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헌 / 동국대 북한학 박사수료

 

‘개방도시’ 평성, 도매의 중심

평성에 살다 넘어온 탈북자들은 평성을 ‘개방도시’라 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북한주민들이 말하는 개방도시란 물류의 흐름이 집중되는 중심지를 의미한다. 개방도시로서의 이런 특징은 자연히 도매시장의 부흥으로 이어져 평성시장은 규모에 있어서도 최대이며, 오가는 이들의 다양함에 있어서도 단연 독특한 면모를 보여주게 되었다.

“평양을 보위하는 성새”라는 이름에서 짐작하듯이 평성은 평양과 맞닿아 있다. 그러다 보니 평양으로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상인들이 하나 둘씩 터를 잡게 되었고 점차 그 규모가 커지면서 장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평양 근처의 평성시장이 이렇게 세를 확장하게 되자 자연히 평양의 물가 및 환율이 평성시장의 시세에 영향을 받게 되는 현상이 빈번히 발생한다. 예컨대 자유아시아방송이 탈북자의 말을 인용한 기사에 의하면, 평성시장에서 큰 손들이 외화를 대량 사들이면 평양시의 외화상점(국영상점) 환율이 뛰어오른다고 한다. 이 탈북자는 “이들은 북한 권력층과 깊이 연계 되어 있어 쉽게 처벌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자유아시아방송, 2012년 10월 8일자)

다양하고 “아쌀한” 거래품목들

평성의 도매시장이라고 하면 ‘옥전장마당’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은덕동시장’, ‘장수골시장’ 등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시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나중에 살펴볼 ‘문화시장’, ‘두무동시장’ 같은 경우에는 식료품이나 부산물이 기본적으로 거래되고 신발과 옷, 양말 등과 같은 간단한 경공업제품들이 조금씩 나오는 형편임에 반해, 옥전시장의 경우 신의주, 혜산 등지에서 물품이 들어오고 평양에서 의류가 ‘통구리’(주1)로 들어오기도 한다고 한다. 그 외에 거래되는 품목들도 다양하고 상품의 수량도 매우 많다. 간식거리를 포함한 각종 식료품들도 활발히 판매되는데 예컨대 당과류의 경우 평성에서 생산한 것도 있고 최근에는 한국산도 많이 들어와 있다고 한다. 물론 일본산과 중국산도 거래된다.

평성출신의 한 탈북자의 이야기 속에는 평성시장의 이런 활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야탑에 있는 홈플러스 가봤었는데, 거기 3층인가, 거기 의류도 있고 식료품도 있고 침대도 있고 식료품도 있고. 거기 돌아보니까 평성 장마당처럼 없는 게 없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평성시장은 유통되는 품목도 다양하지만 그 질에서도 상대적으로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안주에 있는 장마당에 한 번 간 적 있었다는 한 탈북자는 이를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평성에 있는 것들 다 있다고 쳐도 평성만큼 이렇게 알차고 좀 좋고, 야 아쌀해서 가지고 싶다 뭐 요런 거, 그런 건 좀 보기… 좀 귀한 거는, 좀 비싼 거는 네, 그런 지방까지 못 내려가는 거 같은 그런 느낌 들었어요.”

시장 단속 … 이전, 통폐합, 폐쇄

한편, 시장의 상황은 당국의 시야에 구체적으로 감지되며 시장의 침체와 활기는 당국의 권력운용에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 된다. 흔히 접하게 되는, 장사를 금기시하는 공식적인 언술 이면에는 국가의 재정확충의 의지와 자생적으로 살아나가려고 하는 주민의 생계 윤리의 묘한 결합이 숨어 있다. 그러니까 시장의 부침은 크게는 국가와 인민 사이의 민감한 ‘밀당’, 그리고 그 밀고 당기기의 과정에 연루된 다양한 이권싸움과 관계된다. 그 과정에서 시장은 열렸다 사라지기도 하고, 자리를 옮기라는 명령을 받기도 하는가 하면 시장 몇 개가 통폐합되기도 한다. 이처럼 시장은 통제와 억압의 공간임과 동시에 당국의 전략을 엿볼 수 있는 시험지이기도 하고, 특정한 국면에선 국가의 위기를 완충해주는 중요한 장치가 되기도 한다.

시장 ‘이전(移轉)’이 의미하는 바를 전하는 평성 출신 탈북자의 증언은 장마당에 얽힌 이런 복잡다단한 사정들을 뒷받침한다.

“장마당에서 거둬들이는 돈이 그러니까 장세로 해서 받아들이는 그 돈이 되게 큰데 그걸로 그러니까 시 뭐, 평성이 운영 그 돈, 공동으로 들어가는 그 자금이 된다고 그랬는데, 그 장마당을 한 번 옮기는 이유가 그 무슨 장부 같은 거 맞추는, 그러니까 국가에서 조사 같은 거 들어오면 그거 한 번씩 들통 날 때마다 간부들 쓸어 내려가고 그러는데, 장마당을 옮김으로 해 가지고 그 자재비 얼마큼 들어갔다는 그 계산하기… 그 장부상으로만 남으면 되는 거니까, 나와 가지고 현장을 다 돌아보는 것도 아니고, 일단 나오기만 하면 장마당은 다 서 있는 거니까. 그때마다 그 자금을… 그러니까 빈 공간을 맞추느라고 장마당을 옮긴다는 그런 말을 했던 적 있어요.”

한때 최대 도매시장이었던 하차장마당은 전국적인 시장통제의 맥락에 따라 폐쇄의 수순을 밟게 되었고 그 평성도매시장의 기능은 옥전장마당이 이어 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시장과 시장 사람들…

물론 평성에 도매시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매장, 소매장, 골목장, 구역장 등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시장들이 들어서 있는데 두무시장, 문화시장, 하차장, 중덕장, 하승장 등이 대표적이다. 다음 편에서는 이들 시장이 운영되는 속이야기와 그 과정에 드러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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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어떤 물건을 일정한 크기로 묶어 감거나 싼 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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