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2일 노근리평화공원에서 4박 5일간 열린 평화박물관 국제네트워크(INMP: International Network of Museums for Peace) 세계 대회의 마지막 날, 세계 각지에서 온 평화 활동가들과 함께 DMZ 임진각을 찾았다.

참가자들이 한국을 떠나기 전에 분단의 상징인 DMZ를 바라보며 한반도 전쟁 종식과 평화에의 염원을 표명하기 위해 주최 측에서 마지막 공식행사로 마련한 것이었다.

임진각에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망향의 동산, 실향민들이 설날과 추석에는 고향땅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가기 위해 찾는다는 망배단, 그리고 끊겨진 철길에 덩그라니 놓여진 경의선 기관차의 녹슨 모습. 임진각 곳곳의 분단의 현장을 둘러보며 세계 35개국에서 온 평화활동가들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의 현장을 마음에 담아가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 임진각에서 바라보이는 분단의 철조망. [사진 - 정연진]

이곳은 철조망이 겨레의 맥박을 끊어놓은 분단의 현장. 철조망 너머 북녘 땅이 보인다. 자유의다리 너머 보이는 북녘의 산과 들, 임진강 철교 밑을 잔잔히 흐르고 있는 강물은 평온하기 이를 데 없건만, 갈 수 없는 땅. 저 너머 땅도 엄연히 내 나라 내 강토인데...

1945년 해방과 함께 그어진 38선, 지리적 분단에 불과했던 그 선이 남북 단독정부 수립, 한국전쟁을 거치며 극단의 분단시대로 치달아 버리고 말았다. 아직도 21세기로 진입하지 못하고 20세기 냉전의 시대,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 세계인들과 함께 밟아보는 분단의 현장은 더욱 가슴 시리고 아프게 느껴진다.

▲ 임진각을 방문한 국제평화박물관 관계자들. 군사분계선너머 북녘 땅을 바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사진 - 정연진]

▲ 실향민과 이산가족들이 설날과 추석에 주로 찾는다는 망배단. 임진각의 북단에 있다. 그 위로 자유의다리와 임진강철교가 보인다. [사진 - 정연진]

아무리 대한민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십몇위 권에 든다고 해도, 한류라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인을 즐겁게 한다고 해도, 전쟁의 상흔이 치유되지 않고 오늘도 형제가 형제에게 서로가 총부리를 맞대고 있는 살벌한 분단의 현장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이들은 저 철조망을 바라보며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 임진각에 전시된 전쟁과 분단의 비극을 나타내는 사진을 노근리 평화대회 한 참석자가 마음 아프게 바라보고 있다. [사진 - 정연진]

▲ 임진각에 전시된 전쟁과 분단의 비극을 나타내는 사진들. 사진 속 인물들은 아직 살아있을까. [사진 - 정연진]

▲ 철조망 밑에 빼곡히 붙어있는 실향민들의 통일염원 리본. [사진 - 정연진]

가족과 강제로 생이별 당해 평생토록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뜨고 있는 이들의 대를 이은 비극이 서려있는 곳. 군사적 대치로 인해 항상 아슬아슬 불안하고 위태로운 곳. 남이든 북이든 코리아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 그들이 살고 싶은 세상과는 매우 거리가 먼 곳이라 생각할 것이다.

임진각에서 노근리 국제 컨퍼런스 참석자들은 전쟁 종식과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평화선언문을 낭독하고 마치 세계 각국을 상징하듯 색색의 풍선에 평화 염원을 담아 하늘로 올려보냈다. 평화 선언문이 낭독된 장소의 이름은 <새 천년의 장>. 그 이름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 임진각 ‘새천년의 장’에서, 한반도 전쟁 종식과 평화를 염원하는 지구촌 평화활동가의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사진 - 정연진]

▲ 임진각 ‘새천년의 장’에서, 참석자들이 한반도 전쟁 종식과 평화를 염원을 담아 색색의 풍선을 올려보내고 있다. [사진 - 정연진]

‘새 천년의 광장’은 세계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세운 조형물로, 과거를 뜻하는 하단부, 현재와 미래를 상징하는 상단부로 나누어져있다. 미래를 상징하는 상단부는 군중이 어울려있는 모습인데, 여러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수평적으로 손과 발을 맞대고 하늘로 비상하고 있는 모습이다.

공중에 360도로 군상이 펼쳐진 모습은 마치 5대양 6대주를 뜻하는 듯 세계를 응시하는 모습이다. 비상하는 군중의 모습은 새로운 통일 시대를 향해 세계인들과 수평적으로 연대하여 분단의 철조망을 넘어 비상하자는 결의를 나타내는 듯하다. 분단의 현장에서 푸르른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색색의 평화 염원과 세계를 향해 날아오르는 군상의 모습은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노근리평화대회 참석자들은 DMZ가 군사적 긴장과 갈등, 원한과 증오의 상징에서 인류 평화라는 전 세계에 희망 메시지를 전파하는 평화의 메카로 탈바꿈되기를 촉구한다고 선언했다.

또한 선언문에는 남북 대화와 다자간 대화가 속히 재개 되어야 한다는 것과, 노근리에 노근리평화공원이 세워지면서 참혹한 전쟁과 살상의 현장에서 전쟁의 상흔을 씻고 평화와 인권을 상징하는 세계 평화의 상징 장소로 거듭난 것과 같이, DMZ에도 평화공원이 추진되고 그 안에 평화의 소중함을 세계에 널리 전파하는 평화박물관이 건립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 평화선언문을 낭독하는 평화박물관 국제 네트워크 대표 피터 던젠 씨와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정구도 이사장. [사진 - 정연진]

▲ 평화선언문을 낭독하고 풍선을 날려보내고서 환호하는 참석자들. [사진 - 정연진]

진정한 평화란, ‘강자의 억압아래 약자가 침묵하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가 실현되는 상태’라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을 다시금 상기해 보면서, 분단의 아픔을 가슴으로 공감하게 된 이들 세계 평화운동가들이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통일을 지지하는 열정적인 우군이 되어주리라 기대한다. 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 가려고 한다.

서울로 돌아와 노근리평화대회에 참석했던 평화 활동가들과 후속 만남을 가졌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여행객들로 북적거리는 중앙 거리에 ‘Windows for Peace 길거리 박물관’ 이라는 특별한 아이디어를 실현해낸 부부 활동가 블로젯 씨. 박물관을 세우려면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많은 자금과 건물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맹점을 건물 밖 유리창을 전시 장소로 활용해 사람들이 굳이 특정 장소를 찾아가지 않아도 길거리에서 평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만든 분이다.

▲ 노근리평화대회를 이후 서울에서 한반도 평화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활동가들과 후속모임을 가졌다. 모두가 한식 매니아들이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비엔나에서 길거리 평화뮤지엄을 운영하고 있는 블로젯 씨, 왼쪽 맨 뒤가 뉴욕에서 평화뮤지엄을 추진하고 있는 수젠 씨. [사진 - 정연진]

블로젯 씨는 “What can you do for peace now? (평화를 위해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묻는 것부터 시작하는 매우 실천적인 구상을 가지고 있다. 블로젯 부부는 내가 주장하는, ‘평화를 염원하는 세계인을 한반도 통일의 적극적인 지지자로 만들자’는 Action for One Korea (AOK) 취지에 매우 적극적으로 공감을 표하신다. 그러면서 비엔나의 거리 뮤지엄에 AOK 상징인 세계 각국어가 표기된 한반도 평화 그림을 걸면 어떻겠냐고 하신다.

▲ 뉴욕의 평화활동가 수젠 씨는 원코리아 손싸인을 각자 할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마음을 합쳐 동그라미를 만들어야 한다고 나에게 오히려 제안할 정도이다. [자료사진 - 정연진]

뉴욕에서 평화 박물관을 추진하고 있는 수젠 씨는 내년은 히로시마 원폭투하 70주년이라, ‘World Without War’(전쟁없는 세상)를 염원하며 전 세계 곳곳에서 ‘전쟁없는 세상을 위한 종울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전 세계 종울리기 프로젝트를 함께 하면 어떨까?

분단 70년을 맞이하는 2015년 준비를 위해 앞으로 세계 활동가들과의 아이디어 교환과 교류가 활발할 것이라는 뿌듯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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