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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사진과 대한민국 외교의 현주소 ‘이례적인’ 헤이그 한.미.일 정상회담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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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22  11: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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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복잡한 세상사를 가장 단순명료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더구나 복잡한 국제정치, 그 중에서도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의 경우 여기에 딱 들어맞을 수 있다.

오는 24~25일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주선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악수하는 한 장의 사진도 역사적 사진이 될 공산이 크다.

   
▲ 예상했던 한 장의 사진. 25일 헤이그 미국대사관에서 미국 주최로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아베 총리와 악수했지만 '한일 관계' 현안들은 논의되지 않았다. [사진출처 - 청와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잊을만하면 고위 당국자들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역사교과서 왜곡에 ‘위안부’ 관련 망언들까지 종합세트를 선보이며 군국주의화를 대놓고 추진해온 아베 총리와 악수하는 박근혜 대통령.

21일 오후 한.미.일 정상회담 발표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최소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구체적 조치’ 없이는 한.일 정상회담 가능성은 0%라고 큰소리치더니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꿨다.

정부 스스로도 쑥스러웠던지 정상회담 일정 발표를 청와대가 아닌 외교부에 떠넘기고, 외교부는 정상회담 발표문에 느닷없이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국장급 회의를 개최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 중에 있다”고 끼워넣었다.

이같은 ‘변심’은 지난 14일 아베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 등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하고 ‘고노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고 말하자 한미 외교당국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서 환영할 때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더구나 최근 러시아가 크림자치공화국을 병합한데 대해 우리 정부는 19일 “크림 주민투표와 러시아의 크림 병합을 인정할 수 없다”고 명백히 미국의 입장에 섰다.

오는 4월 오바마 대통령의 한.일 순방 전에 한.일 관계 개선을 강력히 바라고 있는 미국 입장과 핵안보정상회의를 러시아 성토장으로 만드려는 오바마 대통령의 구상까지 감안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웃음지며 악수하는 사진은 마시기 싫지만 들이켜야만 하는 쓴잔인 셈이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21일 한.미.일 정상회담 결정에 대한 배경설명 자리에서 “최근 북한이 국방위 성명으로 핵억제력 과시를 위협한 점들을 고려할 때 한.미.일 정상회담이 시의적절한 회담이라고 생각한다”며 “비확산과 북핵 문제 중심으로 이야기하게 돼 있다”고 밝혔다.

전 세계 정상이 모이는 자리에서 북핵문제를 미국.일본과 3자 정상회담을 통해 다루겠다니 참으로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북핵문제에 대한 주변국들의 이해를 구할 수 있는 국제 다자외교 무대에서 한.미.일 3국 정상이 북핵문제를 다룬다면, 하다못해 6자회담 참가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냥 한.일 정상회담을 졸라대는 일본과 한.일 관계 개선을 촉구하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고, 크림자치공화국 문제로 러시아와 한판 외교전을 벌이는 미국을 도와주는 셈치고 사진 한 장 찍어준다고 솔직히 말하는 게 더 나을 지 모른다.

오바마 대통령을 가운데 두고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어색한 미소를 띠며 악수를 나누는 한 장의 사진은 지금 우리가 처한 외교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 '9.19공동성명'이 타결된 제 4차 6자회담 2단계 회의가 한창 진행중이던 2005년 9월 16일, 한미일 3국 대표단이 오찬회동을 가졌지만 한국측 수석대표인 송민순 차관보는 기자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측 힐 수석대표(왼쪽)와 일본측 사사에 수석대표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9.19공동성명이 탄생한 2005년 제4차 6자회담 2단계 회의 당시 송민순 수석대표는 한.미.일 수석대표 회동을 가진 뒤 혼자서 자리를 떠 3국 수석대표가 나란히 자리한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 [관련기사 보기]

북한과 미국의 중재역을 자임한 한국 측으로서는 별로 바람직한 모양새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 대신 송민순 수석대표는 9.19공동성명 채택에 성공해 6자 수석대표와 나란히 영광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 천영우 수석대표는 한.미.일 수석대표 회동후 환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김숙 수석대표는 아예 6자회담이 열리기도 전에 워싱턴에서 한.미.일 수석대표 회담을 갖고 사진을 남겼다. [관련기사 보기]

머지않아 북.중.러 6자회담 수석대표가 나란히 웃으며 찍은 사진을 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기우에 불과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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