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6월, 20여일간에 걸쳐 멕시코와 쿠바 일대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일행은 모두 네 명. 70대 초반의 전직 교수, 60대 초반의 현직 내과의 원장, 50대 후반의 인터넷 신문 대표, 그리고 50대 후반의 출판기획자인 필자다.

이번 여행에 대한 각자의 목적이 있었겠지만 나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앞서 변화하기 전의 쿠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또한 멕시코 고대문명 유적과 ‘멕시코 혁명’ 후예들의 모습도 직접 보고 싶었다.

이러한 흐름에 맞게 멕시코와 쿠바 여행에서 보고 만나고 느낀 것을 소박하게 쓸 생각이다. 이 연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게재된다. / 필자 주


▲ 달의 피라미드에서 바라본 풍경. 왼쪽에 태양의 피라미드가 보이고 우측에 쭉 뻗은 길이 '죽은자의 거리'이다. [사진-임영태]

태양의 피라미드에서 바라본 풍경

태양의 피라미드 위에서면 주변의 모든 것이 보인다. 주변에 평야가 펼쳐지고 저 멀리에 산이 보인다. 정면 바로 앞에는 열대 숲이 있고 좀 나아가면 나무들이 보이고 산이 위치해 있다. 뒤쪽으로는 유적지에서 조금만 나가면 주택들이 위치해 있고 산은 저 멀리에 있다. 왼편으로(남서쪽 방향으로) 멕시코시티가 저 멀리 보인다. 구릉과 함께 도시가 일부 보이고 그 너머에 멕시코시티의 거대도시가 자리를 잡고 있다. 오른편 그러니까 달의 피라미드가 위치한 곳으로는 산과의 거리가 짧다. 그림 같은 풍경이다.

사람들은 헉헉 거리며 계단을 오른다. 처음에는 첫 단까지만 오르겠다고 마음먹지만 결국은 마지막 단까지 오른다. 제일 위에는 우주와 통하는 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막아 놓았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열심히 찾아보았더니 그 비슷한 모습을 한 곳이 보였다. 하지만 그냥 돌들과 시멘트만 있을 뿐이다. 정상에서는 젊은 학생들이 즐겁게 떠들며 사진을 찍고 있다.

정상에 서면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주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따가운 햇볕도 그다지 두렵지 않다. 주변 풍경이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마음 같아서는 이곳에서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별로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다시 내려가야 한다. 우리는 모두 단지 스쳐가는 바람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두고 떠나 왔듯이 모든 것을 두고 떠나는 여행객이다. 눈으로 보고 느낀 작은 것만 마음속에 담아갈 뿐이다.

하지만 이 짧은 순간 본 기억을 머릿속에 얼마나 오랫동안 담을 수 있으랴. 여행기를 쓸 때쯤이면 그 모든 기억이 거의 지워져 있을 텐데. 지금 나는 그때 찍었던 사진들을 보면서 가까스로 그 순간의 기억을 떠올려 보지만 그 순간의 감흥은 도저히 살릴 수가 없다.

경치에 취해 놀다가, 이곳저곳 사진을 찍다 보니 아무도 안 보인다. 일행은 모두다 저 아래에 내려가 있다. 나는 헐레벌떡 계단을 내려갔다.

▲ 아래에서 본 태양의 피라미드. [사진-임영태]

▲ 눈에 확 띠는 드레스를 입은 한 여성이 태양의 피라미드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사진-임영태]

▲ 태양의 피라미드 중간쯤에서 내려다 본 풍경. [사진-임영태]

▲ 태양의 피라미드를 오르기 전 펑크룩 스타일의 남성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여성들. [사진-임영태]

▲ 태양의 피라미드 정상을 향해 계단을 오르는 관광객들. [사진-임영태]

▲ 태양의 피라미드 정상에 선 필자. [사진-임영태]

시간도 부족하고, 동선도 너무 길다. 쉴 나무그늘 한곳도 없다. 이런 곳에서 땡볕에 걸어다니며 구경하는 것은 일종의 고역이다. 차라리 노동이 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노는 것도 체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도 열심히 노래를 불렀던 것일까? ‘젊어서 놀아야 한다’고.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얼씨구절씨구 차차차.’
나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어른들이 술을 마시며 장구치고 놀 때 부르던 그 노래의 가사가 왜 그런 것이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화무십일홍’의 의미도 도무지 다가오지 않았다. ‘인생은 순간이다’라는 말도 너무 싫었다. 하지만 이제야 그런 말들이 이해가 된다고 한다면, 나를 아는 사람들이 웃을 지도 모르겠다. ‘너도 그런 말을 하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구경하면서 보니까 그 땡볕 여기저기에 인디언 원주민들이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저들은 하루에 몇 개나 팔까? 이 더운 날씨에 과연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 몇 억 명이나 되는 현실을 여기서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잠시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때 한 인디오 아저씨가 우리에게 돌로 깎은 신상을 제시하며 사라고 한다. 기념품을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물어보니 50이라고 쓴다. 50페소는 너무 싸고 50달러면 너무 비싸고. 알고 보니 50달러라는 것. 포기하고 돌아서는 데 계속 따라오면서 값을 깎아 줄 테니 사라고 한다. 아마도 반값이면 살 수 있을 것 갔기는 한데…. 하지만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마음은 편치가 않다. 이 거대한 문명의 후예들이 오늘 이 땡볕 아래서 기념품이나 팔고 있는 현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생각하니 그랬다. 갑자기 북아메리카 아파치족 인디언 추장으로 미군 기병대와 싸워 신화적인 인물이 된 제로니모의 마지막이 생각났다. 그는 1886년에 생포되어 세인트루이스 세계 박람회에서 자기 사진이 든 25센트짜리 우편엽서를 파는 가련한 신세로 전락했다가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서 생애를 마쳤다. 

▲ 테오티우아칸 유적지에서 기념품을 팔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하루에 몇 개나 팔까? 과연 그걸로 생활은 될까? [사진-임영태]

▲ 흥정을 하고 있는 상인과 관광객. [사진-임영태]

▲ 기념품들 1. [사진-임영태]

▲ 기념품들 2. [사진-임영태]

▲ 기념품들 3. [사진-임영태]

▲ 기념품 상점들. [사진-임영태]

동굴식당에서 멕시칸 정통 점심 식사

일차로 태양의 피라미드까지만 돌아보고 식사를 먼저 하기로 했다. 아침도 간단하게 먹었고, 간식도 먹은 게 없어서 배가 고팠다. 시간도 점심시간을 지나 있었다. 유적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음식점을 찾았다. 동굴 식당. 천연 동굴을 개조해 만든 식당은 멕시코식 음식점이다. 운치가 있고 시원하다. 자연을 이렇게 사적으로 사용해도 되나? 이곳은 분명 국유지일 텐데. 불하를 받은 것일까? 아니면 임대료를 내고 쓰는 것일까?

홍 목사님의 권유에 따라 멕시칸 음식을 몇 가지 시켰다. 그 유명한 멕시코 술 데낄라도 한 잔씩 했다. 식사는 내 입맛에는 괜찮았으나 다른 사람들은 별로였던 모양이다. 멕시코는 소스 천국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소스가 있다. 그런 소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멕시코 음식을 먹는 게 쉽지 않다. 데낄라는 37도로 독했으나 느낌은 순했다. 멕시코에서는 데낄라가 여성용이란다. 멕시코 여성들 대단하네. 멕시코 남성들의 마초이즘은 유명한데 그들과 함께 사는 멕시코 여성들의 생명력 또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은 풍성하고 배가 부를 정도로 충분히 나왔다. 하지만 음식값 또한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6명의 식사비와 음료, 술값은 대략 1,800페소(우리 돈 약 14만 원가량). 1인당 우리 돈으로 24,000원 정도 나온 셈이다. 이곳에 식당이 하나밖에 없다보니 독점가격이 작용한 것일까? 수준 있는 관광지 레스토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고 우리 물가 수준으로 보면 크게 비싼 것은 아니다. 하지만, 멕시코 GDP수준과 물가수준을 감안하면 상당히 비싼 편이라는 이야기다.

▲ 점심 식사를 한 동굴 식당. [사진-임영태]

점심 식사 후 다시 유적지 관람에 나섰다. 본격적인 관람에 나서기 전 홍 목사가 주변에 서 있던 택시와 흥정을 했다. 흥정 결과 택시 한 대당 560(택시비 500페소+통행료 60페소)페소에 멕시코시티의 숙소까지 실어다주기로 계약했다. 한 대당 대략 45,000원 정도이니 두 대에 9만원이다. 적은 돈이 아니지만 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택시로 갈아타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그 비슷한 돈이 들어야 할 형편이다. 게다가 기다리는 시간과 버스 운행 시간을 감안하면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역시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의 피라미드에서 바라본 풍광

▲  '죽은자의 거리'를 걸으면서 바라본 달의 피라미드. [사진-임영태]

▲ '죽은자의 거리'에서 달의 피라미드를 향해 걷다가 우측에 있는 '퓨마의 집'. 퓨마 벽화가 보인다. 멕시코에서 퓨마는 수호신이다. [사진-임영태]

달의 피라미드까지 걸어가는 거리가 제법 멀었다. 주변 피라미드는 이제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어서 빨리 달의 피라미드에 올라 보고 싶다는 생각만하고 열심히 걸었다.

이 거리, 즉 죽은자(死者)의 거리를 걸으면서 포로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죽음을 앞두고 이 거리를 걸어갈 때 그들의 머리에는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까? 삶과 죽음에 대해서? 전쟁의 패배 원인에 대해서? 운명에 대해서? 두려움에 떨었을까? 체념했을까? 저주했을까? 분노했을까? 저항했을까?

사람마다 시기마다 다 달랐을 것이다. 인간의 삶이 하나가 아니듯이 이 길을 걸은 사람들의 고민과 생각도 다 달랐을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도 온갖 생각이 다 스쳐갔을 것이다.

어쨌든 이 길을 수많은 사람이 걸어갔고, 그들은 결국 자연적 수명을 다하지 못한 채 어느 순간 제물로 바쳐졌거나 목이 잘려 죽었을 것이다. 그들의 삶이, 죽음이 오늘 이 길을 걷는 나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한국에서 비행기로 태평양을 가로질러 와서 지금 이곳에 서 있는 것일까? 어찌 알겠는가? 나는 단지 내가 이곳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달의 피라미드에 올랐다. 이미 우리 일행 여섯 명 중에서 세 사람은 달의 피라미드 옆 작은 제단의 그늘에서 쉬기로 작정하고 그곳으로 향한 상태다. 나머지 세 사람은 각기 달의 피라미드 계단을 오른다. 그러나 달의 피라미드는 중간 지점에서 가로막혀 정상까지는 가지 못하게 돼 있다. 쇠줄로 막아 놓았다. 그 줄을 넘어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아무도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도 그렇다. 여행객의 예절이며 인간의 기본상식이다.

그런데도 갑자가 다른 생각이 든다. 저 선을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 관리소 직원들이 금방 쫓아올까? 체포될까? 주변에는 그런 일을 할 직원이나 공무원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금줄을 넘어서지는 않는다. 달의 제단 바로 앞에 있는 유적 하나는 발굴 작업을 하는지 보수 작업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인부들이 작업 중이다.

달의 피라미드 중간층에서 바라보는 세계는 태양의 피라미드에서 바라보는 세계와 또 다르다. 저 멀리 멕시코시티가 정면 오른쪽으로 바라다 보인다. 도시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저곳이 그곳이라고 짐작된다. 좌우로 넓은 평지가 보이고 그 끝부분에 산이 보인다. 죽은자의 길이 쭉 뻗어 있고, 전체 피라미드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태양의 피라미드도 뚜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분다. 모자를 벗어본다. 시원하다. 이곳에서 맥주 한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하지만 맥주는 없다. 물이나 마셔야지. 그러나 물은 더운 날씨 때문에 금방 뜨뜻해졌다. 원래 멕시코 물맛도 별로지만 미지근하고 뜨듯하니 더욱 맛이 없다. 그래도 물을 마신다. 입안에 넣고 돌린다. 꿀꺽꿀꺽 마시기보다는 이게 갈증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기억에 남아있다.

농담처럼 진담처럼 ‘시원한 막걸리 한잔 마시면 기분 좋겠다’고 말해 본다. 저녁에는 시원해질 텐데, 몰래 들어와서 이 제단 위에서 소주 한잔 하면 운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한국의 유적지에서 그런 짓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다만 그냥 상상일 뿐이다. 이곳에 온 뒤로 아직 달을 못 보았다. 그믐과 초승 사이인가? 우리는 한동안 달을 보지 못한다. 달을 보게 되는 것은 쿠바의 아바나에 가서였다.

▲ 태양의 피라미드에서 바라본 달의 피라미드. [사진-임영태]

▲ 달의피라미드 확대된 모습. [사진-임영태]

▲ 달의 피라미드에서 바라본 태양의 피라미드. [사진-임영태]

▲ 달의 피라미드 위에서 정겨운 연인. [사진-임영태]

▲ 달의 피라미드 바로 앞에서는 새 유적을 발굴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사진-임영태]

▲ 달의 피라미드에서 바라본 옆 제단 유적. [사진-임영태]

택시를 기다리면서

달의 피라미드에서 내려와 그 오른편에 있는 궁전터로 갔다. 사제가 살던 곳인지 왕이 살던 곳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최고 지도자가 살던 곳임에 틀림없다. 처음에는 사제가, 나중에는 왕이 그곳에 살았을 것이다. 그곳에서 보는 세계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확실히 보는 위치에 따라서 시각이 달라지고 세상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는가 보다.

그곳은 그늘이 지고 시원하다. 그 집 아래 있으니 별로 덥다는 생각이 안 든다. 이곳 멕시코시티의 날씨는 한낮에 햇볕이 엄청 뜨거운데도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하다. 서늘하다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습도가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고원지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멕시코의 저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전혀 다른 날씨가 기다린다는 데, 우리가 갈 칸쿤은 어떨지 궁금하다.

강한 햇볕 속에서도 나는 정글 모자 비슷한 걸 써서 얼굴이 타는 걸 어느 정도는 방지했다. 하지만 챙이 작은 멋쟁이 모자를 쓴 이 대표는 얼굴이 타는 걸 막지 못했다. 하룻만에 얼굴이 완전히 시뻘겋게 익어버렸다. 강렬한 멕시코의 태양 아래서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선크림 같은 게 필요할 모양이다. 그늘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모자와 긴팔 옷도 필요하다. 반팔 옷을 입었던 원장님은 팔 때문에 그날 저녁 고생하셨다. 저녁 내내 오일과 치료재를 열심히 발랐으나 화끈거리는 화상의 따가움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 특히 우리와 동행했던 젊은 인류학자는 뜨거운 태양볕 아래서 2도 화상 수준으로 팔이 타버려 밤새 끙끙 앓았다는 후문이다.

▲ 궁전터. [사진-임영태]

▲ 궁전터 내부 모습. [사진-임영태]

▲ 궁전터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임영태]

왕궁터를 구경하고 옆에 있는 출입구를 빠져 나오니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하게 있다. 예약한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지나가는 아주머니한테서 과일주스 얼린 걸 사 먹었다. 망고주스를 비닐에 넣어 얼린 것과 딸기주스를 얼린 아이스케키 같은 것이었다. 한입 베어무니 너무 시원하다. 머리가 띵할 정도다. 달달하고 시원하고 망고 맛도 일품이다. 지금도 그 시원한 맛을 잊지 못할 정도다. 확실히 망고주스는 그랬다. 반면, 딸기를 먹은 이 대표는 맛이 너무 싱겁다고 했다. 순식간에 그걸 다 먹고 나니까 금방 물 생각이 났다.

아이스케키를 다 판 아주머니는 기분이 매우 좋다. 애교도, 수다도 만점이다. 홍 목사님과 무슨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열심히, 즐겁게 수다를 떨고 있는 두 사람 사이가 너무 정겨워 보인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오누이 사이 같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마냥 즐거울 지경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나도 그냥 따라 웃는다. 저 아주머니의 일상이 즐거운 것만은 아닐 텐데 별로 찌든 느낌이 안 든다.

이곳 사람들이 낙천적이라더니 그래서 그런가? 기념품을 팔고 있는 인디오 원주민들도 그렇다. 우리 같으면 물건 흥정만 하고 그냥 가면 별로 인상이 안 좋을 텐데 이 사람들은 그런 모습이 없다. 사면 좋고 안사도 그만이다. 몇 번 말을 붙이다가 안 되면 그냥 간다. 보는 내가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들의 삶인 것을.

테오티우아칸의 피라미드, 달의 피라미드, 사자의 거리, 전쟁, 승자와 패자, 역사, 유적, 그리고 지금의 테오티우아칸의 기념품 판매 인디오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 테오티우아칸 입구에서 열대과일과 음료를 팔고 있는 노점상들. [사진-임영태]

▲ 우리를 테우고 갈 택시 1대가 먼저와 다른 1대를 기다리며 대기중이다. [사진-임영태]

하루를 마감하며

잠시 후 택시가 도착했다. 스페인어를 하는 두 분이 나누어 타고, 우리 일행도 둘로 나뉘었다. 한 대는 교수님, 원장님, 그리고 홍 목사님이. 다른 한 대는 이 대표, 나, 그리고 인류학자가 탔다. 우리는 돌아오면서 멕시코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의 현실과 관련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침 인류학자의 논문 주제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종교의 문화적 역할이었다. 그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종교가 주민들에게 어떤 사회 문화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지 온두라스 사례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었던 것. 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인류학으로 방향을 바꾼 그에게 적합한 주제였고, 대부분이 주민의 대다수가 가톨릭 신도로서 종교의 영향력이 큰 라틴아메리카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는 내용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가는 길보다 엄청 빨랐다. 3시 40분이 넘어서 출발한 택시는 5시가 채 안 돼 숙소 앞에 도착했다. 아침에는 택시타고, 버스타고 해서 모두 3시간 정도 걸렸다. 돈이 좋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우리는 편하게 왔다. 택시는 얼마간 국도를 달리다가 대부분 고속도로를 달렸다. 택시는 총알택시처럼 빠르게 달렸다.

그러나 그렇게 운전이 난폭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곳 택시 기사들도 끼어들기나 빨리 가기에 능숙했지만 우리처럼 아주 총알로 달리지는 않았다.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질이 급하기는 급한 모양이다. 아니면 낮이어서 그렇게 느끼는 건가? 우리나라 총알택시는 주로 밤에만 운행을 하니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목격한 재미있는 광경 하나.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니 도로 오른편 옆쪽에서 지나가는 차를 잡고 있었다. 기사가 급히 차선을 바꿔 중앙으로 빠져나온다. 나는 경찰은 아니고 고속도로 순찰대인가 했더니 기사 이야기는 다르다. 그들은 경찰도 아니고 아무런 단속권한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저렇게 한번 붙잡히면 보통 30분 이상은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정확히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단속권한도 없는 사람들이 저런 일을 벌인단 말이야? 이거 무법천지 아니야? 어쨌든 기사도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친다. 우리도 덩달아 따라 웃는다.

▲ 테오티우아칸 유적지를 오고가면서 만난 멕시코시티의 산동네 모습. 거의 산꼭대기까지 집이 지어져 있다. 집을 다 지으면 세금을 내야 돼서 완공을 안 한 상태로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진-임영태]

숙소에 도착한 뒤 잠깐 휴식을 취한 뒤 이 대표와 나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먹을거리(야채, 과일, 맥주 등)를 사기 위해서다. 홍 목사의 설명을 듣고 주변을 탐사한 결과, 전날 찾지 못한 과일 가게를 찾아냈다.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웠다. 복수박 1개와 사과 2개, 토마토, 바나나, 양상추 두 통, 오이 2개(오이가 매우 큼)를 샀다. 푸짐한 야채 가격이 다해서 1만 2천원(465페소) 정도다. 확실히 야채와 과일 가격은 우리나라 보다 싸다. 우리나라였다면 최소한 2배 이상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먹는 많은 열대과일들이 동남아뿐만 아니라 중남미에서 오는 것이니 그 수송비며, 창고보관비 등 물류비용을 생각하면 싼 게 당연할 것이다.

더불어 맥주(6캔), 물(10킬로그램), 요플레(인줄 알고 샀으나 치즈 조각모음), 맥주안주(땅콩)도 함께 샀다. 비용은 대략 1만 2천 원. 전날 산 멕시코 맥주는 단 맛이 나서 모두들 싫어했다. 결국 그 맥주는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 했다. 먹는 거는 못 남기는 체질이라서. 어제의 실책을 거울 삼아 이번에는 우리가 확실히 아는 상표인 하이네켄 맥주를 샀다.

▲ 숙소 주변의 식료품 상점. 상점이 많은데도 쌀과 야채, 과일 등 우리가 정작 필요한 물품을 가게는 찾기가 힘들었다. [사진-임영태]

그날 저녁은 만찬이었다. 야채, 오이, 고추장, 김, 끊인 누룽지 밥 등. 교수님은 낮에 먹은 멕시코식 성찬이 속을 뒤집어 놓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저녁이 좋아서 다행이라면서 너무 좋아 하신다. 저녁 식사 후 우리는 다시 옥상에 모여 맥주를 마셨다. 교수님은 일찍부터 쉬시고 세 사람은 늦게까지 별을 보면서 맥주 한잔. 달은 보이지 않았지만, 밤공기는 시원하고 좋았다. 모기도 없었다. 아니면 나만 모기에 안 물렸던 것인지 기억이 정확히 안 난다.

그날 저녁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중에는 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에나 밝힐 수 있는 이야기도 있었다. 역사의 비극, 여행의 재미, 인간 삶의 의미를 새삼 다시 돌아보게 해준 밤이었다. 우리들은 12시가 지나서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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