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환(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 쪽으로 방향을 잡은 걸까? 박 대통령은 7일 통일준비위원회 1차 회의에서 정부의 목표는 평화통일이며, 북한을 대화상대로 인정하고 북한의 국제적 고립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동안 박 대통령의 통일 구상이 흡수통일 구상이 아니냐며 의심해 온 북한을 다분히 의식한 발언 같다. 곧이어 11일에는 남북 간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하자며 북한에 고위급접촉을 제의했다.

한편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13일 발간한 ‘국가안보전략’에서 5.24조치의 단계적 해제를 처음으로 시사했다. 무엇보다 위 책자에서 “‘7.4공동성명’을 비롯해서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선언’ 등 남북 간의 기존 합의에 담긴 평화와 상호존중의 기본정신을 실천하고자 한다”고 밝힌 점이 주목된다. 정부가 남북 간 합의 ‘실천’ 의지를 공표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도 인천아시안게임 선수단.응원단 파견 의사를 거듭 밝히는 식으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전향적 대북정책을 담은 8.15경축사를 발표하고 2차 남북고위급접촉이 무난히 진행된다면, 우리는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남북이 실로 몇 년 만에 화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8월 한.미합동군사연습이 변수가 되겠지만, ‘국가안보전략’에 담긴 박 대통령의 내심으로 미뤄볼 때, 올 가을이 남북관계의 질적 전환점이 될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는 것 같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고, 박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앞으로는 지금보다 좀 더 균형잡힌 대북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전통적으로 남한은 경제.사회문화 분야의 교류.협력을 우선하자는 입장을, 북한은 정치.군사적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자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통일 진전을 위해서는 경제.사회문화 분야의 교류.협력과 정치.군사적 문제 해결의 병행 추진이 필요하다는데 남북이 뜻을 모으고 관련 노력을 기울여왔다. 북한이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에 격렬히 반발한 데는 이 구상이 구시대적인 교류.협력 우선론을 반복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도 한몫했다.

정치.군사적 관계 진전이 미흡한 상태에서 확대되는 경제.사회문화 교류.협력이 ‘사상누각’ 이라는 사실은 지난 몇 년 간 남북관계가 여실히 증명해줬다. 다행히 박근혜 정부는 ‘국가안보전략’에서 교류.협력 의사 뿐 아니라 남북 간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협의, 실질적인 군비통제 추진, 평화체제 구축문제 논의 등 정치.군사적 문제 해결 의사도 밝혔다. 남북관계가 튼튼한 받침돌 위에서 진전되기 위해서는 경제.사회문화 분야의 교류.협력과 정치.군사적 문제 해결이 반드시 보조를 맞춰 추진되어야 한다.

둘째, ‘국가안보전략’을 보면 경제교류.협력과 사회문화교류.협력 중에서도 ‘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한 경제교류.협력에 방점이 찍혀 있다. ‘국가안보전략’에는 ‘그린데탕트’ 사업, 소규모 교역 재개, 상업투자 허용, 전력·교통·통신 등 인프라 확충, 특구개발 참여, 국제금융기구와의 협력 지원, 나진.하산 물류 사업 같은 남북.러 협력 사업, 신의주를 중심으로 한 남북.중 협력 사업,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 등 다채로운 경제교류.협력 구상이 담겨 있다. 이에 비해 사회문화교류.협력 구상은 기존에 민간단체가 진행해 온 역사.문화재 협력사업, 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 등을 활성화하고, 체육.청소년 및 종교 교류 등을 추진하겠다는데 그치고 있다.

경제교류.협력이 남북관계의 물질적 토대를 튼튼히 하는 일이라면, 사회문화교류.협력은 남북관계의 철학적.정서적.문화적 토대를 튼튼히 하는 일이다. 앞으로 남북이 ‘사람의 통일’, 곧 서로가 가치관.정서.생활문화 등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새로운 공통성을 만들어가는 통일로 나아가려면 후자는 갈수록 중시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는 교류.협력의 ‘경제편향성’을 극복하고,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을 깊이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사회문화교류.협력 프로그램을 좀 더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바란다. 예를 들어 청소년 교류를 활성화하겠다는 선언에 그치지 않고, 분단시대에 활발하게 청소년 교류를 했던 독일 선례를 참고해 한반도 실정에 맞는 교류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식이다.

셋째, 정부와 민간단체는 모두 통일열차를 끄는 기관차다. 정부만 기관차고 민간단체는 따라가는 객차가 아니라는 얘기다. 김대중 정부는 민간단체의 대북 교류.협력을 꾸준히 활성화했고, 이는 김대중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정부 간 관계가 경색될 때 민간교류.협력이 완충재 역할을 하거나, 정부 간 관계를 다시 푸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회문화교류.협력을 발전시키려면 정부와 민간단체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정부가 새로운 교류.협력 사업을 모색할 때, 다양한 교류.협력 경험과 열망을 지닌 민간단체들은 아이디어뱅크가 될 수 있다. 이곳저곳에서 들어본 바에 따르면 아직 박근혜 정부는 민간단체를 객차로 보고 있는 듯하다. 곧 이런저런 기준과 이유들을 제시하며 민간단체의 교류.협력을 지나치게 ‘선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는 소식을 많이 들었다. 박근혜 정부가 이러한 그릇된 행태를 지양하고, 민간단체와 함께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기 바란다. 통일 자전거는 정부라는 바퀴만으로 굴러가는 외발 자전거가 아니다.


 

 
동국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밖에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경실련 통일협회,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같은 통일 관련 단체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평화와 통일의 사건사』(2014, 공저), 『동북아시아 열국지 2: 팍스 아메리카나의 뒤안길』(2013), 『동북아시아 열국지 1: 북·미 핵공방의 기원과 전개』(2012), 『구술사로 읽는 한국전쟁』(2011, 공저), 『북한위기론: 신화와 냉소를 넘어』(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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