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준(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원장)


우려와는 달리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없이 4월 25∼26일 1박2일 간의 미국 오바마 대통령 방한 일정이 끝났다. 북한의 핵도발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미 정상은 북한 당국에게 매우 단호한 입장을 취하였다. 북핵문제에 대해 두 정상은 4차 핵실험을 포함, 북한이 추가적인 도발을 할 땐 더 많은 대가를 치르게 하는 영향력이 있는 제재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북핵문제 등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2015년 12월 1일 미국이 한국에 이양하기로 한 전시작전통제권을 연기하는 것을 검토하기로 합의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한미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한국형 미사일 방어(KAMD) 체제를 독자적인 시스템으로 발전시켜 나가되 한.미 간 상호운용성을 증대시켜 효율적인 운용이 확보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또한 양국 정상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한 비핵화(CVID) 목표 달성을 위해 긴밀한 협력을 계속해나갈 것임을 밝혔다. 지난 3월 한.미.일 헤이그 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 대한 강력한 대처가 천명된 이후 한미 양국이 이를 재확인한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은 26일 <노동신문>을 통해 “자주적 권리에 대한 악랄한 도전”이라고 반발하였고, 27일에는 조평통 대변인 성명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있는 한 남북관계는 기대할 것이 없다고 천명하였다.

향후 한반도 정세가 안개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첫째, 중국은 한.미.일 공조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특히 한미 정상이 북핵문제에 대해 ‘중국역할론’을 강조한 것은 중국의 불만을 야기할 수 있다. 북핵문제의 근본 원인은 ‘미국의 대북 강경 정책’ 때문인데 왜 중국에게 책임을 지우냐는 것이다. 그리고 북핵문제를 기회로 KAMD를 강화시키는 것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중국의 전통적 우려는 더욱 커질 것이다. 북한 비핵화에는 적극 찬성하지만 4차 핵실험을 할 경우 6자회담은 무력화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6자회담에 공을 들이고 있는 중국에게는 과도한 대중(對中) 압박으로 인식될 수 있다. 한.일 및 한.미 정상회담 이후 중국이 미국, 일본, 남한, 북한에 대해 어떤 정책을 펴느냐에 따라 동북아 정세는 크게 요동칠 것이다.

둘째, 북한 또한 강한 반발을 보일 것이다. 이미 4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던 북한은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지켜보면서 실험 시점을 조율하려고 했을 터인데 아마도 그 시점이 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그 동안 외부 압력에 대해 강력히 대처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1998년 8월 대포동 1호 발사 이후 2012년 은하 3호 발사, 2006년, 2009년, 2013년 3차례의 핵실험 등은 대북 압박에 대한 북한식 강력 대응이었다. 북한은 군사력을 고도의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군사력 과시를 통한 정치적 이득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김정은의 군사적 용맹성을 과시함으로써 엘리트나 주민들의 이완을 방지하고, 대외적으로는 대북 군사공격 시 대량보복을 시사함으로써 이를 억지하는 효과를 얻는다. 북한은 ‘강 대 강’ 정책만이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한다면 이에 대한 제재를 두고 유관국들 간에 극심한 의견대립을 보일 것이다.

남북 간에 극심한 체제경쟁이 지속되는 한 남북관계는 그리 쉽게 개선되기는 어려운 구조적인 한계가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콘크리트 같은 분단 구조(structure)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물론 그 노력의 몫은 남북한 지도자 모두의 것이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원한구조’의 타파를 달성해냈다. 우리라고 못하란 법도 없지만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유럽의 지도자들 만큼 우리의 엘리트들이 그것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독특한 체제인 북한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만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 이유는 통일이 되면 우리에게 훨씬 더 많은 이익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통일대박론’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다. 그러나 통일대박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찾아오는 바보는 아니다. 많은 노력의 결실로 얻는 피땀어린 과실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해야할 것인가? 첫째는 분단을 평화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전쟁을 방지해야하고 북한의 붕괴도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쪽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분단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분단구조가 살아있는 한 우리민족의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분단이 평화적으로 관리됨과 함께 이를 타파하기 위한 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평화체제 구축이 바로 그것이다.

솔직히 남남갈등이 심화되어 있고, 남북갈등이 극에 달해 있으며 주변4국의 이해관계가 다른 상황에서 분단관리와 분단타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역량과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이다. 특히 남한내 보수세력과 미국을 설득하는 일은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단구조 해체는 보수정부인 박근혜 정부가 해내야 할 역사적 사명(mission)이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통일환경은 그리 녹녹치가 않다. 첫째, 북한 환경이다. 김정은 정권은 현재 극심한 포위의식에 빠져있다. 핵문제를 두고 남한, 미국, 일본 등의 대북 강경책뿐만 아니라 중국마저 북한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외부의 압박에 대해 북한은 ‘김정은 정권 교체’ 시도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는 이유도 ‘김정은 죽이기 연습’으로 북한은 보기 때문이다. 북한은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가 남북대화나 북미대화의 전제조건이라면서 정치군사적 문제의 우선 해결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어떤 대북제의나 대화도 ‘북한붕괴 전략’이자 ‘북한죽이기 책략’이라고 북한은 주장한다. 남북간 신뢰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이다.

둘째 남한내에는 극심한 ‘남남갈등’이 존재한다. 특히 보수세력의 남북대화 재개에 대한 반대는 상상을 초월한다. 김정은 정권 교체 없이는 어떤 대북 지원도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통일대박론’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여기에다 젊은층의 무관심은 남북대화를 가로막는 또 다른 요인이다. 대북 사업을 ‘퍼주기’로 몰아세운 보수언론 또한 큰 장애요인이다. 남북협력이나 통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변하지 않는 한 어느 정부가 들어서도 대북 정책을 원활히 펼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보수정권이기 때문에 진보정권보다는 기득권 세력인 보수집단을 설득하기에 용이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험악한 주변 환경이다. 미.중 간 세계 패권 경쟁, 중.일 간 동북아 패권경쟁, 미국과 러시아간 갈등, 한.일 갈등, 남북 대결 등은 한반도 통일을 심각히 저해하는 요소들이다. 강대국간 패권 경쟁은 통일을 통한 ‘거대한국’의 등장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주변국들은 기본적으로 한반도의 분단 상태 지속을 선호한다. 남북통일을 통해 ‘거대 한국’이 등장한다면 통일한국은 강대국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고 동북아의 균형이 깨질 것을 강대국들은 우려한다. 특히 미국은 통일한국이 ‘친중 정권’이 될 것을 두려워한다. 미국의 석학 헌팅턴(S.Huntinton)은 일찍이 한국을 중화문명권으로 분류한 바 있다. 미국이 아무리 한국을 키워줘 봐야 결국 중국으로 붙을 것이란 우려가 미국 사회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일본도 이와 유사한 생각을 갖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박근혜 정부의 ‘균형외교’를 의심하는 이유도 한국의 ‘친중화’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은 대륙세력의 융합을 극히 두려워하여 집단자위권을 부르짖고 있다.

위와 같은 ‘3각파도’를 안고 통일문제를 풀어가야 할 박근혜 정부는 향후 어떤 통일정책을 펼쳐 나가야 할 것인가? 그 해법은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 당국과의 대화 없이 북한주민들만 상대해서는 해법이 찾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핵문제, 천안함 폭침 사과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당국간 대화는 필요하다. 물론 남한 보수세력의 반대, 미국의 방해 등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진정으로 ‘통일대박’을 실현하기 원한다면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철학, 강한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현대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던 1970년대 초 미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은 보수정권인 닉슨(Nixon) 대통령이 해냈다. 닉슨은 보수파였기 때문에 보수파들은 닉슨이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관계개선하는 것이지 공산주의를 편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1990년 10월 독일 통일을 이룬 것도 보수당인 독일 기민당인 콜(kohl) 수상이 이루어냈다. 보수정부였기 때문에 미국, 영국, 프랑스를 설득할 수 있었고, 국내의 보수파를 설득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도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와 1970년대 초 최초의 남북당국 대화 모두 보수정권이었던 박정희 정부가 해냈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은 1968년 자신을 살해하기 위해 북한이 특공대를 보낸 후 2년여 만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범한 결정을 하였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은 한반도 정세를 급격히 악화시키는 시한폭탄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해당사자들은 모든 힘을 모아 시한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시한폭탄이 진정 발등의 불이라면 우선 발등의 주인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를 멈추게 해야 한다. “시한폭탄이다!!!”라고 외치면서 남에게 이를 제거해 주기를 기대해서는 이미 때는 늦는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북한 문제에 대해 신경쓸 경황이 없겠지만 향후 한반도 정세에 큰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북한의 4차 핵실험 방지를 위해서 보수 정권인 박근혜 정부가 당장이라도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역사적 대결단’을 내려야 한다. 북한도 한민족이라면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한 국민적 애도 분위기를 고려해서라도 남한 주민의 공분을 야기시킬 수 있는 행위는 중지해야 한다.

 

 
1953년생으로서 전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북한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통일연구원에서 22년간 재직한 북한전문가이다.
2006년 북한연구학회장 재직 시 북한연구의 총결산서인 ‘북한학총서’ 10권을 발간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 동안 통일부 자문위원, NSC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민화협,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였다.
현재는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김정일 리더쉽 연구」, 「김정일 정권의 통치엘리트」, 「북한 체제의 내구력 평가」, 『북한이해의 길잡이』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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