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사김규식연구회 주최로 19일 오후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김규식과 독립운동노선’ 학술회의에서 발제자로 나선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맨 오른쪽)가 발제를 하고 있다. 발제자인 심지연 교수(왼쪽)와 염인호 교수(가운데).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결국 백범은 1948년 1월 26일 남북협상을 주장하면서 우사와 노선을 같이 했다.”

우사김규식연구회(회장 김재경) 주최로 19일 오후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김규식과 독립운동노선’ 학술회의에서 발제자로 나선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남북협상과 김규식ㆍ김구’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이같이 밝혔다.

해방이 되자마자 외세에 의해 분단된 한반도에서 남북협상파로 알려진 두 거두인 우사 김규식과 백범 김구가 그간 남북협상 노선을 달리 하다가 이때를 기점으로 같아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때’란 1948년 1월 26일 백범이 남북요인회담을 제의한 것을 말한다.

서 교수는 “(1948년) 1월 26일 이후 우사와 백범이 통일운동을 벌이면서 김구 김규식이라는 이름은 바늘에 실 가듯이 따라다니게 되었고, 두 지도자는 통일운동의 구심점이자 상징이 되었다”면서 “이 때문에 많은 한국인에게 두 지도자는 독립운동을 할 때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가까운 사이이고, 그래서 독립운동노선도 같을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우사와 백범의 독립운동노선이 달랐다는 것이다.

즉, 우사와 백범은 일제강점기에 정치적으로 같은 길을 걷지 않았고, 그 점은 해방 이후 백범이 방향전환을 할 때까지도 대체로 비슷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 교수는 우사와 백범의 서로 다른 노선을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무력해졌던 1921년을 전후한 시기 국민대표회와 △1945년 연말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 등을 둘러싼 각각 다른 입장을 예로 들었다.

이후 우사와 백범은 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조선제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에 참석해 남북협상을 통해 공동성명서에 합의한다.

이에 서 교수는 4개 항으로 된 이 공동성명서의 핵심은 3항에 있다면서 “백범과 우사는 통일정부 수립의 방안을 찾기 위해서 북행했던 바, 그것이 3항으로 구체화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여기서 공동성명서의 3항이란 “외군 철거후 이 공동성명서에 표기된 남북전정당사회단체 명의로 전조선정치회의를 소집해 민주주의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이 정부는 첫 과업으로 통일적 입법기관을 선거한다. 선거된 입법기관은 조선헌법을 제정해 통일적 정부를 수립한다”는 내용을 말한다.

특히, 서 교수는 “공동성명 3항은 통일의 방안으로 참고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실제로 임시정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는 쉽지 않을 터이지만, 한국인이 통일정부를 수립하려 할 때 3항은 선구적 모델로 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사와 백범의 일치된 노력으로 이때 이미 의미 있는 ‘통일방안’이 창출되었다는 것이다.

▲ 발제후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이에 앞서, 심지연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의 ‘1922년 극동민족대회와 김규식ㆍ여운형’, 염인호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의 ‘민족혁명당과 김규식ㆍ김원봉’이라는 제목의 발제가 진행됐다.

이어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종합토론에서 토론자로는 전명혁 동국대 사학과 연구교수,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 기광서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태국 강원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 등이 참가했다.

▲ 김재경 우사김규식연구회 회장은 개회사에서 우사의 사상과 활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이라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한편, 주제 발표에 앞서 개회식이 진행되었다.

김재경 우사김규식연구회 회장은 개회사에서 우사의 사상과 활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좌우합작은 해외망명투쟁 32년과 귀국 후 5년 동안 일관되게 우사의 신념과 의지였다”면서 “해방 전에는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이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분열되지 말고 대동단결하여 일본제국주의에 효과적으로 대항하자는 취지였고 해방 후에는 우리 민족이 역시 이념적 차이를 초월하고, 대동단결하여 조국의 분단을 막자는 취지였다”고 소개했다.

또한 “남북협상은 해방 후 현실적으로 남과 북에 형성된 이념을 달리하는 정치세력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두 개의 정부 수립을 막고 하나의 정부, 즉 통일정부를 수립하자는 취지였다”고 알렸다.

이에 김 회장은 이날 학술회의가 김규식의 항일독립운동노선과 통일독립운동노선을 동시기의 다른 주역들의 노선과 비교하는 자리가 될 것을 기대했다.

이어, 이부영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회장과 문태선 서울북부보훈지청장이 축사에 나서 이날 행사를 축하했다.

▲ 우사의 손자 김영국 씨가 할아버지를 회고하며 참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특히, 우사의 손자인 김영국 씨는 인사말을 통해 “제가 태어난 집 툇마루에 걸터앉으셔서 저를 안고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회고했다.

김영국 씨는 “일제 식민지 시대와 이후 해방정국까지 그 역사의 한 가운데에서 평생 자신은 돌보지 않으시고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된 통일조국을 이루기 위하여 온몸을 바치셨던 할아버지, 우사 김규식 선생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 숨쉬며 우리 민족의 영원한 소원인 통일을 이루기 위하여 김규식연구회와 함께 하고 계시리라 확신한다”며 감사를 표했다.

박희진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연구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학술회의는 우사의 문중인 청풍 김 씨 관계자 등 80여명이 참석해 자리를 꽉 채운 채 4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한편, 우사김규식연구회는 지난해 10월 ‘김규식의 남북협상과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학술회의를 진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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