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여자축구 시상식. 금메달을 딴 북측과 동메달을 획득한 남측 선수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인천 아시안게임이 지난 4일 폐막했다. 북한은 이번 대회에서 종합 7위로 12년만에 10위권 진출에 성공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북한은 여자축구 금메달, 남자축구 은메달이라는 성적을 거둬 축구강국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여기에 남한도 여자축구 동메달, 남자축구 금메달로 남북이 공히 축구만큼은 아시아 최고의 실력을 자랑했다.

북한이 이토록 축구에서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에서 축구는 어떤 의미인가.

우선, 축구에 대해 살펴보면, 축구는 삼국시대 가죽주머니로 만든 공을 발로 차던 놀이인 '축국'이라 놀이기록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고구려 사람들의 실력이 뛰어났다는 축국은 근대적 의미의 축구가 아니라 상대편으로 공을 하늘 높이 차는 놀이에 불과했다.

그런 의미에서 1882년 영국 군함 플라잉 피시호가 인천에 입항, 승무원들이 연안부두에서 축구를 한 것이 근대축구의 첫 전파시기로 본다.

축구, 민족 정체성의 상징

북한에서 축구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축구가 상징하는 민족주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축구는 남성적인 경기라는 특성과 함께 집단주의 정신을 이해해야 한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느 나라나 대다수의 국민이 축구에 열광하고, 월드컵이 있을 때면 모든 대화의 주제는 축구이다. 그 만큼 축구는 민족의 단합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스포츠 종목이 축구 하나만 아닐진데 왜 축구는 유독 민족주의와 집단의식을 강조하는지 의문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와 달리 한반도라는 역사적 특성을 볼 때 축구는 일제식민지에서 시작된 민족 저항의식과 결합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이는 항일이라는 의미에서 집단의식을 싹틔웠다.

1882년 이후 축구는 외국에서 전파된 단순한 놀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 시기인 1920년대 중반 조선축구단을 중심으로 일본, 중국의 강팀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대외적으로 축구 실력이 인정받자 양상이 달라졌다.

▲ 지난 2일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 남북이 맞붙은 결과, 남측이 금메달, 북측이 은메달을 획득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특히, 식민 통치자였던 일본 팀을 대상으로 한 승리는 단순한 스포츠 영역을 넘어서는 민족적 승리로 각인됐다.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 '한.일 축구경기'로까지 이어져 승리를 하면 모든 용어를 동원하며 민족의 승리로 기사화되고, 패배하면 민족성이 부족하다는 자책을 한다.

이는 한반도의 축구는 체력을 기본으로 하지만 약소국이라는 인식과 민족주의가 결합돼 발전해왔다는 점에서 남북 모두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분단의 역사는 남북간 축구경기를 또 다른 '전쟁'으로 상기시키며, 어떻게든 상대방의 골문을 열고 무릎을 꿇게 해야 한다는 적대적 감정과 왜곡된 민족주의를 불러왔다.

그런 점에서 축구는 다른 나라, 혹은 적대국과의 경쟁을 통해 국가숭배와 애국주의를 고취함으로써 국민대중을 민족적 쇼비니즘에 빠지게 하는 다소 불편한 진실을 안고 있다.

북한, 사회주의 문명국으로의 '축구강국'

축구가 민족성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북한의 축구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북한은 "신체를 다방면적으로 발전시키며 집단주의 정신과 혁명적 동지애, 굳센 의지, 규율준수에 대한 자각성과 책임성 등 고상한 사상과 도덕적 품성을 개발함으로써 국방력을 강화하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을 성과적으로 수행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체육을 정의한다.

즉, 체육을 집단주의 정신 함양과 민족성 고취, 국방력 강화의 수단으로 파악하고, 축구를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 원칙에 기초해 국가체계를 유지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

2011년 발표된 신년공동사설은 "온 나라에 체육열풍을 세차게 일으켜 축구강국, 체육강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상기시키고, 김정은 시대의 대표적 구호로 삼고 있다.

앞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축구는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중화되고 사람들의 관심이 가장 높은 체육종목"이라며 축구를 강조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도 축구강국이 사회주의 문명국가 건설의 핵심으로 삼고, 직접 축구경기를 지도하는 등 국가차원의 관심을 높이고 있다.

▲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결승전에서 일본과 맞붙은 북한. 이날 경기 결과 3:1로 북한이 금메달을 획득했다. [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그런 점에서 북한 축구 훈련장에는 '세계패권을 향하여 공격 앞으로!', '훈련도 전투다', '집단의 사상의지적 단결은 승리의 원천'이라는 구호가 붙여 있고, 지난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금메달 소식을 이례적으로 중계하며 전 인민적 단결을 고무시켰다.

그리고 "태양이 빛나는 푸른 하늘 아래 선군조선의 금메달은 끝없이 빛난다"며 "부강번영하는 조국과 더불어 주체체육의 진군 길에는 더욱 창창한 앞날만이 펼쳐질 것이며 천만군민을 투쟁과 위훈에로 힘있게 불어일으키는 승리의 금메달은 끝없이 솟구쳐 오를 것"이라고 북한 매체들은 축구에 집단과 사상 단결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은 사상고취와 집단 결속력 강화를 위해 축구에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북한은 지난해 6월 평양국제축구학교를 개교했다. 당시 개교식에는 김양건 당 비서, 김용진 내각 부총리, 리종무 체육상 등이 참가했으며, 김정은 제1위원장도 현지지도를 나선 바 있다.

평양 능라도에 위치한 평양국제축구학교는 1만여㎡ 면적에 현대적인 교사, 여러 개 축구훈련장, 식당, 이발실, 목욕탕 등을 갖추고 있으며, 9~13세 학생 80여 명을 대상으로 축구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축구선수로 전망이 보이는 학생들을 엄선해, 분기에 한 번씩 실력측정으로 선수를 양성하고 있으며, 지난해 9월에는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직접 훈련을 지도한 바 있다.

▲ 평양 능라도에 위치한 '평양국제축구학교' [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남북, 단일팀으로 축구강국 이룰 수 있나

북한의 축구실력은 이미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금메달, 남자축구 은메달로 확인됐다. 또한, 한국도 여자축구 동메달, 남자축구 금메달로 실력을 과시했다.

아시아 축구 최강의 자리에 오른 남북이 이런 실력이라면 단일팀을 구성할 경우 1위를 독차지할 것이라는 상상도 가능하다.

남북은 이미 축구 종목에서 단일팀을 구성해 세계대회에 출전한 이력이 있다. 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은 8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단일팀은 아니지만 남북은 축구라는 체육으로 교류를 꾸준히 해왔다. 1990년 남북 축구국가대표팀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통일축구대회'를 가졌고, 1999년 8월, 2007년 5월 남북노동자축구대회가 열렸다.

그리고 2002년 9월 서울에서 '유럽-코리아재단' 주선으로 남북통일축구대회, 2005년 8.15민족대축전 기념 남북통일축구대회 등이 열렸다.

이에 앞서 일제 식민지 시기 1929년부터 서울-평양 간 경평축구대회가 당시 일제의 압박 속에서도 열려 민족 단합정신을 가져왔고, 1946년까지 이어졌다.

분단 이전 우리 민족은 축구로 저항의식을 키워왔고, 분단 이후 정치적 상황에 따라 축구로 분열과 단합을 번갈아 경험했다.

▲2007년 5.1절을 맞아 경남 창원에서 열린  남북 노동자 통일축구대회 경기 직후 남북 노동자들의 유니폼을 나눠갖는 모습. [자료사진-통일뉴스]

지난 4일 전격적으로 이뤄진 북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당 비서, 김양건 당 비서의 방남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북쪽 여자축구 선수들 진짜 참 훌륭한 경기를 했다"며 "남북 축구간에 보니까 넘어지면 서로 돌봐주고 일으켜주기도 하고 선수끼리 동포애가 작용했다"고 말했다.

김양건 당 비서도 "북과 남이 체육의 상징 종목인 축구에서 우승했다"며 "이것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고 우리 힘이 시위된 것"이라고 덕담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처럼 남북 고위급 인사들이 주고받은 '축구' 덕담은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서 제2차 고위급 접촉 개최 합의라는 성과를 냈다.

공 하나로 민족주의와 집단의식을 발휘하는 경기인 축구. 분단의 아픔을 딛고 통일을 위한 민족주의와 집단의식 고취의 상징이 될 때가 언제 올 것인가.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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