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이례적으로 설날인 8일 전체회의를 열어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여야 합의로 채택했다. 이 결의안은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그대로 채택될 공산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규탄 결의안의 제목은 놀랍게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규탄 결의안’이다. 북한이 지난 7일 장거리 로켓 ‘광명성호’에 지구관측위성 ‘광명성-4호’를 실어 극궤도에 진입시켰다고 발표했고, 미국은 물론 우리 국방부조차 북한의 인공위성이 궤도진입에 성공했음을 확인한 사안이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에 인공위성을 탑재해 궤도에 진입시킨 사건을 ‘장거리 미사일 발사’라고 규정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9일 관련 질문을 받고 “다른 나라도 다 위성 발사하는데 왜 북한만 미사일이라고 그러느냐. 핵을 개발하니까 그런다. 핵과 미사일은 패키지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북한이 광명성호를 발사하기 약 10분 전, 그러니까 우리 시간으로 7일 오전 9시 21분쯤 러시아는 ‘소유스-2.1b’ 로켓을 발사해 위성항법시스템 ‘글로나스-M’이라는 인공위성을 궤도에 진입시켰다. 러시아도 핵무기 보유국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러시아의 로켓이나 인공위성을 미사일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우주개발권은 주권국가의 고유한 권한이고 이를 ‘미사일’로 둔갑시키는 것은 어떤 궤변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다만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어떤 추가적인 발사도 진행하지 말 것”을 요구한 ‘안보리 결의 2087’ 2항의 규정을 북한이 위반했느냐는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이같은 뻔한 사실을 알고 있는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새누리당의 공세에 밀려 외통위에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규탄 결의안’에 합의해줬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9일 “새누리당의 과한 표현을 덜어내고 대화라는 단어를 집어넣고 하는 협상과정에서 ‘장거리 미사일’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고, 한 의원은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라는 더 큰 목표를 위한 것”이라고도 했다.

외통위 규탄 결의안은 “유엔 안보리 결의를 포함한 강력하고 실효적인 제재를 도출함과 동시에 핵문제를 포함한 남북당국 간 대화 재개 등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고 돼 있다. 그나마 ‘대화 재개’ 촉구가 포함된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에 이어 인공위성을 발사하자 정부와 여당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사드 배치를 전격 추진하고 그동안 야당의 반대로 묶여있던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우려스러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나아가 지난 연말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한.일 정부가 합의한 후 북한의 핵실험과 인공위성 발사 직후 한.일 국방장관이 연거푸 전화통화를 갖는 등 여론에 밀려 보류했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재추진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과거와 달리 강력한 재야의 존재나 진보정당의 목소리도 미미한 형편이고, 언론지형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넘어 일방통행으로 치닫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나마 남북당국 간 대화 재개를 명문화한 결의안을 채택하고 이에 기반해 사드 배치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의 최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권인사로서 더불어민주당에 스카우트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9일 육군 제9사단 임진강 대대를 방문해 “핵이나 개발하고 장거리 미사일 쏜다고 해서 그 체제가 장기적으로 절대로 유지되지 않는다고 저는 확신한다”며 “언젠가 북한 체제가 궤멸하고 통일의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는 발언을 접하면 정신이 바짝든다. ‘장거리 미사일’, ‘북한 체제 궤멸’ 등 여당인지 야당인지 정체성을 판단하기 힘든 발언들이다.

과거 야당은 분열하면 ‘선명성 경쟁’을 통해 정통야당임을 인정받으려 했지만 최근에 분열된 야당들은 서로 ‘중도성 경쟁’을 펴는 듯한 이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안보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안보 장사’에 열을 올려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정부.여당에 맞서기 보다는 사실상 들러리를 자처한 모양새다.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의 동의 하에 대한민국 국회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규탄 결의안’을 채택하는 순간, 상식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들은 여당은 물론 제1야당에 대한 한가닥 기대마저도 접게 될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표현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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