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별들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고흐)


 전태일의 마지막 일기에서 

 ......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 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부산대의 한 교수가 총장직선제 폐지 반대를 외치며 투신자살했다.

 그는 '대학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면 총장 직선제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이를 위한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아,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1991년 5월이었다. 불의에 항거하는 죽음의 행렬이 이어졌었다.

 십여 만 명의 시위대가 연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었다.

 신촌 기찻길 아래를 지날 때였다. 뒤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한 아주머니가 투신자살했다고 했다.

 나는 그때 뜨거운 피가 솟구쳐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아, 역사의 수레바퀴를 조금이라도 앞으로 굴릴 수만 있다면 나도 자살하고 싶다!'

 한 시인은 우리들을 조소했다.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그는 모를 것이다.

 죽음의 굿판을 벌릴 수밖에 없는 이 땅,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우리 모두 함께 영원히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 그들은 죽음을 택한다는 것을.

 아, 그의 죽음으로 부산대의 총장 직선제가 지켜지는 건가?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부끄럽고 서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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