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6일 전격 4차 핵실험을 실시하고 “첫 수소탄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발표해 파장이 예상된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지난 1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신년사를 접하고 북한이 올해 5월 제7차 노동당대회를 중심으로 경제강국 건설에 주력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지만 모두 빗나간 셈이다.

예상 못한 북한의 ‘수소탄’ 실험 성공 발표

북한은 이날 특별 중대보도를 예고한 뒤 정오(서울시간 12시 30분)에 정부 성명을 통해 “조선로동당의 전략적 결심에 따라 주체105(2016)년 1월 6일 10시 주체조선의 첫 수소탄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였다”며 “력사에 특기할 수소탄시험이 가장 완벽하게 성공함으로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수소탄까지 보유한 핵보유국의 전렬에 당당히 올라서게 되였”다고 발표했다.

예고나 특별한 조짐 없이 북한의 핵실험이 전격 단행된 데다 통상적 핵폭탄을 의미하는 원자탄이 아닌 ‘수소탄’ 실험이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충격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성명은 “우리의 지혜, 우리의 기술, 우리의 힘에 100% 의거한 이번 시험을 통하여 우리는 새롭게 개발된 시험용수소탄의 기술적 제원들이 정확하다는 것을 완전히 확증하였으며 소형화된 수소탄의 위력을 과학적으로 해명하였다”며 “수소탄시험은 우리 핵무력발전의 보다 높은 단계”라고 자랑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핵보유국들이 수소폭탄을 개발하는데 걸린 기간은 통상 5년 정도에 불과해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실시한 북한이 4차 핵실험에 나설 경우 수소폭탄 실험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북한은 이미 2010년 5월 <노동신문>을 통해 “태양절을 맞는 뜻깊은 시기에 조선의 과학자들이 핵융합 반응을 성공시키는 자랑찬 성과를 이룩했다”고 보도한 바 있고,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자위의 핵탄, 수소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보유국으로 될수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조선중앙통신 2015.12.10)

그러나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미시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이 말하는 수소탄은 일반적인 수소폭탄이 아니라 BFB(증폭핵분열탄)일 가능성이 높다”며 “원자폭탄의 핵분열을 이용하는 기본 기술에 중수소를 이용해 폭발력을 증폭시킨 것”이라고 분석했다. “핵융합 반응을 기본으로 하는 수소폭탄과는 다르다”는 것.

김정은의 ‘12.15 명령’은 왜 내려졌을까?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결정한 배경과 이유는 무엇이고, 김정은 제1위원장이 최종 결정을 내린 시점은 언제였을지 눈길이 쏠리고 있다. 먼저 시점을 살핌으로써 배경과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은동지께서 조선로동당을 대표하여 주체104(2015)년 12월 15일 주체조선의 첫 수소탄시험을 진행할 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신데 이어 주체105(2016)년 1월 3일 최종명령서에 수표하시였다”고 보도했다.

김 1위원장이 명령을 하달한 지난해 12월 중순은 북한의 대외관계에서 특별한 사건들이 발생한 직후라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북한은 지난해 1월 9일 미국에 합동군사연습을 임시 중지하면 핵실험을 임시 중지하는 화답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면서 미국과 언제든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지만 미국은 이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어 북한은 지난 10월 리수용 외무상의 유엔총회 연설에 이어 외무성 성명을 통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자고 미국측에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지만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북미대화의 가장 중요한 초점이 비핵화에 맞춰지지 않는 한, 북한과 평화협정 체결 관련 대화를 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고, 미 핵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부산에 입항했다.

이같은 흐름 속에서 지난해 10월 북한의 당창건 70돌을 맞아 류윈산 중국공산당 상무위원이 방북해 김정은 제1위원장을 접견하고 열병식에 나란히 참가해 북중 공조가 회복되는 모양새를 보였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남북 당국회담이 열리기 직전인 12월 8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는 대북 추가 제재조치를 취했고, <조선중앙통신>은 12월 10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수소탄 발언을 보도했다.

결국 11~12일 개성공단에서 열린 차관급 당국회담은 사실상 결렬됐고, 엎친데덮친 격으로 중국 공연에 나선 모란봉악단이 12일 공연 직전에 전격 철수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한마디로 미국, 한국, 중국 등 북한의 주요 대외관계가 모두 어그러진 파행을 겪은 것.

김정은 제1위원장이 ‘수소탄시험’ 명령을 하달한 12월 15일은 이같은 일련의 상황이 전개된 직후라는 점에서, 대외관계 파행에 대한 재평가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이 가능하다.

<조선중앙TV>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명령을 하달하면서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가 열리는 승리와 영광의 해 2016년의 장엄한 서막을 첫 수소탄의 장쾌한 폭음으로 열어제낌으로써 온 세계가 주체의 핵강국, 사회주의 조선, 위대한 조선로동당을 우러러보게 하라!"고 서명했다고 밝혔다.

김 1위원장은 이어 경제강국 건설에 전념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힌 신년사를 발표한 이틀 후인 3일, ‘최종명령서에 수표(서명)’했고, 6일 핵실험이 단행됐다. 북한이 5월 당대회를 목표로 경제건설에 주력할 것이라는 분석을 쏟아내던 국내외 전문가들의 분석이 무색해진 순간이다.

7차 당대회는 병진노선의 변화를 가져올까?

지난해 12월 일련의 대외관계 파행이 김정은 위원장의 ‘12.15 명령’으로 치달았다는 시계열적 분석이 나름대로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과연 북한이 일시적 대외관계 파행에 실망해 핵실험으로 치달았다고만 볼 수 있을까?

거기에는 보다 근원적인 이유들이 깔려있다는 분석들도 제기되고 있다. 김동엽 연구위원은 “북한의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이 여전히 유효하고, 5월 7차 당대회에서 경제발전과 핵무력 발전의 성과를 보고할 것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이번 당대회는 핵무력 건설의 완성을 선언하고 경제 건설에 주력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북한 노동당 정치국이 지난해 10월 30일 제7차 노동당대회를 2016년 5월에 소집한다는 결정서를 발표할 때 이미 이같은 큰 구상이 서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 역시 “북한의 핵무력 강화 메커니즘은 독자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오래 전부터 프로그램이 진행돼 언제든지 핵실험을 실시할 준비가 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1위원장이 12월 중순 명령을 하달해 1월 초 실험을 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북한의 핵실험 준비태세는 이미 그 전부터 만단의 준비가 갖춰진 것으로 평가된다. 핵실험은 20일 정도의 준비 기간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한국과의 대외관계에서 크게 기대할 바가 없는 상황에서 당대회를 앞두고 ‘강성국가 건설’의 가시적 성과를 내부적으로 보여 주어야 할 북한이 결국 병진노선 성과의 상징으로 핵실험 시점만을 선택한 것이라는 풀이인 셈이다.

북한은 중국에 핵실험을 사전통보 했을까?

그러나 북한 당국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북한의 4차 핵실험은 국제적인 대북 제재를 더욱 강화시킬 것이고, 경제발전을 위해 대외적 여건을 개선해야 할 처지에 있는 북한으로서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 민간 전문가는 “북한의 핵실험 선택은 우물안 개구리의 실책”이라며 “결국 강경파의 득세로 경제발전을 위한 대외적 여건 마련에 실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한 전문가는 “사실 북한을 군사적으로 응징할 방법은 없고, 경제제재는 더 이상 할래야 할 것도 없다”며 “북한 입장에서는 차라리 대외관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당분간 고립을 감수하더라도 크게 손해 볼 것도 없는 상황”이라고 평했다. 외부의 대북 압살 정책이 북한의 핵실험을 초래했고, 북한으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해석이다.

문제는 중국과의 관계다. 아무리 미국과 한국에 대해 북한이 각을 세우더라도 중국과의 관계마저 딱잘라 단절하기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번 핵실험 과정에서 북한이 중국에 사전통보를 했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사전통보가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만큼 북중 관계도 거리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국이 국제적 대북제재에는 동참하겠지만 북한문제와 북핵문제는 분리해 대응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이 북핵문제에 대해 외교부를 통한 국제공조에 나서면서도 북한과 당대당 관계를 개선하고 일정한 경제협력은 지속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국이 유엔을 내세워 대북 제재에 앞장서고 중국도 여기에 편승할 경우 북한은 이에 강력 반발하며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추가적인 대응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후 한미연합군사연습 기간 등에 한반도의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북한은 당대회를 앞두고 강력한 내부 결속을 다질 공산이 크다.

결국 북한의 4차 핵실험의 여파가 수습되고 새로운 대외관계 판짜기는 북한의 5월 제7차 노동당대회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이고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 여부가 첨예한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협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미국 내외에서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대선이 치러지는 새해 벽두에 북한의 핵실험이 몰고올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 지 주목되며, 임기말의 오바마 정부의 대응과 미국 차기 정권의 대북 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거리다.

(수정,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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