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시진핑 중국 주석 내왕 다음 패권 얘기가 유행이다. 엄연 미국이 유일 패권국이다, 이미 중국이 역전 발판을 닦았다, 양쪽에 다 발을 걸쳐야 한다, 그러다가 가랑이가 찢어진다, 안 그러면 답이 있느냐, 왜 성질을 내느냐, 말은 많고, 답은 없다.

여기서 질문 하나. 강도와 패권국가의 같은 점은? 답은, 압도적 무력을 통해 상대의 저항 의지를 완전히 분쇄한 후 원하는 바를 달성한다는 것. 강도가 상대의 목울대에 번뜩이는 칼을 들이대고 지긋이 힘을 쏟는 것과 미국이 다른 나라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돈을 군사비에 쏟는 발단은 어슷비슷한 것이다.

압도적 무력은 공포를 낳고, 공포는 자발적 복종으로 이어진다. 이런 순환이 지탱되는 동안 제국은 유지된다. 당연, 그 고리가 끊기면 제국도 끝난다.

생로병사, 세상 이치 그대로 제국도 태어나면 죽는다. 그러나 역사의 호흡이 대체로 길기 때문에 그 변화를 실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좀 무딘 이들도 식별 가능한 사건이 올 해 3월과 6월 잇달아 발생했다.

지난 3월 1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무려 60분 동안이나 통화했다. 미국은 두 가지를 말했다. “크림반도를 장악한 러시아군을 즉각 물려라”, “안 그러면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전형적인 제국의 어법이다.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목에 칼을 대는 양이며, 그 앞 문장은 그것을 통해 얻을 바이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그로부터 17일 뒤에 아예 크림반도를 삼켜버렸다. 러시아는 미국에 떨지 않았으며 그 대가를 치르지도 않았다.

6월의 사건도 극적이다. 시리아 내전에서 성장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세력(ISIS)이 이라크로 밀고 들어가 제2의 도시 모술을 점령하고 바그다드까지 넘보는 등 미국이 수립한 이라크 전후 체제를 근본부터 흔드는데도 미국은 끝내 ‘개입’하지 못했고 그 결과 ISIS는 시리아 동부와 이라크 북서부를 장악, 이슬람 국가를 선포했다.

“힘으로 기존의 국경선을 변경하려는 시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말은 유럽에서도 중동에서도 용납되지 않았다. 이 두 사건은 우연인가? 아니다.

미국 정부는 빈털터리도 모자라 빚쟁이 신세다. 미국 정부는 따라서 지출을 강제로 줄여야 하고, 국방예산도 그 대상이다. 2012 회계연도부터 10년 간 적어도 4870억 달러(약 520조원)를 줄여야 한다. 줄여 잡아도 1년에 10% 가까이 줄어드는 셈이다.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에 슬슬 금이 가는 것은 불문가지다. 경제적으로 급부상하는 중국이 국방비도 급상승시키는 여기, 아시아에서는 그 낙차가 한층 커질 수 있다.

패권의 이동, 그것을 둘러싼 사활적 쟁투, 이것이 오늘의 세계다. 그러나 명심하자. 패권이 변화하건 변화하지 않건, 패권국의 본질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2011년 미중 정상회담 공동성명 서문에 이런 게 있다. “미국은 강하고 성공적이며 번영하는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하는 것을 환영하고 중국은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번영에 기여하는 미국의 역할을 환영한다”. 미국이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번영에 기여한다는 대목이 듣기 민망하고, 천연덕스럽게 그걸 합창하는 중국이 보기 민망하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우리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고, 그 반작용으로 미국이 한국의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 반대 등 한.중 근접을 통제하는 것을 놓고 미.중 패권 경쟁 와중에 우리 몸값이 올라갈 수 있다는 식의 언술이 있다. 거꾸로다.

시진핑이 재벌들을 모아놓고 ‘경제’로 어르고 달래며 ‘한.중 반일 연대’를 끌어낼 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을 보호하는 것은 중국군이 아니라 미군”이라고 일갈했다. 중국이 “경제 맛 좀 볼래?”하면 미국은 “군대 맛 좀 볼래?”로 응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쪽에 끼여 양쪽으로 뜯기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중 하나에 기대거나 되도 않는 ‘양 다리 작전’은 구한말 망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남과 북의 화해 협력, 남북 합의 실현,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크게 힘을 합치는 6.15통일 외에는 살 길이 없고 번영할 길도 없다.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6.15남측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반전평화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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