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22일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제5차 6자회담 2단계 회의가 의장성명을 발표하고 휴회했으나, 북미간 타결점을 찾지 못해 다음 회담 일정마저 정하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북한의 '선 금융제재 해제'와 미국의 '선 북핵포기 및 상응조치'가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난 이번 회담를 취재하며 기사에 담지 못했던 몇몇 내용을 간추려 본다.
<김계관, 힐보다 한 수 위>
이번 회담은 그 어느 때보다 6자회담이라는 용어가 어색할 정도로 북미간 양자 구도로 진행됐다. 특히 BDA(방코델타아시아) 금융제재 문제를 다루는 BDA회담이 북미간에만 별도로 진행된 점이 이같은 상황을 더욱 강화시켰다.
따라서 북한측 6자회담 담장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아태담당 차관보의 일거수 일투족에 모든 눈길이 쏠릴 것은 당연했다.
이번 회담 결과는 대체로 노련한 김계관 부상이 의욕적인 힐 차관보를 가볍게 따돌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국 대표단 주변에서도 김계관 부상이 논리적이고 시종 차분한 자세를 유지했으며, 심지어 면전에서 듣기 매우 거북한 여러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얼굴빛이 바뀌지 않는 침착함을 보였다는 전언이 나돌았다.
실제로 북측은 BDA회담 대표단을 6자회담이 개막된 다음날인 19일에서야 베이징 서두우(首都) 공항에 등장시켜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했는가하면, BDA회담이 시작되기 전에는 북미간 양자협의를 거절하는 등 미국측의 의표를 찌르는 협상전술로 자신들이 원하는 바대로 협상장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이에 비해 힐 차관보는 "그들(북한 대표단)은 BDA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공식적으로 6자회담의 의제에 대해 관여하지 말라는 평양으로부터의 엄격한 지시를 받았다"고 상대측 '훈령'을 단정적으로 언급하는 등 직업 외교관으로서 이례적인 언급을 되풀이했는가 하면, "북한이 문제를 제기할 때는 하루는 금융 문제였다가 또 다른 날은 자기네들이 가질 수 없는 것을 달라고 한다. 끝없이 문제를 제기한다"고 짜증섞인 불평을 쏟아내기도 했다.
회담이 사실상 마무리된 21일 오전 힐 차관보는 김계관 부상에 대해 "그는 베테랑 협상가이다. 그는 매우 많은 경험을 갖고 있고 이 문제(핵문제)에 대해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며 "김 부상(Mr. Kim)에 비하면 나는 경험이 매우 일천하다"고 자평했다.
힐 차관보 역시 미국 국무부에서 근 30년 가까이 재직해온 내노라하는 베테랑 협상가로서 1991년 주 알바니아 부 대사로 분쟁지역 협상전문가로 활동을 시작해 95년 보스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의 경계선 획정 협상에 기여했고, 99년엔 코소보 사태 담당 특사로도 활동해 보스니아 평화 정착에 대한 공로로 국무부 우수 공로상을, 코소보에서의 공로로 로버트 S 프레이져 평화 협상 메모리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같이 화려한 경력의 힐 차관보도 한반도 비핵화와 6자회담에 관해서 만은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김 부상에 비하면 나는 경험이 매우 일천하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고유’한 역할은 ‘고요’했다?>
"제일 안타까운 일은 서로 상대의 의도를 잘못 파악해서 협상이 안 되는 것은 기가 막히는 일이고 그것은 우리가 막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 외에 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
16일 회담 개막을 앞두고 베이징에 도착한 한국측 대표단의 일성은 '한국의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것이었다.
회담 관계자는 "중국도 한다고 하고 있지만 남들이 못하는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보고, 그런 것은 나서서 자랑할 것은 아니고 막후에서 '서로간에 제대로 상대방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상대방이 요구하는 값을 정확히 알고 협상하느냐' 우리가 점검해가면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북한과의 양자회담은 우리가 북한을 가장 최근에 만났으니까 다른 대표단들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주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회담이 개시되고 나서 천천히 만나도 늦지 않을 것 같다"고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또한 회담이 한창인 20일 한국측 수석대표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우리 대표단은 미국과의 공조를 바탕으로 의장국인 중국, 그리고 핵심당사자인 북한과도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입장차이를 좁히기 위해서 적극적인 노력을 계속 펼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이유로 정부는 쌀과 비료 지원을 중단했고 지금까지 남북 당국간 관계는 소원한 상황인데다 회담 전반이 북미간 양자구도로 이어져 한국측의 역할이 과연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들이 나왔다.
실제로 한국은 'BDA와 6자회담은 별개'라는 미국측 논리를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BDA회담을 축으로 전개된 이번 회담에서 BDA와 관련된 제 목소리를 한 번도 내지 못한 채 9.19공동성명 초기 이행조치에 협상력을 집중했지만 이에 관해서 북측은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그나마 중국은 의장국으로서 북미 양국은 물론 참가국들의 의견을 수렴해 조정에 나선 것에 비하면 이번 회담에서 한국의 중재역할은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남북간 양자협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는 전언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6자회담에서 한국의 역할은 6분의 1의 역할에 머물렀다는 비판적 평가도 나왔다.
대북 쌀.비료 지원 중단과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결의안 지지, 유엔총회의 북한인권 상황 결의안 찬성투표 등 일련의 흐름 위에 6자회담장에서마저 'BDA와 6자회담 분리'라는 미국측의 편에 선 한국 대표단의 '고유'한 역할은 결국 '고요'하게 끝나고 말았다.
<사진 찍은 천영우와 사진 안 찍은 송민순>
한미일 3국 대표단은 회담이 막바지에 달한 21일 저녁 베이징 시내 한식점 가온(高恩)에서 비공식 만찬회동을 가졌다.
약 1시간 30분간 비공개 만찬을 마친 한국의 천영우 수석대표와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수석대표, 일본의 사사에 겐이치로 수석대표는 음식점을 나서며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 앞에 나란히 서서 이날 만찬의 의미와 오고간 이야기들을 플래쉬 세례를 받으며 소개했다.
지난 4차 6자회담 2단계회의 당시인 2005년 9월 14일에도 한미일 3국 대표단은 역시 베이징 시내 한 음식점에서 오찬회동을 갖진 바 있고 회동후 미국의 힐 수석대표와 일본의 사사에 수석대표가 기자들 앞에 섰다.
그러나 당시에는 정작 같이 오찬을 나눴던 한국 대표단은 서둘러 자리를 떴고 송민순 한국측 수석대표는 기자들에게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는 한국측 대표단이 굳은 표정으로 따로 빠져나가자 북미간에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으로 추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에 확인한 바로는 한미일 수석대표가 나란히 웃음을 지으며 사진에 찍히는 것이 중재역을 자임한 한국측으로서는 별로 바람직한 모양새가 아니라는 판단 하에 의도적으로 자리를 피했다는 것이었다.
한국측 수석대표가 송민순 차관보에서 천영우 차관보로 바뀐 것은 얼굴만 바뀐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고 안 찍는 것에서도 변화가 있었던 셈이다.
또한 4차회담 당시에는 송민순 수석대표의 아리송한 '어록'이 난무해 기자들의 '말말말'란이 유행했다면 이번 회담에서는 천영우 수석의 다소 희망적이고 직설적 표현으로 실제 회담 분위기에 비해 다소 긍정적 기사들이 많았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외교부 9개 부문에서 200여명의 직원을 투입, 소비된 생수는 5천병, 커피는 2천컵...'
지난 4차 6자회담 1단계 회의가 종반에 접어들 즈음 중국 대변인은 별 세세한 수치까지를 제시하며 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노력을 설명했다.
실제로 회담 주최국인 중국은 회담장인 댜오위타이(釣魚臺)를 빌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실무인원을 배치하고 각종 편의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투입된 인원과 물자만 하더라도 돈으로 환산한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동북아 정세에서 가장 핵심사안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서 자신의 정치외교력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이 지불하는 이 정도의 비용은 거저나 다름없다.
전세계의 6자회담 관련 보도는 모두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으로 시작된다. 중국이 국제 외교무대에서 이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은 결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각국 대표단은 물론 기자단 등 수많은 회담 관계 인원들이 베이징에 몰려들어 5성급 호텔에 묵으며 뿌리는 돈까지 계산한다면 어림짐작 만으로도 수지타산에서도 결코 밑지지 만은 않을 것이다.
또한 6자회담의 핵심당사국인 북한과 미국이 밀고당기는 치열한 협상을 벌일 때도 중국은 공평무사한 중재자 입장에 서면 된다. 따라서 중국측 입장에서는 6자회담이 안 열려서 탈이지 일단 열리는 것이 '장사'가 되는 셈이다.
이번 회담의 경우도 북미간 사전 조율이 충분치 않은 조건에서 중국측이 '해를 넘기기 전'에 회담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다소 무리하게 소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북측이 '선 제재 해제'를 요구하며 회담이 겉돌자 미국측에서는 "중국이 결과물을 끌어내기 위해 건설적인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은근히 중국측에 기대감 섞인 원망성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초대받은 기자회견, 아무도 가지 않은 이유>
회담이 개막된 18일 베이징 메리어트호텔 2층에 마련된 한국측 프레스룸에 다소 의외의 안내문이 돌았다. 일본측 회담 대변인이 영어와 일어로 브리핑할 예정이니 한국측 기자들도 많이 참석해달라는 친절한 초청(?)이었다.
지난 4차회담 당시에도 일본측은 이같은 친절한 초청을 여러 차례 했지만 한국측 기자중에 관심을 기울인 기자는 거의 없었다.
일본측 수석대표인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 賢一郞)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회담 이틀째인 19일 기자들에게 "때가 되면 저절로 물은 흐른다"며 "북한으로서는 일본과 대화할 필요가 생긴다"고 나름대로 북일 양자협의에 대해 느긋한 여유를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입만 열면 '납치문제'를 북일 양자협의의 최우선 의제로 삼겠다고 벼르고 별렀던 일본 대표단은 결국 이번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북측과 양자협의를 갖지 못한 유일한 대표단이 되고 말았다.
4차 1단계회의 때도 북측은 단 한차례도 일본과 양자접촉을 갖지 않았고 회담이 휴회한 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짧은 북일접촉이 이루어져 당시 이를 지켜본 기자들은 북한의 협상전술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그러나 작년 11월 5차 1단계회의 때는 김계관 부상이 베이징에 온 첫날인 11월 8일 베이징의 일본 대사관을 전격 방문해 일본측 수석대표인 사사에 국장과 만찬을 나눠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 회담 복귀를 선언했던 지난달 4일엔 북측은 외무성 대변인 발언을 통해 "일본이 6자회담에 참가하지 않겠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라고까지 직설적으로 공격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계기로 대북 제재에 앞장선 일본에 대한 일종의 맞대응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