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헌 / 동국대 북한학 박사수료

 

<새연재> ‘북한 산책길: 지리 ․ 산 ․ 시장 ․ 축제’를 연재하며

동국대학교에서 북한·통일을 고민하고 있는 신진연구자들(일명 목멱사람들)이 ‘북한 산책길: 지리 ․ 산 ․ 시장 ․ 축제’라는 이름으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리(이종겸) ․ 산(박소영) ․ 시장(한재헌) ․ 축제(한승대)라는 주제를 통해 저희 4명의 필자들이 나름대로 북한을 인식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새로운 관점을 찾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어딘가를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저희와 함께해 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각 주제별로 한 번씩 매주 화요일에 만나고자 합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 목멱사람들 주

북한의 시장(市場, market, market place)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다들 알다시피 시장은 장터라는 공간적 의미로도, 보편화된 교환 메커니즘으로도 사용된다. 막연하다. 북한의 “시장을 이야기 한다”니. 무엇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하다가 시장 하면 떠오르는 필자의 두 가지 단편적 인상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아마도 이 두 개의 이미지는 앞으로 쓰게 될 글의 어떤 방향성과도 관계될 것이다.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And Garfunkel)이 불러 세계적으로 유명한 곡이 된 스카보로 페어(Scarborough Fair)라는 노래가 있다. 스카보로는 영국의 북 요크셔 지방 연안에 있는 휴양지로 13세기 중엽에 대규모 시장이 개설되면서 유명해졌고 세계 곳곳의 상인들이 모여들어 400년간 명맥을 이어간 장터이기도 하다.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긴 역사를 담고 있는 시장, 필자는 이 시장을 그려볼 때면 이 아름다운 화음이 종종 떠오르곤 하는데, 상업이 융성한 시장의 터, 스카보로에는 이처럼 아름다운 사랑의 전설이 배어 있다. 시장은 단순한 ‘교환’의 장소이기를 거부한다.

이와는 다른 질감으로, 더욱이 여기 한반도를 그 장소로, 시간적으로는 한국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한 고 박경리 선생의 <시장과 전장>이란 소설이 시장에 관한 필자의 또 하나의 인상이다. 박경리 선생이 냉철히 포착한 대로 전장과 시장은 분리돼 있으면서도 늘 함께였다. 더욱이 전쟁이라는 그 살육의 시간 속에서 열렸다 사라지고를 반복한 시장은 우리네 삶의 끈질김과 생명력을, 그 애환의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흥정의 계산기가 등장하면서 저편에선 “아무개 서방 밥 먹어~” 소리쳐 끼니를 챙겨주는 아지매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공존의 터이기도 했다. 살육의 전장 이면에 펼쳐지는 삶의 공간, 재생산의 터, 그것이 시장이기도 했다. 

▲ 평양 통일거리시장. [사진제공 - 도서출판 역사인]
북한에도 시장은 있다.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할 테지만, 북한이 공식적으로 ‘사회주의’를 자신의 체제정체성으로 규정짓고 그것이 작동하고 있다고 표방되는 한, 그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어떤 것으로 다가온다. 더욱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동일한 것이라거나, 혹은 그것이 실과 바늘마냥 절대 떼어질 수도, 떼어져서도 안 된다고 어릴 적부터 세뇌되어온 우리라면, ‘사회주의와 시장’은 낯선 조합이다. 그러니까 시장의 출현과 발전은 ‘사회주의’ 북한의 어떤 ‘변화’를 암시하는 징후로 포착되기도 한다. 핵무기와 미사일로 상징되는 국가의 ‘전장의 정치’가 펼쳐질 때, 시장은 국가의 공백을 메운다. 북한의 ‘변화’는 이 국가의 후퇴 혹은 공백으로 만들어진 이 시장을 둘러싼 각축의 과정에서 그 모양을 드러낼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시장’은 사회주의 북한의 변화를 가늠하는 어떤 지점임은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장터들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만들어내는 희로애락의 생산지이자, 또 다른 전장(戰場)일지도 모른다. 북한의 시장은 이 어디쯤 혹은 그 모든 것이 혼재한 채로 돌아가는 삶의 시공간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북한에도 시장은 있다’라는 분명한 명제 속으로 스며드는 이 삶의 숨결들을 보다 가깝게 드러내고 어떻게 풍부히 재현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리라.

이런 우려를 안고 다음 글에서는 북한 최대의 도매시장인 ‘평성시장’을 다뤄보겠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