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인하면 떠오르는 것은 총이다. 그리고 분쟁지역에서 살상무기인 총을 소지하는 이는 바로 군인이다. 전쟁과 군사정부를 겪은 우리에게 군인은 두려움 자체였다.
전 세계 군인이 총을 내려놓고 체력을 바탕으로 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군인 육군 5종 선수권대회'(육군5종 대회)가 지난 9일 경북 영천시 육군3사관학교에서 시작된 것. 이번 대회는 16일까지 진행된다.
'육군5종 대회'는 1946년 프랑스 앙리 드브뤼 대위가 네덜란드 공수부대의 체력훈련 방법을 응용, 육군만을 위한 운동을 고안한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1947년 8월 독일 내 프랑스 점령지인 프라이버그에서 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가 참가한 가운데 첫 대회가 열렸다.
'육군5종 대회'는 국제군인체육연맹(CISM)이 주관하는 대회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지만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하다. 61번째 대회가 열렸지만 한 번도 참가한 경험이 없다. 그래서 이번 대회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대회이자 우리 군인들의 첫 출전대회이다.
'육군5종 대회' 종목은 소총사격, 장애물달리기, 장애물 수영, 투척, 크로스컨트리 등으로 사격, 행군, 수영, 수류탄 투척 등 전시 육군이 지녀야 하는 기본기를 겨루는 셈이다.
즉, 전투에서의 생존성을 보장하고 전쟁터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속도와 정밀성, 지구력, 순발력, 각종 장애물 극복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대회인 것이다.
이 중 11일 오후 육군 3사관학교에서 열린 장애물 달리기는 힘든 경기로 악명이 높다. 총 500m 구간에 10m마다 각종 장애물 20개가 설치되어있다. 줄사다리 넘기, 2단 장애물 통과, 와이어줄 기어서 통과, 평균대 통과, 경사벽 넘기, 웅덩이 통과 등을 해야하는데 하나라도 실패하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선수들이 장애물 달리기 결승점에 들어오면 주저앉기도 하고 들것에 실려 나가기도 한다. 이번 장애물달리기 1위는 중국 판유쳉 군인으로 2분10.7초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선수 중에는 김범규 군인이 2분26초로 34위에 올랐다.
일반 국제경기처럼 각국 군인들은 자국을 응원하고 젖먹던 힘을 다해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지만, 결승점에서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군인의 신분이라는 점에서 서로가 분쟁지역에서 총부리를 겨눈 사이이지만 '육군5종 대회' 장애물 달리기 결승점에 먼저 도착한 군인은 다른 군인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악수를 나누고 등을 두드리며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러시아와 터키, 시리아와 서방 군인들이 그러했고, 한국과 중국 군인들도 한국전쟁에서 총부리 겨눈 적대국의 눈빛을 주고받지 않았다. 군인도 인간인지라 총을 내려놓자 뜨거운 우정을 쌓는 모습 그대로였다.
12일 오전 영천 실내수영장에서 장애물 수영 경기가 진행됐다. 장애물 수영은 50m구간에 총 4개의 장애물을 통과하는 경기이다. 이번 경기에서 브라질 토레스 안드레 군인이 24.7초로 1위를 차지했다.
24~30초 사이에서 판가름 나는 장애물 수영 경기를 보면서 의문이 생긴다. 육군이 수영과 무슨 인연이 있는가. 조직위에 물어보니, 육군도 수영을 한다고 한다.
수색대대, 특전사 부대는 물론 육군사관학교에서도 수영을 가르친다. 전쟁 중 강을 건너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저체온증으로 사망자가 속출할 수도 있기 때문에 육군에게 수영은 중요한 훈련 중 하나인 것이다.
장애물 수영에서도 군인들의 우정은 돋보였다. 첫 출전하는 다른나라 군인에게 다가가 어떻게 훈련하면 되는지를 친절히 알려주고, 수영방법도 가르쳐주는 모습, 조금 뒤쳐지는 군인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장면은 인간애를 느끼게 했다.
이번 '육군5종대회'에는 총 34개국, 317명의 군인이 출전했다. 이 중 멕시코는 비회원국으로 참관 자격으로 참가했다.
당초 북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이름으로 군인 15명(임원 5명, 선수 10명)을 파견할 예정이었으나, 출전 군인 부상으로 참가를 포기했다. 조직위 측은 '육군5종대회'를 준비하면서 군인들이 부상을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북한 불참에 불필요한 해석을 경계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육군3사관학교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호가 사용되고, 국기가 내걸리는 장면, 진한 황갈색 군복을 입은 북한 군인들을 볼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는 '형제의 상'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총을 겨눈 남쪽의 형과 북쪽의 동생이 서로 껴안고 통곡하는 모습이다. '육군5종대회'에서도 남북의 군인이 서로 격려하며 형제애, 자매애를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지난 10일 일부 탈북자 단체들의 대북 전단살포로 남북 군인들이 상호 교전을 벌였다. 군인은 총을 쥔 이상 서로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육군5종대회'에서 남북 군인은 총 대신 악수를 나누고, 체력경쟁을 통한 평화의 장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순간의 아쉬움이지만 오는 2015년 경북 문경에서 '세계군인체육대회'가 열린다. 문경 대회에 북한도 꼭 참가해 남북 군인이 평화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