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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치산 중심의 당 영도체계확립자들<특집②> 인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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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07  22: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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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노동당 창건 70돌 특집>

북한의 집권당인 조선노동당이 오는 10일 창건 70주년을 맞는다. 건국보다 창당이 2년이나 앞선 셈이다. 당 우위의 국가인 북한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조선노동당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 할 수 있다.

<통일뉴스>는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이 당이 걸어온 길을 규약과, 인물, 정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연재 순서>
1. 당 규약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2. 인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3. 정책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4.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

북한 조선노동당이 10일 창건 70년을 맞는다. 북한의 당 70년 역사 동안 수많은 인물이 등장했고 사라지기도 했다. 조선노동당의 인물을 살펴보는 것은 조선노동당의 정책방향을 이해하는 길잡이이기도 하다.

북한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빨치산으로 대표되는 인물들이 만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김정일 등장과 함께 이들을 중심으로 당 핵심일꾼들이 이끌어왔고, 김정은 시대 들어 40~50대 전문일꾼들이 당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시대를 아우르는 북한 조선노동당의 핵심인물들은 누구인가. 당의 핵심세력인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당 비서들의 면면을 중심으로 당 70년을 살펴보자.

김일성 시대(1945~1994), 항일빨치산 세대 포진

김일성 시대 당.국가건설 초기에는 다양한 공산주의 세력이 연합을 이뤘다. 하지만 김일성 유일영도체계를 확립해 나가면서 당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빨치산 세력이 권력을 장악해나갔다.

김일성이 당 창건의 초석을 다지는데 함께한 이들은 김혁, 차광수, 최창걸, 김리갑, 계영춘, 강병선, 김원우 등이다. 하지만 이들은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함께 맞이하지 못했다.

이들을 두고 김일성은 "혁명은 동지들을 얻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한 명 한 명의 동지들은 모두가 억만금을 주고서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사람들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이들과 함께 하지 못했지만 해방 후 김일성 시대 조선노동당은 1946년 8월 제1차 당 대회를 거쳐 연안파, 갑산파 등으로 일컫는 파벌 경쟁을 거쳐 1970년 제5차 당 대회에 이르기까지 항일빨치산은 조선노동당을 강화하는 핵심세력으로 활동했다.

46년 제1차 당 대회 당시는 당과 국가건설이 최우선의 목표라는 점에서 다양한 공산주의 세력이 함께했다. 이를 반영하듯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에 김두봉, 김일성, 주녕하, 최창익, 허가이 등 5명이 이름을 올렸다. 당시 당 중앙위원 파별간 비율은 항일빨치산 20%, 연안파 35%, 소련파 25% 등으로 정치위원도 비슷한 구도였다.

48년 제2차 당 대회도 기존 정치위원에서 김책, 박일우가 새로 들어왔는데 이 또한, 사회주의 당.국가체제를 세우기 위한 파벌연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56년 제3차 당 대회부터 양상이 달라진다. 당 정치국 정치위원에 김일성이 김두봉보다 앞서고, 박정애, 박금철, 김일, 림해, 정일룡, 김광협, 남일 등이 새로 선출되면서 항일빨치산 세력의 포진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61년 제4차 당 대회에서 소련파, 연안파는 역사에서 사라지고 갑산파가 제2의 세력이 됐다.

1953년 8월 제6차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남로당파 박헌영, 리승엽, 소련파 허가이, 연안파 무정 등이 숙청되고, 1956년 8월 전원회의에서 연안파 최창익, 윤공흠, 소련파 박창옥, 국내파 오기섭이 숙청됐다.

이는 당 조직위원회 조직위원의 분포와도 유사하다. 48년 제2차 당 대회 당시 조직위원은 김일성, 허가이, 김열, 박창옥, 박영성이었던 데 반해 1966년 제2차 당 대표자회에서 설치된 비서국에서는 김일성이 총비서로, 최용건, 김일, 박금철, 리효순, 김광협, 석산, 허봉학, 김영주, 박용국, 김도만 등이 당 비서로 항일빨치산과 갑산파가 절 반씩 차지했다.

   
▲ 김일성 시대 조선노동당 확립을 함께 한 항일 빨치산 1세대들. 김일, 최용건, 최현, 김책(왼쪽부터). [자료사진 - 통일뉴스]

하지만 1967년 5월 제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박금철, 리효순 등 갑산파와 1969년 1월 군당 제4기 4차 전원회의에서 김창봉, 허봉학, 김광협 등 일부 항일빨치산에 대한 숙청이 이뤄졌다. 이는 김일성의 단일지배체계에서 유일지배체제로 나아가기 위해 이질적 요소를 제거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일성의 당'으로 자리매김한 1970년 조선노동당은 제5차 당 대회를 거쳐 1980년 제6차 당 대회에 이르는 동안 당의 핵심은 항일빨치산 1세대였다. 그러나 김정일 후계구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항일빨치산 2세대와 김정일과 함께 일한 당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일꾼들이 두각을 드러냈다.

80년 제6차 당 대회 당시 정치국 상무위원에는 김일성, 김일, 오진우, 김정일, 리종옥 등이 이름을 올렸고, 김정일, 김중린, 김영남, 김환, 연형묵, 윤기복, 홍시학, 황장엽, 박수동 등이 당 비서가 됐다.

또한, 제6차 당 대회부터 신설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의 경우, 80년 당시에는 오진우, 김정일, 최현, 오백룡, 전문섭, 오극렬, 백학림, 김철만, 김강환, 태병렬, 리을설, 주도일, 리두익, 조명록, 김일철, 최상욱, 리봉원, 오룡방 등이 선출됐다.

즉, 김정일 후계구도를 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항일 빨치산 1세대를 우대하고 김정일로 대표되는 2세대와 당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에서 활동한 김정일 측근들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김일성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김일성 시대는 다양한 인물들이 뜨고 진 시기이고 항일빨치산 동료들도 많아 집어낼 수없지만 사망할 때까지 김일성의 측근으로 자리한 김일과 최용건, 최현 등을 꼽을 수있다.

김일은 본명이 박덕산으로 '오직 김일성밖에 모른다'는 뜻으로 김일성이 붙여준 이름이다. 그는 1936년 곰의골밀영에서 김일성과 처음 만났으며, 해방후 1946년부터 민족보위성 부상, 내무성 정치국장을, 1959년 내각 제1부수상, 1972년 정무원 총리, 1976년 제1부주석, 1953년부터 당 정치국 상무위원 등을 역임하다 1984년 3월 사망, 혁명열사릉에 묻혔다.

최용건은 1941년 항일연합군지휘간부회의에서 김일성을 만난 뒤 1948년 민족보위상, 1972년부터 부주석, 1966년부터 당 비서로 일했으며 1976년 9월 사망, 혁명열사릉에 묻혔다.

최현은 1907년 독립군 가정에서 태어나 무장투쟁에 참가했으며, 한국전쟁시기 제2군단장을 지냈다. 그리고 당 중앙위원회 군사부장, 당 비서 겸 민족보위상, 인민무력부장,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거쳤으며 1982년 사망했다. 최룡해 당 비서의 부친이다.

김책은 1927년부터 항일혁명에 참가해 1932년 유격대에 입대, 초대 내각 부수상 겸 산업상, 전선사령관 등을 지냈지만 1951년 한국전쟁 중 사망했다. 김국태 당 검열위원장이 그의 아들이다.

 

   
▲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식화된1980년 10월 열린 제6차 당 대회. 오진우(맨 오른쪽)의 모습이 담겨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정일 시대(1994~2011), 후계구도 확립자들

김정일 시대 조선노동당의 핵심을 이룬 인물들은 항일빨치산 2세대와 김정일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쳐 선군정치를 핵심으로 내세운 김정일 시대는 당 대표자회가 30년만에 열렸을 뿐, 공식적인 당 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당 인사변동 보다는 오히려 김정일의 현지지도에 누가 더 많이 동행했는가를 두고 분석하는 경향이 많다.

김정일 시대 현지지도 동행자 횟수로 보면 현철해 당 중앙위원회 위원이 677회로 가장 많고, 이어 김기남 당 비서(616회), 장성택 당 중앙위원회 위원(510회), 리명수 당 정치국 위원(486회), 박재경 당 중앙위원회 위원(456회) 순이다.

하지만 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김정일과 함께 오진우가 1995년 사망할 때까지 항일빨치산 1세대로 당의 중심을 잡았다. 오진우는 1968년 당 비서에 이어 제6차 당 대회 이후 줄곧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이름을 올렸고 북한에서 몇 안되는 원수칭호를 받았다.

김정일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인 조명록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80년 제6차 당 대회부터 줄곧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2010년 사망 전까지 김정일의 후계구도를 지켜왔다.

그러나 공식적 서열과 상관 없이 김정일 여동생인 김경희와 김경희의 남편 장성택이 지근거리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대남분야에서는 김용순 비서가 최측근으로 활약했지만 일찍 사망했다.

   
▲ 김정일 시대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비서들. [자료정리 - 통일뉴스]

김정일 시대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열린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는 김정은으로의 후계구도를 명확히 하기 위해 당을 정비하는 자리였다.

여기서 오진우 사후 인선되지 않던 정치국 상무위원에 김영남, 최영림, 조명록, 리영호가 선출됐다. 그리고 당 비서로 기존 김기남, 최태복 외에 최룡해, 문경덕, 박도춘, 김영일, 김양건, 김평해, 태종수, 홍석형 등이 이름을 올렸다.

또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신설되면서 김정은이 처음 등장해 리영호와 함께 선출됐고, 위원으로 김영춘, 김정각, 김명국, 김경옥, 김원홍, 정명도, 리병철, 최부일, 김영철, 윤정린, 주규창, 우동측, 최룡해, 장성택이 올랐다.

즉, 제3차 당대표자회 이전까지 오진우, 조명록으로 대표되는 항일 빨치산 1세대들을 중심에 놓고 빨치산 2세대와 김정일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포진됐다면, 그 이후에는 이들을 중심으로 김정은으로의 후계구도 발판을 놓은 셈이다.

   
▲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당 고위간부들, 당대표자회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정은 시대(2011~현재), 노.장.청 배합을 통한 신진세력의 등장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 이후 후계구도의 발판을 마련한 김정은 시대의 당 인물들은 노.장.청 배합으로 풀이된다. 즉, 이제는 노년기에 접어든 항일빨치산 2세대 원로그룹을 존중하고 실질적으로 당을 이끄는 전문가 집단인 장.청 인사들을 신진세력으로 포진시킨 것이다.

2012년 4월 열린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김정은, 김영남, 최영림, 최룡해, 리영호가, 당 비서로 김경희, 박도춘, 김기남, 최태복, 김양건, 김영일, 태종수, 김평해, 문경덕, 곽범기 등이 선출됐다. 사망한 김정일은 영원한 총비서로 남고 김정은은 제1비서에 올랐다.

하지만 2013년 12월 '반당 반혁명적 종파행위'로 장성택이 숙청되고 관련자들이 축출되면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유일영도체계에 확고한 인물들이 당을 구성한다.

   
▲ 김정은 시대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비서. [자료정리 - 통일뉴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운구차와 함께 걷던 장성택, 김기남, 최태복, 리영호, 김영춘, 김정각, 우동측 중 현재 김기남, 최태복, 김정각을 제외하고 모두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숙청되고 오수용이 당 비서에 오르는 등 끊임없이 김정은 체제 공고화가 진행되고 있다. 김정은 시대 조선노동당의 인물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현재 당 정치국은 상무위원 김정은, 김영남, 황병서, 위원 최룡해, 박봉주, 김기남, 최태복, 박도춘, 양형섭, 강석주, 리용무, 김원홍, 김양건, 곽범기, 오수용, 후보위원 오극렬, 김평해, 최부일, 로두철, 조연준, 리영길, 태종수이다. 당 비서는 박도춘, 김기남, 최태복, 최룡해, 김양건, 김평해, 곽범기, 강석주, 오수용 등이다.

김정일 시대는 선군정치와 이른바 측근정치가 주효해 현지지도 수행횟수와 당비서의 역할이 중요했다면,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는 당 공식회의 체제가 작동해 당 정치국과 당중앙군사위원회의 역할과 비중이 더 커진 것으로 평가된다.

박봉주, 곽범기, 로두철 등 경제 전문가들이 중용되고, 황병서, 최룡해 등 비 군부 출신이 군 총정치국장을 맡은 것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김정일 시대가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과 함께 '고난의 행군기'를 거치면서 '선군정치'를 앞세운데 비해 김정은 시대는 당과 내각을 정상화 하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국 상무위원이었던 리영호 총정치국장의 숙청과 잦은 인민무력부장 교체 등 군인사는 선군정치 시기를 거치면서 과도하게 집중된 군부의 힘을 덜어내는 과정으로 볼 수 있고, 비 군부 출신 총정치국장의 임명은 군에 대한 당적 지도의 관철 의지로 읽힌다.

황병서, 최룡해를 양두체제로 삼아 권력 편중 현상을 막은 점과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이 일선에 나선 점도 특색으로 꼽을 수 있다. 대남비서인 김양건이 김정은 측근으로 움직이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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