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건의 배경에는 반드시 주요한 이유가 있는 법. 물론, 딱 하나의 단순한 이유만 있는 경우는 현실세계에서 오히려 드물지만, 대개는 여러 이유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북한 모란봉악단이 12일 중국 베이징 국가대극장 공연을 앞두고 돌연 북으로 돌아가자 구구한 억측과 분석들이 쏟아지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4주기 애도기간 탓이라는 분석부터 여러 설이 나돌다가 북한과 중국 간의 ‘공작(업무) 측면에서의 소통 연결 때문’이라는 중국 관영 <신화통신>의 12일 밤 보도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연합뉴스>는 14일 베이징발 보도에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수소폭탄’ 발언과 공연 관람 중국측 고위인사의 ‘격’ 문제가 주효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모란봉악단 리허설을 지켜본 중국 측에서 특정 무대 장면이나 공연 내용을 문제삼았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아직은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김정은 제1위원장의 수소탄 발언이나 무대 배경에 흐르는 인공위성 발사 영상 등이 문제의 발단이 됐다면, 이는 엉뚱한 ‘나비효과’ 탓으로 보인다.

첫 나비의 날개짓은 지난 8일 미국으로부터 시작됐다. 미국 재무부는 8일(현지시간) 북한 ‘전략군’을 비롯한 단체 4곳과 개인 6명을 제재 대상으로 추가 지정했다. 미 재무부는 지난달 13일에도 김석철 주미얀마 북대사를 비롯한 개인 4명과 기업 1곳을 제재 대상으로 추가 지정한 바 있다.

전략로켓군은 전략미사일 전력을 관장하는 곳으로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대한 제재로 볼 수 있고, 나머지는 해운해사 3곳, 단천상업은행과 조선무역은행 간부 6명으로 모두 북한의 돈줄을 죄는 경제제재에 속한다.

즉각 ‘북한과 미국 간의 상업적 교역이 없어, 이전 제재 조치들과 마찬가지로 실질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일반적 평가가 나왔지만 문제는 미 재무부의 추가 대북제재의 시점이다.

남북은 지난 8월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군사적 긴장이 높아가던 시점에 이른바 ‘2+2 고위급 접촉’을 갖고 8.25합의를 전격 도출했고, 이에 따라 제1차 남북당국회담이 열리기로 한 날이 11일이었다.

한마디로 남북당국회담을 코앞에 두고 미국은 추가 대북제재에 나서, 금강산관광 재개와 같은 북으로 ‘달러’가 흘러들어가는 사업은 꿈도 꾸지 마라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실제로 개성공단에서 11~12일 열린 남북당국회담에서 남측은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해 별도의 실무회담을 열어 논의하자는 미지근한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결국 회담은 결렬되고 말았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평천혁명사적지를 현지지도하면서 “불면불휴의 노고 속에서 만들어진 한자루 한자루의 총이 오늘은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수호하는 총대숲으로 무성해졌다”며 “오늘 우리 조국은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 자위의 핵탄, 수소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보유국으로 될수있었다”고 말했다.

미 재무부가 8일(현지시간) 추가 대북제재를 발표했고 김 1위원장의 발언은 <조선중앙통신>에 10일 보도됐다. 북측의 즉각 반격인 셈이다. ‘핵탄’과 ‘수소탄’, ‘핵보유국’ 등 북한이 내세울 수 있는 모든 핵무력이 최고지도자의 입을 통해 시위된 것.

그런데 미국이 건드리고 북한이 세게 되받아친 북미 간의 공방은 엉뚱하게 베이징으로까지 불똥이 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선군 조선’의 위용을 과시하는 내용이 포함된 모란봉악단 공연에 고위급 인사를 참석시키기 껄끄러워졌고, 평소 같으면 별 문제가 안 될 공연 내용이나 무대 배경 등도 너그럽게 보아넘길 수 없게 됐을 것이다.

남북당국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가볍게 날린 견제구가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오자 중국의 심기가 복잡해지고 모란봉악단의 철수라는 엉뚱한 결과로 귀결된 셈이다.

가벼운 나비의 날개짓이 어떤 경우에는 생각지도 못한 긍정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의외의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법이다. 다만, 그 파장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이들에게 너무 비극적 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이 심히 유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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