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만남. 2005년 10월 8일 남측 방문객과 함께. [자료사진 - 민족21]
“여기를 잠깐 봐주세요.”
필자의 요청에 기념품을 판매하던 북측 여성이 얼굴을 돌렸다. 2005년 10월 8일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처음에는 해설강사인 줄 몰랐다. 주체사상탑에서 기념품을 파는 판매원인 줄 알았다. 다가가 말을 걸어봤다.

“손님이 많이 와서 바쁘네요.”
“한꺼번에 많은 방문객이 오시니까 나와서 봉사를 합니다.”
“힘들지 않아요?”
“일 없습니다.”

평양외대 영어과 출신

▲ 두 번째 만남. 2005년 11월 13일 최혜옥 해설강사가 주체사상탑의 연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그렇게 첫 만남은 짧게 끝났다. 한 달 뒤인 2005년 11월 13일 다시 주체사상탑을 방문했을 때 그녀가 해설강사로 나왔다. 사실 당시에는 한 달 전에 만났다는 것을 몰랐다. 이번에는 취재진의 수도 4명밖에 안 되고, 다른 방문객도 없어 대화를 나눌 시간이 충분했다.

“대학은 어디를 나왔어요?”
“평양외국어대학 영어과를 졸업했습니다.”
“이곳에 배치된 지는 얼마나 됐어요?”
“4년 정도 됐습니다.”
“애인은 있어요?”
“그런 개인적인 질문은 곤란합니다.”

영어과를 나온 최혜옥 해설강사는 주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해설을 맡는다고 한다. 실제로 두 달 뒤인 2006년 1월 22일 다시 주체사상탑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외국인 방문객을 안내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쪽 방문객에게도 종종 모습을 드러낸다.

주체사상탑의 ‘터주대감’ 진옥순 해설강사

▲ 1982년 주체사상탑이 세워졌을 때부터 이곳에 배치된 진옥순 해설강사가 남측 방문객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해설강사 중에는 사범학교 출신이 많다. 평양의 경우 김일성종합대학 사적과, 김형직사범대학, 김철주사범대학 출신 해설강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주체사상탑 해설강사들 중에는 평양외국어대학 출신들이 다수다. 아무래도 외국인 방문객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 해설강사 중 가장 선임인 진옥순 해설강사도 평양외국어대학 아랍어과를 졸업했다. 진 해설강사는 주체사상탑이 완공된 1982년부터 줄곧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1급 해설강사다.

통상 대학을 졸업하고 배치되면 4급이나 5급 해설강사로 시작하게 되고, 3~4년에 한 번씩 승급시험을 치르게 된다. 진옥순 강사처럼 1급 해설강사가 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셈이다.

동행한 동료가 “북한에서 만난 최고의 미인”이라고 그녀를 추켜세우며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자 처음에는 어색한 표정으로 서더니 금새 환한 미소를 보였다. 키도 크고 지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풍겼다.

▲ 북한의 중앙도서관인 인민대학습당에서 바라다 본 주체사상탑. [자료사진 - 민족21]
그녀가 근무하는 주체사상탑은 평양 동대원구역 신리동에 자리잡고 있으며, 1982년 4월 15일 김일성 주석의 70회 생일을 맞아 ‘주체사상을 창시한’ 김 주석의 업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2년여에 공사 끝에 완공했다. 탑신의 높이는 150m이며 봉화의 높이는 20m로 세계적으로 석탑 중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고 선전된다.

탑신의 앞, 뒤, 양옆에는 70개의 단으로, 탑신은 2,550개의 화강석으로 구성돼 있다. 이는 김 주석의 70평생의 하루 하루를 상징한다고 한다. 기단에는 김일성화가 앞 뒤 35송이씩 총 70송이가 새겨져 있다.

탑 앞에는 노동자, 농민 지식인을 형상하고 있는 30m의 청동으로 제작된 3인 군상이 세워져 있다.
“전 인민이 함께 단결해 주체사상의 조선노동당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을 상징합니다.”
최 강사의 설명이다.

주체사상탑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벽면에는 각 국에서 보낸 옥돌들로 장식돼 있다.
최 강사는 “주체사상탑이 평양에 건립된다는 소식에 주체사상의 신봉자 등 82개국 252개의 국제기구와 단체 등에서 자신들의 성의도 깃들게 해달라고 돌들을 보내왔다”고 말했다.

탑 안에는 150m까지 올라가는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다. 승강기에는 숫자뿐 아니라 ‘ᄌ’, ‘ᄀ’이라는 층이 표기돼 있다. ‘ᄌ’은 지하를, ‘ᄀ’은 기단을 의미한다.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최혜옥 해설강사는 남쪽 언론에도 소개된 바 있다. 2006년 8월 24일 북한의 <조선중앙TV>는 잠비아공화국대표단의 주체사상탑 방문 장면을 방영했는데, 남측의 일부 언론에서 “잠비아공화국 부대통령 일행이 주체사상탑을 방문해 미모의 여해설강사로부터 탑에 대한 설명을 듣고있다”고 보도했다. 그 ‘미모의 여성 해설강사’가 최혜옥 강사다.

▲ 2005년 10월, 2005년 11월, 2006년 1월, 2014년 9월 최혜옥 강사의 모습. [자료사진 - 민족21]
2006년 5월 15일 다시 만난 최 강사는 한층 여유로워 보였고, 성숙한 모습이었다. 자주 봐서 그런지 카메라를 들이대도 어색한 표정이 없었다. 아마도 “애인이 있냐”는 질문에 대답을 회피했던 최 강사가 그 즈음 결혼을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음해 아이도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최혜옥 강사의 작별인사는 항상 “또 오십시오”였다. 그러나 2006년 5월 15일의 만남을 끝으로 다시 볼 기회가 없었다. 주체사상탑에 가더라도 다른 해설강사가 나왔다. 아마도 출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통일뉴스>에 실린 방북취재기사를 통해 그녀의 모습을 우연히 다시 볼 수 있었다. 2008년 9월 이곳을 방문한 남측 방문단에게 해설하기 위해 나온 최 강사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었던지 나이가 많이 들어 보였다. 안경도 쓰고. 당시 남측 방문단에 동행했던 <통일뉴스> 기자가 최혜옥 강사에게 북측 해설강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적지를 질문했다.

“해설강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사적지가 어디인가요?”
“선생이 한번 매겨보십시오.”
“가장 먼저 북에 방문하면 찾는 만경대고향집이 아닐까요?”
“어디나 다 보람되지만 아무래도 만경대고향집 해설강사로 가장 가고 싶어하고 두 번째가 주체사상탑이나 백두밀영입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이곳도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라 긍지로 삼고 있습니다.”

그녀는 출산 후에도 여전히 같은 직장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14년 외국인들의 평양방문 사진첩 속에서 ‘낯선 얼굴’을 발견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파마를 살짝 한 모습이었다. 10년의 세월 속에서 어느 덧 중년여성이 돼 있었다. 다음에 만나면 세대주(남편)와 아이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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