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나온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 그 내용의 진실성 때문에도 그렇고 또 노이즈마케팅에 비해 판매부수도 부실한 터라 별 감흥 없이 그냥 지나갈 판에 시민단체들이 이 전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로 9일 고발함에 따라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재임 기간 중 남북관계나 정상외교 등과 관련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의심되는 내밀한 내용들을 책에 쓴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윤보선,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역대 대통령들도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남겨 한순간 소동을 피우거나 후폭풍도 있었지만 이번처럼 고발되는 경우는 없었다. 그만큼 이 전 대통령 회고록의 ‘부당함’이 지적된 것이다.

물론 자료의 부당함도 문제지만 진실성은 더 큰 문제다. 전자는 법적으로 가리면 되지만 후자는 역사의 심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많이들 회자되는 소설가 이청준이 <자서전들 쓰십시다>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누구나 자서전을 쓰라고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서전을 쓰고자 한다면 인생의 잘못을 시인할 용기와 진실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인(凡人)들의 자서전도 그러할 텐데 하물며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에게는 더 엄격한 잣대가 적용돼야 할 것이다. 더욱이 이 전 대통령에겐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 있으며, 인터넷상에는 ‘전과 14범’이라는 딱지가 돌고 있다. ‘입만 열면 거짓말 한다’는 말도 있듯이 이 전 대통령 하면 그 말이 떠오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4대강 사업·자원외교·방위산업 등 이른바 ‘사자방’은 차치하고 회고록에서 남북관계 부문만 한정해서 보자.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2009년 8월 28일 “북한은 쌀과 비료 등 상당량의 경제 지원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하고 있었다”(331쪽), 또한 “북한이 제시한 문서에 의하면 정상회담을 하는 조건으로 우리 측이 옥수수 10만 톤, 쌀 40만 톤, 비료 30만 톤의 식량을 비롯하여 아스팔트 건설용 피치 1억 달러어치를 제공하고 북측의 국가개발은행 설립 자본금 100억 달러를 우리 정부가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335쪽, 2009년 11월 7일, 개성회담)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전문가들에 따르면 당시 북측의 이 같은 요구가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은 아니었다고 한다.

아울러, 이 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 2011년 5월 베이징 비밀접촉에서 “천안함 폭침에 대해 북한이 제3자적 입장에서 유감을 표시해서는 안 되며, 북한이란 주체가 드러날 만한 문구여야 한다는 입장”(357쪽)을 전했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공개됐듯이 북측은 2011년 6월 국방위원회 성명을 통해 남측이 베이징 비밀접촉에서 “제발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이라도 만들어 세상에 내놓자”고 애걸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에 북측이 다시 “당치않은 ‘사과’를 전제로 한 최고위급회담(정상회담) 문제는 논의할 필요조차 없다”고 거부하자, 남측이 다시 “(사과가 아닌) ‘유감’이라도 표시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회고록과 북측 국방위원회의 성명이 180도 다른 것이다.

나아가, 이 전 대통령은 “왜 남북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나”(369쪽) 하고 묻고는 “구걸하는 형식의 정상회담은 안 된다”(370쪽)고 답했으나 이 역시 진실게임이 앞에 있다. 앞의 북측 2011년 6월 국방위원회 성명은 남측 인사들이 ‘남북 정상회담을 애걸하면서 돈봉투까지 건네려 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시 조문단으로 왔다가 대통령 접견을 마치고 나가는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 전 대통령이 “이제 앞으로 좀 잘 하세요”(330쪽)라고 말했다는 대목에서는 치기(稚氣)마저 느껴진다. 게다가 중간 중간에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자주 등장시켜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고 원자바오의 말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대목에서는 BBK사건에서의 숱한 말바꾸기가 오버랩 되는 섬뜩함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오죽하면 초록이 동색일 수 있는 류길재 통일부 장관조차 6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된다”면서 “알고 있다고 해서 다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겠는가? 물론 여기에는 박근혜 정부의 남북관계 수장으로서의 불만이 짙게 배여 있다. 모처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용을 쓰는데 어디서 초를 치냐는 항변인 셈이다. 이렇게 보면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북한은 물론 중국 그리고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력들을 적으로 만들고 있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들이 겪고 있다. 자화자찬도 유분수지, 사실관계는 왜곡시키고 불리한 부분은 감추거나 남 탓으로 돌리는 회고록이라면 그 업보는 자명하다. 아마도 자원외교 등의 국정감사와 점점 커지는 국민적 분노에서 벗어나려고 회고록을 발간했겠지만 이제 그 부당하고 왜곡된 내용이 제 무덤을 파는 자멸의 행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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