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분단이 왜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올해 2015년, 나라 안에서나 밖에서나 한반도 남쪽에서나 북쪽에서나 위정자들이나 국민들이나 진보 쪽에서나 보수 쪽에서나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을 강조하고 있다. 당연히 통일에 대한 다짐도 여기저기서 많이 나온다. 그러나 분단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왜곡되어 있다. “김일성이나 북한이 분단의 원흉”이라는 억지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왜곡된 인식으로 바람직한 통일을 추구할 수 있을까.

분단의 원인이나 배경 또는 과정을 제대로 알아야 통일에 대한 올바른 대책이나 해법을 모색하고 제시할 수 있다.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이란 말은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남북으로의 분단이 1945년 8월 이루어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가리킨다. 많은 사람들이 “분단은 외세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믿는다. 이의 연장선에서 “강요된 분단”이란 말도 많이 한다. 분단은 1945년 8월 미국과 소련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그 때는 남한도 없었고 북한도 없었다. 분단의 원흉은 김일성과 북한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이란 말이다.

이른바 ‘6.25전쟁’은 김일성의 남침에 의해 일어났다. 이 전쟁으로 한반도 분단이 굳어졌다. 전쟁은 분단의 시작이 아니라 분단 때문에 일어난 결과였다. 1945년 8월 미국이 제안한 38선을 따라 국토가 분단되고 1948년 8-9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북에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의 정부가 세워지자, 1950년 6월 김일성이 이를 통일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6.25남침 전쟁’이든 ‘적화통일 전쟁’이든 그 전에 이미 분단이 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 아닌가. 김일성과 북한을 ‘전쟁의 원흉’이라고 부를 수는 있어도 ‘분단의 원흉’이라고 우길 수는 없다는 뜻이다. 김일성과 북한에 대해 원한이나 적개심을 가질 수는 있어도 왜곡된 인식을 갖는 것은 곤란하다.

왜 침략자 일본이 아니라 피해자 조선이 분단되었는가?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유럽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독일이 분단되었다. 1945년 이후엔 미국이 전쟁을 가장 좋아하고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되었지만, 그 이전엔 독일이 그랬다. 다른 나라들이 견제하기 어려울 만큼 군사력이 강하니까 호전적으로 된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못하도록 힘을 약화하기 위해 분단시킨 것이니, 독일은 전쟁이란 범죄에 분단이란 처벌을 받은 셈이다. 그러면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를 침략하고 미국까지 폭격한 전범 국가 일본이 분단이란 처벌을 받았어야지, 힘이 약해 항상 침략만 받아온 피해자 조선이 오히려 분단까지 되었으니 얼마나 분통터질 일인가. 더구나 일본은 땅덩어리가 길어서 두 토막으로 자르기도 쉬운데 말이다.

어느 나라든 전쟁에서 승리하면 전리품을 챙기기 마련이다. 실제로 미국은 1898년 스페인과 전쟁을 벌여 이기자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 등을 전리품으로 차지했다. 쿠바는 1959년 카스트로와 게바라 등이 혁명에 성공해 지금은 북한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반미적인 국가가 되었고, 푸에르토리코는 머지않아 미국의 51번째 주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큰 자치령이 되었으며, 괌은 미국의 주와 마찬가지지만 아직 정식으로 편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군사기지로 잘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통치를 받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침략과 점령을 당했지만 1946년 7월 독립했다.

미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 조선은 당연히 미국이 차지했어야 할 전리품이었다. 그런데 1945년 8월 소련이 자청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끈질긴 요구를 받고 한반도로 내려오던 참이었으니, 미국이 전리품 조선을 소련과 38선으로 나누어 점령하게 된 것이다. 바꿔 말하면 패전국 일본은 미국이 통째로 차지했다 물러가는 바람에 온전한 모양으로 남았고, 전리품 조선은 소련과 나눠 점령하는 바람에 분단의 상처를 입은 것이다.

조선이 분단된 것은 무엇보다 우리의 힘이 약했기 때문이다. 국력이 약했기 때문에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 동안이나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고, 힘이 부족했기에 우리 스스로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으며, 이에 따라 미국과 소련에 의한 분단을 막지 못했던 것이다. 국력이 부족해 외세에 의해 분단된 과거를 거울삼아 앞으로 어떻게 국력을 길러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의 뜻대로 평화 통일을 성취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분단 70년이 흐르도록 통일의 문턱에도 이르지 못하는 배경은?

한반도가 분단된 지 70년이 흘렀는데도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엔 남북 사이에 갈등과 긴장이 커지면서 통일은 더욱 멀어지고 있다. 남쪽에서나 북쪽에서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고 외쳐왔지만 통일의 문턱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크게 네 가지 이유를 들고 싶다.

첫째, 외세의 영향력 또는 주변 정세가 남북 관계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 분단이 우리민족의 뜻이 아니라 외세에 의해 이루어졌듯, 통일 역시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러시아든 대외정책의 가장 큰 목표는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한반도 통일이 그들의 국익에 도움 되지 않는 한 반대할 것이다.

특히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남한의 유일한 군사동맹국으로 한반도 분단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북한을 ‘악마’로 남겨놓아야 남한에 미군을 유지하며 무기를 팔 수 있고 중국을 쉽게 견제하거나 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남한 정부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AIIB)에 회원국으로 참가하는 것을 미적거렸던 이유가 미국의 압력 때문이었듯, 러시아가 구상해온 5월 9일 전승절 전후의 남북정상회담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도 미국의 압력 때문 아닌가.

둘째, 남북의 위정자들이 분단을 정권 유지 및 강화에 악용해 왔다. 상대방을 적으로 삼음으로써 권력을 유지 강화할 수 있는 이른바 ‘적대적 공존’을 이루어온 것이다. 특히 독재 정권들은 분단, 반공, 안보 등을 구실로 권력에 대한 비판을 억압할 수 있기 때문에 분단은 그들의 집권 및 통치에 이익이 된다. 예를 들어 통일이 이루어지면 국가정보원이나 군대 같은 기구의 조직, 인원, 예산 등이 줄어들 게 뻔한 데 그 지도자들이 통일을 원하겠는가.

셋째, 양쪽 위정자들이 통일을 원하더라도 자신의 체제를 지켜야 한다. 남쪽에서는 “체제 경쟁은 끝났다”며 자본주의만을 고집하고 북쪽에서는 “우리식 사회주의는 필승불패”라며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체제 통일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남한은 북한이 경제난으로 붕괴되기를 기대하고 북한은 남한이 사회혼란으로 무너지기를 원하겠지만 어느 쪽도 머지않아 붕괴될 것 같지 않다.

넷째, 분단과 전쟁을 거치며 남북 사이에 원한과 적대감이 커졌다. 주로 해방 이전 일제에 협력했던 친일파, 북쪽의 토지개혁에 남쪽으로 쫓겨온 지주들, 북쪽의 종교탄압에 남쪽으로 내려온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된 반북 세력들은 북한을 증오하고 남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을 거부하며 ‘북한 타도’를 주장한다. 특히 친일 세력이 해방 이후 척결되기는커녕 미군정의 도움으로 오히려 정권을 잡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미국 및 일본과 손잡고 반공과 반북을 악용해왔다.

통일을 왜 해야 하는가

통일을 이루어야 할 가장 큰 이유나 필요성은 한 마디로 분단에 따르는 폐해가 너무 크고 통일을 이루면 얻을 수 있는 편익이 몹시 크기 때문이다. 통일 경비가 천문학적으로 들 것이라는 얘기가 많은데 분단 경비는 이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더구나 통일 경비는 남북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더불어 살자는 건설적 투자비용이지만, 분단 경비는 서로 적대시하며 죽이자는 파괴적 소모비용이다. 통일 경비는 천금이라도 아깝지 않지만 분단 경비는 한 푼이라도 아깝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분단 때문에 빚어지는 피해와 고통 등 돈으로 계산하기조차 어려운 대표적 분단 폐해 몇 가지만 소개한다. 첫째, 분단 때문에 정치 발전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북한을 적으로 삼는 사람들이 가장 강조하는 게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자는 것인데, 그들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를 가장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현실이 참 역설적이다. 자유민주주의란 개인의 자유를 핵심 가치로 삼는 민주주의로, 개인의 자유 가운데서 가장 기본적 자유는 사상과 양심, 언론과 출판, 결사와 집회 등의 자유다. 그런데 분단을 핑계로 유지되는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기본적 자유조차 심각하게 제한하며 인권을 탄압하고 있지 않은가.

둘째, 분단 때문에 군사 외교적으로 자주권을 침해받고 있다. 군대의 작전통제권까지 미군에게 맡기는 등 미국에 너무 종속적이라 “남한은 미국의 51번째 주”라는 국제적 조롱을 받는 것은 분단 때문이다. 중국과의 교역규모가 미국과의 무역액수보다 두 배 이상 크지만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증진시키는 데 미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며 망언을 해도 미국의 영향력 아래 일본과 공조를 진전시켜야 하는 것도 분단 때문 아닌가.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어야 진정한 자주 독립국이 될 수 있다.

셋째, 분단 때문에 엄청난 국방비를 쏟아 붓고 있다. 대략 정부 예산의 15-20%다. 국방비 말고도 남북이 체제 경쟁 때문에 모든 분야에서 쓸데없이 지출하는 비용이 얼마나 많은가.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면 국방비를 비롯해 막대한 경쟁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그 만큼 사회복지비를 늘릴 수 있어, 요즘 사회적으로 떠들썩한 ‘무상 급식’ 문제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분단 때문에 빚어지는 이산가족들의 한과 고통이 몹시 크다. 남북 사이에 일가친척끼리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소식을 알아도 제대로 연락도 하지 못하며, 평생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채 죽어가는 이산가족들의 슬픔과 아픔을 달랠 수 있는 길은 분단을 해소하고 통일을 성취하는 것이다.

다섯째, 분단 때문에 여행의 자유도 제한 받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남한은 ‘완도 (完島)’다. 육지와 연결된 ‘반쪽 섬’이 아니라 바다로만 나갈 수 있는 ‘완전한 섬’이란 말이다. 그러기에 해외여행을 하려면 편안한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돈이 많이 드는 비행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여섯째, 분단 때문에 주한미군이 유지되고 이를 통해 퇴폐문화가 확산되는 가운데 범죄까지 늘고 있다. 미군들이 온갖 폭행과 만행을 일삼아도 처벌은커녕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분단 때문이다.

일곱째, 분단 때문에 한반도가 동아시아 긴장과 갈등의 중심에 놓여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사이에도 남북한이 끼어 있다.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어야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

여덟째, 분단 때문에 징병제가 고수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건전한 남자들이라면 거의 모두 인생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20대에 공부하거나 일하다 말고 가장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집단인 군대에 불려가 2-3년 ‘썩어야’ 하는 현실이 왜 지속되는가. 군대에 가기 싫어 자신의 몸을 일부러 망가뜨리기도 하고, ‘빽’을 쓰기도 하며, 해외로 도피하기도 하는 등 온갖 병역 비리가 저질러지는 이유도 징병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해교전이나 천안함 침몰 또는 연평도 포격 등 남북 사이의 갈등이나 무력충돌 때문에 희생된 젊은이들보다 군대 안에서 자살과 사고로 죽어가는 젊은이들이 비교도 할 수 없이 훨씬 많다.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면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꿔, 직업으로 군인을 선택하겠다는 젊은이, 군생활이 적성에 맞겠다는 젊은이, 군대 가야 사람 된다고 생각하는 어른 등 원하는 사람들을 모집해 단결심과 충성심이 강한 군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홉째, 분단 때문에 전쟁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만에 하나 서해교전 같은 무력충돌이 전면전으로 이어진다면 남북 모두 막강한 병력과 최첨단 무기들을 가지고 있는 터에 남쪽에서든 북쪽에서든 멀쩡하게 살아남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요즘 전쟁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또는 팔레스타인에서 보듯, 군인들만 죽는 게 아니라 민간인들이 더 많이 죽는다.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면 끔찍한 전쟁의 가능성이 사라지거나 최소한 줄어들 것 아닌가.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통일’을 말 그대로 ‘모든 것이 하나로 되는 상태’로 정의한다면 통일을 이루기 어렵다. 70년이나 떨어져 지내온 터에 이념과 체제를 금세 하나로 합친다는 것은 가능성도 낮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민주주의나 평화도 목표는 끝이 없기에 ‘민주화’나 ‘평화로 나아가는 과정’을 민주주의나 평화로 간주하듯,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 역시 통일의 일부로 생각한다면 ‘실질적 통일’ 또는 내가 말하는 ‘21세기형 통일’은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다. 남북이 적대 관계를 풀고 서로 협력하며 자유롭게 연락하고 오갈 수 있는 상태에만 도달하면 되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개성공단을 확대하며 이산가족 상봉을 정기적으로 실현하기만 해도 통일의 절반은 이루어지는 셈이다. 2000년 6월 1차 남북 정상회담과 2007년 10월 2차 정상회담의 합의사항, 이른바 ‘6·15합의’와 ‘10·4선언’만 제대로 이행해도 통일의 문턱에 이르게 된다. 나아가 활발하게 교류하며 자유롭게 오가다 보면 통일이 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체제 통일엔 신경 쓸 필요 없다. 통일 한반도의 체제로 남한의 천박한 자본주의도 적합하지 않고 북한의 배고픈 사회주의도 어울리지 않는다. 남북연합이나 연방제를 지향하면서, 남한은 자본주의를 지키되 사회주의 장점인 평등을 조금씩 추구하고 북한은 사회주의를 고수하면서 자본주의 장점인 자유를 조금씩 늘려가면 된다. 남쪽에선 빨갱이 짓이라는 논란 일으킬 것 없이 복지정책을 조금씩 확대하면 충분하고, 북쪽에선 개혁개방을 조심스럽게 확대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적어도 우리 다음 세대에서는, 자연스럽게 자유와 평등이 어우러지는 복지국가 체제의 완전 통일까지 이루어질 수 있지 않겠는가.

* 이 글은 2015년 5월 1일 <새날 희망연대> 초청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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