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수 (새정치민주연합 통일전문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28일 독일 드레스덴 공대에서 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이 제안 16일 만인 4월 12일 북측 정부의 ‘최고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의 대변인 성명 형식을 통해 공식 거부되었다. 대통령은 드레스덴 연설에서 평화통일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 북한당국에게 △남북한주민들의 인도적 문제 해결(Agenda for Humanity) △남북한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인프라 구축(Agenda for Co-prosperity) △남북 주민간 동질성 회복(Agenda for Integration)을 제안하였다. 북은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 직후인 3월 3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잡동사니들을 이것저것 긁어모아 ‘통일 제안’이랍시고 내들었다”면서 비난하기 시작하였고, 결국 북 정부조직인 국방위원회가 거부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연설을 준비했던 정부당국자들이 현재의 남북관계와 대외환경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월 이산가족상봉 성사 이후 호전되길 기대했던 남북관계는 대규모 한미합동군사연습이 진행되고, 특히 북이 ‘평양점령훈련’이라고 주장하는 상륙훈련인 쌍룡훈련이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되면서 북한당국은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던 상황이다. 독일 방문 전 대통령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핵안보정상회의, 한.미.일 정상회담에 참석하여 북한의 핵무력.경제건설 병진노선을 비판하고 북한에 대한 선핵포기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북은 드레스덴 연설이 있기 전부터 대통령 발언에 대해 자신들에 비방이라고 하면서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 위반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우리정부 또한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저버린 행위로서 매우 유감”이라는 입장까지 발표하면서 강력 대응하였다. 즉 드레스덴 연설이 있기 전부터 남북관계는 우리정부의 제안을 북이 수용하기에는 명확한 한계를 지니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험악한’ 상황에서도 대북 공동사업을 제안을 했을 때에는 북한당국이 ‘수용’할 수 있는 메시지가 필요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문에는 “경제난 속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거리에 방치되어 있었고, 추위 속에서 배고픔을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자유와 행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탈북자들이 있습니다”라고 북한체제를 직접 ‘비난’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북한당국에게 평화통일 기반 사업을 제안하면서 북한당국을 직접 비난하는 내용을 함께 제시하여 상대방을 고려하지 못한 신중치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 시점에서 드레스덴 연설의 의미는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연설에서 제안했던 3대 사업의 경우 언제든지 남북이 합의하면 실행할 수 있는 좋은 사업들이다. 그러나 현재의 남북관계 상황에서는 요원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드레스덴 연설에서 여러 사업을 제안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우리정부가 아무런 조건 없이 과감히 5.24조치의 전향적 철회를 제시했다면 북에 대한 메시지는 훨씬 더 컸을 것이라 판단한다. 현재 대통령과 정부는 북한에 대한 신규 투자 불허 및 남북교역 중단 등 5.24조치를 지속하면서도 나진-하산 사업 등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대한 투자를 ‘국익’을 고려해 실시할 수 있다는 ‘모순’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재로서 남.북.러 합작사업에 우리기업이 참여하게 될 가능성이 크기에 우리의 필요성에 의해서라도 5.24조치의 해제가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정책은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국가가 하는 사업은 ‘국익’의 이름으로 하면 되고, 민간기업이 하는 것은 정부 정책을 유지해야 하기에 불허하는 것은 정부에 대한 불신만 더 키울 뿐이다.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5.24조치가 선결 과제이다. 5.24조치는 현존하는 남북관계 정상화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이 문제를 회피하고 우회해서는 본질적인 남북관계 정상화에 이를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임을 직시해야 한다. 5.24조치로 인해 남한의 경제적 피해는 89.1억 달러로 북한의 22.6억 달러보다 약 4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로 인해 남한의 중소.영세 남북경협 기업들은 막대한 피해로 인한 고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북한당국을 제재하고 벌을 주기 위해 시행한 5.24조치가 북한당국보다는 우리 영세 중소기업들이 더 큰 벌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즉 5.24조치는 목적 달성을 실패한 정책으로 조속히 철회되어야 하는 것이다.

5.24조치로 인한 북한의 대중국 의존 심화는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통일대박’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남북경협 정상화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북한의 자원에 대한 중국의 장악이 늘어나 그만큼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5.24제재조치 이전인 2009년 남북교역액은 약 17억 달러로 북.중무역액 26억 달러의 약 63% 수준이었으나, 2013년 남북교역액은 약 12억 달러로 북.중무역액 65억 달러의 17.6%로 급감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3월 9일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 화해.협력 선언’을 통해 남북관계 정상화의 토대를 굳건히 하고, 이 힘을 바탕으로 남북정상회담까지 성사시켰다.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의 내용을 보면 우리정부가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밝히고, 현 단계에서 목표는 냉전종식과 평화정착이라고 밝혀 ‘흡수통일’을 배제한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또한 인도적 차원의 이산가족 문제 해결과 남북의 모든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당국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베를린 선언’이 있기 전에 북한당국을 비롯해 관련국들에게 사전에 이러한 제안을 할 것이라 통지하는 등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하였다. 어떤 일이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상태를 명확히 파악하고 상황에 맞는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은 상대방과 현재 남북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남북관계를 돌파하고 한반도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5.24조치의 전향적인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나 동국대 북한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KYC(한국청년연합회) 평화통일센터 사무국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민주당 정책위원회 통일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동국대 강사, 인제대학교 통일학연구소 연구위원, 민화협 정책위원, 도산통일연구소 연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쓴 글로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발전 방향 연구”(2011), “북한 대중운동 연구: 권력승계 측면에서 비교한 ‘150일 전투’와 ‘70일 전투’를 중심으로”(2010), “북한 권력승계 담론 연구”(2010), 『북한 청년동맹 연구』(한울, 200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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