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타격 대 선제타격’의 유래

한반도 군사위기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그간 한미합동훈련이 일상적인 방어훈련이라고 주장했던 한미 양국은 최강의 핵병기를 앞세운 평양진격작전과 김정은 참수작전의 추진을 숨기지 않고 있고, 북한 역시 자신들의 핵무기는 남조선을 향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던 일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핵무기 실전배치를 앞세운 선제 서울해방작전 추진을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있다.

방어가 아닌 선제공격 위주의 교리로 한반도 군사위기가 업그레이드된(?) 것은 물론 1차적으로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로켓 발사가 몰고 온 급속한 소용돌이의 결과이다. 그러나 좀 더 시야를 넓히면, 한반도의 현 군사위기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매우 구조적이라는 것이 보다 분명해진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의 ‘핵 없는 세계’ 비전의 선언 이후 그 실현전략이 초기에는 재래식 전력 우위와 선제 핵 불사용원칙(no first use)에 중점을 두고 있었으나, 2010년경부터 핵 모호성을 거쳐 점차 핵 전진 배치 및 선제공격에 방점을 두는 ‘정밀비례대응전략’(measured response strategy)으로 이동해왔다(이정철, “포스트오바마 핵전략과 핵 전진배치 전략의 부상”). 정밀비례대응전략이라는 것은 재래식 전력의 우위 태세를 유지하면서도 잠재적 적국이 핵 문턱을 넘을 경우 이들에 대해 동종, 동질의 비례적인 핵 대응으로 타격하겠다는 적극적 선제전략이다.

이러한 미국 핵전략의 변화가 한․미SCM에서의 일련의 공세적 ‘확장억지’ 강화 방침 결정과 핵 선제타격을 포함하는 ‘작전계획 5015’ 수립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진행되는 한미의 군사적 대응, 특히 올해 한미합동군사훈련의 내용은 각종 전략핵무기를 총동원하여 미국의 정밀비례대응전략을 과시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북한은 미국의 핵 전진배치 및 선제공격 전략과 그것이 총화된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응하여 2014년 11월부터 미국에 군사훈련 중지와 핵실험 중지 제안에 이어 평화협정 체결 등을 제안하였고, 작년 말에서 올해 1월에 걸친 북․미협상에서 이러한 제안이 최종적으로 거부되자 핵실험 및 장거리로켓 발사를 강행하였다. 이어서 북한은 미국의 핵 전진배치와 선제공격 및 참수작전 등에 대응하여 핵무기 실전배치와 선제타격에 의한 ‘서울해방전략’을 공언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현재의 한반도 군사위기가 북한 4차 핵실험으로 인한 일시적 정세의 격화가 아니라 미국의 군사전략, 특히 핵 전진배치 전략으로의 전환과 함께 상당 기간 내연(內燃)되어온 것이며, 또한 앞으로도 한반도의 군사정세는 이러한 미국의 변화된 핵전략과 그에 대응하는 북한의 전략이 충돌하는 구조적 위기, 즉 핵 대 핵, 선제타격 대 선제타격이 맞서는 강대강의 대립구도 하에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험로가 예상되는 ‘비핵화-평화협정 병행추진론’

현재 진행 중인 강대강의 한반도 대결위기 해소 혹은 궁극적인 협상의 목표 제시와 관련하여 국제사회의 주목을 끈 주장은 지난 2월 17일에 중국이 제안한 이른바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추진론’일 것이다. 중국만이 아니라 러시아 역시 “합리적이며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6자가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최대 공약수”라고 인정한 이 병행추진론에 대해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부정적이지만, 실제로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10일 한․미 양국은 “북한과 앞으로 어떤 대화를 하는 데 있어서도 비핵화가 최우선”이며 “지금은 대화를 거론할 시기가 아니다”고 공식적으로는 중국의 병행추진론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비핵화 우선이라는 공식 입장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대북협상의 기류가 바뀔 수도 있다는 전망이 여러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다. 즉 미국이 선 비핵화에서 비핵화-평화협정 병행논의 수용으로 점차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대북제재 결의안이 통과된 직후인 지난 3일 미 국무부는 중국이 제안한 ‘비핵화-평화협정’ 병행 논의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하였고, 또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처럼 1월의 북미협의에서 ‘비핵화 문제를 포함하는 평화협정 논의’가 시도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변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협상테이블의 진전 가능성에 대한 예측은 여전히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고 보인다. 무엇보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미국 오바마 정부가 그나마 북한문제에 집중할 시간이 별로 없고, 또 비핵화-평화협정 동시해결 협상의 수용 여부도 아직은 불확실한 미지수의 영역이다. 이 문제에 대한 미국의 이중적이고 모호한 언술은 여전히 ‘비핵화협상의 진전을 전제로 한다면 평화협정 협상을 검토할 용의가 있다’는 정도의 스탠스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또 북한봉쇄에 올인한 박근혜정부의 강경한 태도도 협상 진전의 큰 장애요인의 하나이다.

설사 한․미가 비핵화-평화협정 병행추진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하더라도 협상의 급진전은 여전히 불투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미국만이 아니라 북한 역시 협상의 목표를 계속 업그레이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협상의 문턱을 높이고 있는 북한

김정은체제 들어와 북한의 대미협상 목표와 전략에 상당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데, 그 하나의 특징은 북한의 핵보유를 전제로 하는 질서재편이 아니면 북한으로서는 적극적인 협상 타결에 나설 의사가 없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평화협정 협상을 진전시키면 ‘이여(爾餘)의 문제,’ 즉 핵문제를 포함한 쌍방의 안보 우려에 대해 협상할 수 있다는 ‘선 평화협정’ 추진의 태도에서 단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작년 말에서 올 초에 걸쳐 이루어진 북․미협의 과정에서 미국이 비핵화문제를 제기했을 때 북한이 거부했기 때문에 협상이 진전되지 않았다는 <WSJ>의 보도는 대화 회피에 대한 미국의 변명을 옹호하는 기사로도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변화된 협상 태도를 그대로 전하는 측면도 있다.

북한으로서는 ‘불멸의 핵강국 건설’을 포기하는 대가로 평화협정이라는 종잇조각을 얻기보다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등 동아시아의 미국 핵 및 군사력 배치 전반의 변경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는 한반도문제는 미․중 간의 협상이 아니라 북한이 추구하는 질서변화를 의제로 북한과 협상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또한 북한과 협상하려면 대북적대정책의 상징인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라는 요구도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 협상의 문턱을 높임으로써 협상 전에 먼저 상대의 협상 의지, 즉 적대시정책의 철회 의사를 증명해보이라는 뜻이다.

협상의 목표만이 아니라 북한의 협상전략도 변화되고 있다. 김정일시대의 북한 협상전략은 ‘단계적 비핵화와 경제‧평화 보장’을 교환하는 틀 속에서 핵실험을 단기적 협상과 분리하지 않았으나,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살라미식의 단계적 협상 추진보다는 핵 억지력의 확보 이후 그것을 토대로 동아시아질서의 근본적 재편을 추구하는 일괄 협상전략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미국의 ‘전략적 인내’만이 아니라 북한의 새로운 협상전략도 한반도문제와 관련한 ‘협상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의 하나이다. 결국 중국이 제기한 ‘비핵화-평화협정 병행추진’은 중국 스스로 자평하듯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한’ 방안이지만, 미국의 이중성과 모호한 태도, 박근혜 정부의 강경드라이브, 그리고 북한의 협상 문턱높이기 등으로 그 출발부터 험로가 예상되고 있다.

중국의 역할은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또 애초부터 중국이 한반도문제에서 책임자로서의 지위와 의지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한반도 평화위기는 강대강의 군사위기만이 아니라 협상의 문과 문턱이 점점 좁아지고 높아지는 협상 장애의 심화와 함께 이중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군사위기와 협상의 위기가 중첩되면서 위기가 가중되는 한반도 평화 위기의 구조는 평화문제가 국가주의의 틀 속에서 교착되고 있는 가장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결국 박근혜 정부가 포기한, 남북관계의 변화와 북한 설득을 포함하는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 여전히 한반도문제의 관건임을 말해준다.

* 이 글은 <프레시안>에 게재된 “김정은의 핵 포기, 평화협정으로 될까?”를 일부 수정·보완한 글임을 밝힙니다.

 

 

이승환은 1958년 경북 포항에 태어나, 고려대 경제학과, 경남대 북한대학원(정치학 석사)을 거쳐 경남대 대학원 정치외교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이승환은 통일맞이 정책위원장, 열린정책연구원 정치아카데미 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이며, 또한 민화협 집행위원장,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지난 15년여에 걸쳐 남북 민간교류 활동을 전개해왔으며,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6.15남북공동행사 등을 진행해왔다.

그가 쓴 글로는 “문익환, 김일성 주석을 설득하다”(창작과비평, 통권 143호, 2009), “6월항쟁 20년, 남북 및 북미 관계의 변화와 통일담론”(창작과비평, 통권 137호, 2008), “2000년 이후 대북정책담론 연구”(북한대학원, 2008) 등이 있다.

개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lsh2k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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