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탄저균 불법 밀반입

탄저균 불법 밀반입과 관련하여, 한․미 당국은 지난 7월 11일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 합동위 산하에 합동실무단을 구성했다고 한다. ‘한미 생물방어 협력과 주한미군으로의 탄저균 샘플 배달사고(5.27) 관련 사실관계 파악 및 대책 마련을 위한 한미 합동실무단(JWG)’이 그것이다. 살아있는 탄저균 불법 밀반입 사실이 알려진 지 무려 40여일이 지난 뒤다.

탄저균은 미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제1급(Category A)’으로 분류할 만큼 인간에게 가장 유해한 생물작용제(무기)다. 국방과학연구소에 따르면 탄저균은 10kg 만으로도 최대 60만 명을 살상할 수 있다고 한다. 메르스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세균이다. 그런데도 메르스에 대한 전 국민적 공포의 여파로 미군의 탄저균 밀반입 문제가 묻혀왔다.

구성된 이 기구는 ‘조사단’이 아니라 ‘실무단’이다. 그 한계가 이름에서부터 뚜렷한 것이다. 활동 범위도 사실상 5월 27일의 밀반입 사건의 범위를 크게 넘어서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조사 및 재발방지책은 이달 중으로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측의 자체 조사결과와 이를 바탕으로 한 합동실무단 활동, SOFA 합동위 등을 통해 최종 마무리될 것이라고 한다. 미측의 자체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합동실무단이 활동한다니. 게다가 이 기구에 참여하는 민간 전문가는 소수이고, 그나마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배제되었다.

미국 국방부는 '살아있는 탄저균의 우연한 배달:검토위원회 보고서'라는 제목의 탄저균 배달사고 진상조사 보고서에서 "관련 프로그램의 규제를 받지 않은 채 살아있는 탄저균을 배달한 것은 심각한 규정 위반"이라면서도, 이번 사고의 정확한 원인이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책임주체도 특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앞으로 품질통제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방사선 조사와 세포 생사판별 시험과 같은 관행들을 개선하기 위한 공통의 기준운영절차(SOP)를 준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는 탄저균 프로그램의 유지 운영을 전제로 하여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다.

미 국방부의 발표와 관련하여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한미동맹의 생물 방어 협력 합동실무단은 생물 방어 프로그램의 지속적인 협의를 보장할 것"이라면서 "생물 방어 프로그램이 한국 국민과 양국 군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지키기 위해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한국측 파트너들과 점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탄저균 실험과 훈련을 앞으로도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합동실무단이 할 수 있는 역할이란 미측의 조사결과를 추인해주고 한미당국이 노력했다는 생색을 내는 것 밖에 할 게 없을 것이다.

SOFA 개정 여부와 관련해서는, SOFA 합동위 공동위원장 간에 서명한 'Agreed Recommendation'(합의 권고문)을 개정할 모양이다. 한국 당국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한․미 소파 개정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생화학무기의 한국 반입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는데, 고작 합의 권고문을 개정한다니 말문이 막힌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미국의 한국 주권 유린과 한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무시가 뚜렷이 드러난다. 독일의 경우 탄저균 반입 사실이 알려지자, 해당 미군기지가 들어선 지역의 시장과 주 총리가 강력히 항의했고, 주독미군은 즉각 지역 시장에게 연구소를 공개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고 하니 양쪽의 대응이 우리의 경우와 대비된다. 이와 함께 세월호와 메르스 대응에서 보았던 것처럼, 미국 뒤에 숨은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적극적인 의지와 능력이 없는 정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미군의 탄저균 밀반입은 생물무기의 “개발, 생산, 비축”을 금지하고 “직접 또는 간접으로 양도”를 금지하고 있는 생물무기 금지조약 위반이다. 또한 생물무기(작용제)의 “(개발)․제조․획득․보유․비축․이전․운송을 금지한 화학무기․생물무기 금지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기도 하다. 비록 한미소파 제9조 5항이 미군의 ‘군사화물’에 대한 세관 검사를 면제하고 있으나 세관 검사의 면제가 곧 미군의 한국으로의 물품 반입이 국내법 위반을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될 근거는 없다.

오히려 한미소파 제7조에 따라 미군이 국내법을 준수하도록 한미소파를 운용해야 한다. 이에 국내법에 위배되는 탄저균과 같은 미군의 물품 반입은 한미소파 개정되기 전이라도 한미소파 제7조의 취지에 따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생화학전 교리와 작전계획 등 폐기해야

일각에서는 한․미 소파의 개정이 주한미군 생화학무기 반입의 근본 대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미 당국의 생화학전 교리와 전략, 그에 따른 작전계획과 훈련 등이 중단되지 않으면 한․미 소파의 개정은 생화학무기 반입과 실험을 합법화하고 정당화해 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미국은 2011~2012년에 사후대응보다 사전대응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생화학전 교리와 작전계획을 강화했다. 이후 한․미 군당국은 한․미 생물방어훈련 등 생화학전 훈련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주한 미2사단 제1기갑여단을 대신해 9개월간 한국에 순환배치되는 미3군단 예하 1기갑사단 제2기갑여단은 한국에 배치되기 전 미국 종합훈련소에서 집중적인 생화학무기 공격 대처 훈련을 진행했다.

한․미 당국은 북한의 생화학무기 사용에 대비한 방어무기의 개발과 훈련의 필요성을 들어 주한미군의 탄저균 반입을 정당화하려 한다. 그러나 생화학무기는 반인도적이고 불법적인 무기로서, 적국이 생화학무기로 공격한다고 해도 생화학무기로 반격하는 것은 불법적인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더욱이 생화학무기에 대한 방어무기의 개발은 곧 공격무기 개발이 된다. 생화학무기 개발의 특성상 방어무기 개발은 공격무기의 개발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또 방어훈련은 그 자체로 공격훈련을 포함하게 된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탄저균 등 생화학무기의 한국 반입을 근본적으로 막아내고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려면 시민사회단체가 포함된 진상조사단 구성, 주한미군 제23 화학부대 등이 훈련을 펼치는 영평 로드리게스 훈련장을 비롯한 생화학무기 실험과 훈련장으로 의심을 받고 있는 모든 지역과 장소에 대한 철저하고 성역없는 조사, 책임자의 처벌과 불평등한 소파 개정, 대북 공세적인 생화학전 교리와 전략의 폐기, 생화학전 관련 작전계획와 훈련의 중단이 필수적이다.

(수정-24일 13:28)


 
전 애국크리스챤청년연합 부의장
전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사무처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사무처장
전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정책위원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미군문제팀장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대전충청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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