은 사방에서 피어대는 벚꽃으로 화사하다 못해 지금도 여전히 매혹적입니다.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는 방사능만 걷어내면 말이지요.

5년전 사고 당시 한국 환경운동가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후쿠시마로 내달렸습니다. 그 활동가들의 카메라에 찍힌 벚꽃은 아름다움을 넘어 슬픔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작년 여름 일본 후쿠시마에 다녀왔습니다. 일본 핵발전소 54기중 10기를 운행 중이던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쯔나미와 지진으로 인해 4기의 핵발전소가 폭발했고 원자로도 물론 녹아내렸습니다. 체르노빌과 더불어 핵발전소 사고 최고등급인 7등급으로 기록됩니다.

제1발전소가 있었던 인근지역까지 버스를 타고 아무런 방호장치도 없이 70여명의 일본인과 외국인들이 후쿠시마투어를 했습니다. 50km에서 출발한 버스가 20km, 10km까지 근접하자 방사능수치를 재는 기계들의 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빠르게 방사능 오염지역을 빠져나오는 버스밖 풍경은 더 놀라웠습니다. 마스크 하나만 달랑 쓴 채 너댓 명의 남녀 노동자들이 마을 곳곳을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논과 밭에는 굴삭기, 포크레인 등 대형기계들이 곳곳에서 흙을 파내고 새로운 흙을 덮는 제염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도로 곳곳에는 방사능쓰레기를 담은 비닐포대가 작은 산을 이루었습니다.

얼마전 인적이 끊긴 후쿠시마현 도미오카를 다녀온 지인은 놀라운 소식을 전합니다.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지원해오던 지원금을 모두 끊고 내년부터는 집으로 돌아가라는 귀환정책을 실시한다고 합니다.

제염을 해도 사고 전에 비하면 열 배, 스무 배 오염된 곳입니다. 일본 정부는 체르노빌에 비하면 별것 아닌 사고라며 30년 전부터 적용한 체르노빌 기준보다 4배나 높은 오염지에서 살라고 합니다. 내년부터는 이곳은 이른바 살 수 있는 집과 살 수 없는 집으로 나뉩니다.

사고 당시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귀환불가 구역에 있는 집에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고 탄식했으나, 이젠 “귀환 예정 구역으로 돌아가야 하냐?”고 탄식합니다. 가드레일처럼 낮게 쳐진 울타리가 ‘귀환불가’와 ‘강제귀환’의 경계일 뿐입니다.

도미오카 아니 후쿠시마는 지금 벚꽃 대신 방사성 쓰레기를 담은 검은 포대가 여기저기 언덕을 이뤄 검정으로 넘칩니다.

일본은 핵발전소가 모두 멈춘 채 4년을 지냈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무더웠던 작년 여름 핵발전 제로였습니다. 푹푹찌는 바깥온도와 달리 실내는 에어컨으로 인해 겉옷을 하나 더 준비해야 했습니다. 핵발전소를 모두 멈춰도 전기는 남아돌았던 것이지요.

다시 벚꽃 찬란한 봄...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전력 홈페이지를 접속해 보세요. 전력예비율이 20~30%를 기록합니다. 남아서 버려지는 전기의 양입니다. 밤이면 50~60%까지 예비율이 올라가기도 합니다.

전기는 생산하면 잡아둘 수가 없습니다. 전력사용 최고치에 맞춰서 전력예비율을 정하기 때문에 1년 중 며칠을 대비해서 엄청난 양의 전기를 생산해서 버리고 있습니다. 피크전력은 가스발전이나 태양광, 풍력 등 바로 끄고 켤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대체하거나 자가발전기를 돌리면 해결됩니다.

한국에는 핵발전소가 24기가 있습니다. 인구밀집도 세계1위입니다. 한국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나면 인명피해 발생률이 세계최고라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부산시청과 10km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고리핵발전소는 세계최대 규모의 핵발전소 단지이면서 세계에서 최고 위험한 지역입니다. 30km 안에는 340만명이 살고 있고 울산이나 포항 등 산업단지도 가까이 있습니다.

쓰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 사고를 당하면서 핵마피아(핵발전소로 인해 경제적 이익을 나누는 집단)들은 똑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미국과 다르다, 우리는 구소련과 다르다. 우리는 일본과 다르다”라고요.

미국, 구소련, 일본은 핵발전소 기술 강국이었습니다. 최고의 기술과 안전을 자랑하던 나라에서 난 사고를 보고도 한국의 기술은 다르다고 합니다.

2천km 떨어진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나자 방사능 낙진을 걱정했던 우리는 고작 멀어 봐야 200km대 안에 있는 국내의 핵발전소를 용인하고 있습니다. 37년된 고리1호기를 시작으로 월성1호기, 영광1호기까지 30년 넘은 핵발전소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알려진 사고만도 600여건이 넘는 한국 핵발전소. 아직까지 큰 사고가 없는 것이 기적이라고 합니다.

사고 후면 모든 것이 ‘끝’임을 알고도 모른 척하는 세력에 의해 또 하루를 연명하는 것이 아닌지 두려운 하루를 보냅니다.
벚꽃 터지는 찬란한 봄을 기다리며 말이지요.

 

 

이태옥은 핵발전소가 6기나 있는 영광지역에서 여성농민회와 여성의전화를 만들고 활동했다.

현재는 원불교환경연대에서 탈핵과 에너지전환 등 에너지개벽운동을 하고 있으며, 태양광발전소 협동조합인 둥근햇빛발전협동조합 상무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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