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북한’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북한이 발표한 신년사를 두고 ‘핵과 병진노선’을 언급하지 않았고, 경제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 지 불과 며칠도 되지 않아 ‘수소폭탄 시험’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북한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이제 ‘북핵’ 국면은 새로운 단계로 넘어간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이번 사태로 북한에 대한 분석과 전망에 대해 다시금 사고해야 할 필요가 커졌다. 흔히 말하는 ‘합리적 북한’ 독해가 불가능하다는 자조어린 독백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북한식 셈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성찰과 반성이 요구된다.

흔히들 북한에 대해서는 ‘이상한 앨리스’로 혹은 ‘수수께끼의 나라’로 칭한다. 아마도 이런 표현들은 외부 세계에서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행동을 읽을 수 없었던 저간의 사정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일반적인 국제적인 상식 혹은 보편성이라는 것과 거리가 먼 듯한 북한의 행동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들이 거꾸로 북한의 행동을 더욱 더 비합리성과 미친 행위자로 묘사하고, 북한의 이미지를 고착화시키는 작용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북한에 대한 행동 예측에 실패했던 것은 우리 스스로도 이러한 표현이 담고 있는 북한 이미지에 어느 정도는 경도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은 ‘북한 읽기’의 실패가 아닐까? 이번이 경우를 보더라도 ‘핵과 병진노선’이 생략된 신년사를 두고 당대회와 경제 살리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분석이 대세를 이루었다. 비록 일부에서 당대회를 앞두고 ‘핵실험’을 예고하였지만, 전반적인 기조는 북한이 핵실험을 통해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우리의 셈법이 북한의 셈법과는 많이 달랐다고 하겠다. 36년만에 치러지는 ‘당대회’의 의미와 파장을 우리는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다. 무려 ‘36년만’이라는 것에만 집중했지 그것이 갖고 있는 의미와 무게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의 ‘수소폭탄’ 시험은 명백히 당대회를 겨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식 셈법’으로는 당대회를 앞두고 혹은 당대회에서 지난 기간의 총결산과 총화 그리고 전망을 세우기 위해서는 ‘병진노선’의 성과를 짚고, 그에 기초하여 새로운 10년을 설계해야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핵’ 병진노선의 성과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즉, 핵무력 건설과 증대에서의 한 단계 높은 성과를 총화하고, 이에 기초하여 이제는 경제 건설에 매진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을 밝히는 것이 북한식 셈법으로는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새로운 ‘김정은 시대’를 개막하는 데서도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발표한 성명서에서도 드러난다. ‘우리 핵무력 발전의 보다 높은 단계’, ‘수소탄까지 보유한 핵보유국의 전렬’같은 표현이나 ‘우리 공화국은 책임있는 핵보유국으로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이미 천명한대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관련수단과 기술을 이전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라는 표현은 북한이 스스로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갖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병진노선에 따라 ‘핵무력 발전’의 독자적인 길을 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극악무도한 대조선적대시정책이 근절되지 않는 한 우리의 핵개발중단이나 핵포기는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로 있을수 없다’라고 하여, 미국과의 협상이라는 한쪽 길을 열어두고 있다. 북한의 셈법은 ‘미국과의 협상’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지금 당장 미국과의 협상이 어려운 조건에서 자신들의 핵 능력을 최대화시키고, 이에 기반하여 앞으로 있을 미국과의 협상에도 대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북한의 이번 ‘수소폭탄’ 시험은 일련의 과정에서 충분히 인지될 수 있었다. 지난 5월 북한이 스스로 밝힌 ‘핵 융합’ 시험의 성공, 그리고 이어진 김정은의 수소폭탄 발언 등과 더불어 핵 보유국가들의 일련의 역사적 과정 – 원자폭탄 개발 이후, 약 5년 정도의 기간에 수소 폭탄 개발 –을 고려했다면, 북한의 수소폭탄 개발과 시험에 대한 가능성은 충분히 인지되고, 예상될 수 있었다.

물론, 일부에서 이 문제가 꾸준히 제기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신년사라는 ‘관성’에 따른 분석, 최근 북중간의 관계 개선의 흐름, 우리의 셈법으로 해석한 경제발전을 위한 대외적 환경 마련에 대한 과도한 강조 등으로 북한식 셈법을 놓치고 말았다.

북한의 ‘수소폭탄’ 시험으로 한반도 정세는 더욱 암울해졌다. 지난 12월의 차관급 당국자 회담의 결렬 이후, 남북관계는 당분간 갈 길조차 찾지 못할 정도로 암울해졌다. 또한, 북중관계 역시 순탄치 못하게 되었다. 국제사회의 규탄과 고립, 유엔 안보리에서의 제재 등에 따른 북한의 반발과 인공위성 발사(장거리 로켓 발사) 등의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리고 이에 따른 또 다른 제재와 충돌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북한이 경제건설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경제건설에 요구되는 대외적인 우호 환경 마련이라는 중요한 과제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는 정반대되는 결과를 뻔히 예측하면서도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의 셈법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도 우리의 셈법이 북한과는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극강의 제재에 몰려있는 북한으로서는 더 이상의 제재가 사실상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 중국의 대북한 제재 역시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계산과 더불어 한국의 4월 총선에 따른 정치 일정, 미국의 대선에 따른 정치 일정 상 올해에 사실상 의미있는 협상을 전개하기 어렵다는 계산도 함께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처럼 공백이 있는 기간에 실험을 강행 함으로써 자신들의 몸값을 최대한 높이고,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들어서게 될 새로운 행정부와 협상을 시도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도 하지 않았을까? 단기간에 펼쳐지는 대북한 제재와 비난 등은 쏟아지는 소낙비 정도로 계산했을 수 있다. 그런 비난과 제재는 이미 북한에게 익숙한 것이 아니겠는가?

앞으로 북한은 내부적으로 ‘수소폭탄’ 시험까지 성공한 핵강국으로서 자신들을 이미지화하고, 이에 기반하여 경제건설에 매진할 것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이다. 당대회를 계기로 자신들의 희망하는 ‘강성국가’ 건설의 마지막 고지라고 여기는 경제건설에 집중할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그야말로 ‘병진노선’에 충실한 셈이 되는 것이다. 반면, 우리 정부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한 비난과 제재에 골몰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북한으로서는 당분간 ‘마이 웨이’의 길을 갈 것이고, 국제사회는 그런 북한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골머리를 앓게 될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대선과는 별도로 현재 전 세계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 중동문제와 그에 따른 난민문제, 중동에서의 시아-수니간의 갈등 등으로 북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미국과의 협상을 줄기차게 요구했던 북한이 계산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라 할 것이다.

북한의 셈법이 정밀하게 짜여진 톱니바퀴처럼 빈틈이 없는 것은 아니고, 또 그들의 셈법이 옳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셈법을 잘 알고 그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번의 사태를 두고 제기되는 ‘정보의 실패’ - 김정은의 사생활과 고위 간부들의 동향은 그렇게 잘 알면서, 왜 이와 같은 일에는 무능할까? - 도 되돌아보아야 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의 움직임을 ‘비합리적이고 미친’ 것으로만 해석하는 우리의 셈법을 반성하는 것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북한의 의도와 행위는 ‘비합리적이고 미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합리적인 것이고’ 우리에는 ‘나쁜’ 것일 뿐이다.

북한의 ‘수소폭탄’ 시험은 모두의 허를 찔렀다. 그런데 이때 우리도 북한에게 허를 찔러보면 어떨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먼저 북한에게 협상을 제안해보는 것이다. 당대회 준비에 여념이 없는 북한으로서는, 그리고 국제사회의 제재에 대비하고 있을 북한으로서는 적지 않게 당황스러운 일이 되지 않을까?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문학박사, 2001)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 방문연구원(2002-2003)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위원(2004-2006)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원(2007)
현재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중
 
주요저서로 북한의 개혁·개방: 이중전략과 실리사회주의(2004), 김정일 리더십 연구(2005), 서울과 도쿄에서 평양을 말하다(2008), 북한과 미국: 대결의 역사(번역서, 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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