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제로 거센 회오리 바람이 불고 있다. 청와대가 강행하려고 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 때문에 미주동포들도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게 되었다.

10월 6일부터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에 이르기까지 ‘겨레의 뿌리’, AOK(액션 포 원코리아), ‘내일을 여는 사람들’을 비롯한 미주지역 다수의 풀뿌리단체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미주동포 성명서> 운동을 벌이고 있다. [성명서 보기]

현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 정책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희석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시기 독립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미주동포들은 ‘항일운동을 축소, 왜곡하는 역사관을 후대에게 심어줄 수 없다. 우리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서 어떻게 일본의 역사왜곡을 탓한단 말인가’라고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미 역사교육의 세계적 추세는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는 것이지만 한국정부는 학생들에게 획일적인 역사관을 주입하는 독재시대로 역행하고 있다. 다양성과 개방성이 존중되지 않는 꽉 막힌 사회에서 21세기 미래세대가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러한 상태에서 과연 ‘창조경제’가 가능할까?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 통일로 가는 길은 왜 이리 멀고 험난하기만 한 것인가. 첩첩산중, 산너머 산이 기다리고 있다. 오르고 내리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다다르지 않을런지... [사진제공 - 황근]

역사교과서 논쟁, 남북관계에 먹구름을 드리우다

광복과 동시에 찾아온 분단의 세월이 자그만치 70년. 이 중대한 역사적 고비에서 해내외 동포들은 올 한 해 분단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전환점을 만들어내고자 온 마음과 정성을 기울였다.

위기로 치닫던 남북 관계가 지속되던 중 예기치 않은 8.25 전격 합의에 의해 해내외 동포들은 비로소 70년 분단의 장벽이 뚫리지나 않나 기대로 부풀었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통해 유신독재로 회귀하려는 이 시점, 향후 남북관계는 점점 헝클어질 것만 같다.

예상하자면, 국내에서는 역사교과서 문제로 해묵은 이념논쟁이 벌어질 것이고 집권층은 이 악취나는 이념논쟁으로 총선과 대선 구도를 짜려 할 것이다. 또한 남북관계는 당분간 서로 헐뜯고 폄하하는 체제경쟁 프레임을 벗어나기 힘들어질 것 같다. ‘통일’이 국시가 아니라 ‘반공’이 국시였던 암울한 시대의 논리가 다시금 팽배하지나 않을지 우려스럽다.

이렇게 되면 남북 간의 갈등은 더욱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독립운동사만 해도, 남북은 각자 서로의 독립운동가들을 인정하지 않고 반쪽의 역사만 가지고 서로 외눈박이로 곁눈질하고 있다. 참으로 분단 극복은 산너머 산이다. 통일로 가는 길은 왜 이리 멀고 험난하기만 한 것인가.

무엇보다도 분단체제는 필연적으로 독재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분단이 독재를 낳고 독재가 분단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하는 악순환에서 한국사회는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미완의 역사청산, 기회가 오고 있다

지난 세월, 대한민국은 분단체제 하에서도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고 재외동포들은 누구나 그러한 조국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 각계각층의 분열양상과 사회갈등은 점점 치유 불가능으로 치닫고 있다. 원흉은 다름아닌, 역사문제이다. 역사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업보가 한국사회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 깨어나는 대동강의 새벽. 분단 70년에 마주하는 대동강의 모습이다. 남과 북은 과연 언제쯤 분단의 깊은 잠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2015년 5월 양각도국제호텔에서 내려다본 대동강변. [사진 - 정연진]

왜 어째서 우리는 ‘자랑스러운’ 역사만 가르치고 배워야하는가. 승자에겐 ‘자랑스러운’ 역사이지만 패자에게는 또한 망자에게는, 억울하고 한맺힌 역사가 될 수 있다. 나라를 팔아먹거나 일제에 부역한 과거의 잘못된 행위를 우리는 역사에 제대로 기록해야 한다.

친일부역자는 대대손손 호위호식하고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헐벗고 굶주렸던 이 나라의 굴욕적인 역사도 자라나는 세대에게 그대로 가르쳐야한다. 우리 후손들이 그러한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역사를 온전히 가르쳐야할 책무가 있다.

북은 해방직후 비교적 그러한 역사청산 작업을 이루었으나 불행히도 대한민국은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 시기를 놓친 역사 청산 작업은 산너머 산일 것이다. 험준한 산맥을 여러 개 넘어야 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레 포기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해나가면 된다.

다만 마치 공산주의자들을 때려잡듯, 친일부역자와 후손을 또 하나의 주홍글씨로 낙인찍는 방식이라면 곤란하다. 그들과 그 후손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사회를 위해 더욱 헌신하게끔 결의와 합의를 이끌어 내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이는 결국은 우리사회의 민주적 역량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 “민중은 희망의 역사를 바란다. 맨날 싸우지만 말고 희망을 달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가치가 만들어온 희망을 민주집권세력이 모두 까먹는다면, 무엇으로 희망의 역사를 제시할 것인가. 역사의 승리는 ‘희망의 역사’ 싸움에서 이기는 길뿐이다.” 김봉준 화백 <3.1 아리랑> 유화 50 호. 2014년작. [이미지 제공 - 김봉준]

역사청산 없이 통일의 미래는 없다

통일이 먼저인가, 민주화가 먼저인가, 시민운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심각하게 고민해보았을 시대적 과제 앞에서 다시금 숙연해질 때이다. 민주역량이 부족하면 결코 통일 시대를 열어갈 동력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의 연결고리를 더욱 튼튼하고 촘촘히 만들어야할 때이다.

공동체의 안녕과 존속을 해치는 잘못된 행위에 대해 우리가 역사의 심판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캄캄하다. 민주주의 가치와 헌법정신도 망가지고 만다. 절망이 대물림 되는 사회가 되지 않기 위해 희망은 민주적 가치를 먹고 자란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이 시점에서 감히 희망을 가져본다. 2015년의 역사교과서 논쟁은 오히려 역사청산을 이루지 못한 대한민국이 업보를 정리하는 역사적인 계기가 되리라는 희망을. 진보 보수를 떠나 사회 구성원들에게 제대로 된 가치관을 원하는 양식있는 사람들, 그리고 조국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국내외 동포들이 한 데 목소리를 결집해 나갈 수 있다면 기회는 꼭 올 것이다.

나라 안팎의 동포들이여, 분단 70년을 넘기 위해 이제 과거사와 미래를 겸허한 마음으로 내어다보자. 그리고 올곧은 결의로 마음의 끈을 동여매자. ‘역사청산 없이는 통일 미래도 없음’을 가슴에 새기며, 국정화 반대 서명운동에 해내외 동포들이 다 함께 동참하자.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미주동포 성명서> 여러분의 동참을 기다립니다. [성명서 참여하기]

(수정,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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