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환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게 세상일이다. 그러니 한반도 통일이 대박이 될지, 쪽박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도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다. 일부 힘 있고 돈 있는 이들만이 아니라 한반도에 사는 모든 이에게 여러 면에서 손해보다 이익이 많은 통일이라면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다.

‘통일대박론’에 대한 이해

이런 맥락에서 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을 반드시 대박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나타낸 말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대박의 ‘가능성’을 현실화시키자는 취지에서 나온 말로 이해하고 있다. 박 대통령도 1월 6일 기자회견 때 ‘통일 대박’ 발언에 이어 “한반도의 통일은 우리 경제가 실제로 대도약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회’라는 단어는 어떤 일을 잘 해낼 수도 있고 못 해낼 수도 있을 때, 곧 실패 가능성과 성공 가능성이 공존할 때 쓰는 단어다.

또한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을 ‘경제적’ 수지타산만을 따지는 담론으로 이해하는 것도 편협한 이해 같다. 박 대통령은 2월 6일 외교부.통일부.국방부.국가보훈처 업무보고 때 ‘통일 대박’ 발언을 다시 상기시킨 뒤 “(통일은) 우리 국민들이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북한 주민들과 함께 자유와 행복을 누리기 위해 단순히 분단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일대박론’이 경제적 이해득실에만 초점을 맞춘 담론이 아니라고 직접 해명한 셈이다.

그렇다면 통일이 ‘진짜’ 대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통일이 박 대통령의 바람처럼 ‘경제 대도약’, ‘전쟁 공포로부터의 해방’, ‘자유와 행복의 확대’를 가져오려면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할까? 현재까지 박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구체적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박 대통령이 목표, 원칙, 방법 등을 망라한 좀 더 체계적인 통일구상을 내놓기를 기대하며, 아래에서는 박 대통령이 참고하기 바라는 방법 한 가지를 제안해보겠다.

점진적.단계적 통일이 답이다

통일이 ‘진짜’ 대박이 되길 바란다면 박 대통령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자신의 통일대박론이 대한민국 공식 통일방안과 같은 점진적.단계적 통일구상인지를 분명히 밝히고, 실제로 점진적.단계적 통일을 확고히 추진해가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공식 통일방안은 김영삼 정부 때 채택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자주’, ‘평화’, ‘민주’라는 3원칙 아래 통일의 과정을 ‘화해협력’, ‘남북연합’, ‘통일국가’라는 3단계로 설정하고 있다(통일부 홈페이지 참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새로운 통일방안을 내놓기보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6.15남북공동선언, 10.4선언 등을 만들어내며 통일 1단계인 ‘화해협력’ 단계를 충실히 진전시켜나갔다. 이와 달리 남북관계를 사실상 ‘화해협력’ 단계 이전으로 후퇴시킨 이명박 대통령은 헌법에 명시된(66조 3항) 대통령의 통일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일단 박 대통령이 “통일은 한밤 중에 도둑 같이 오는 것(이명박 대통령, 2011년 6월 21일)이 아니라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수많은 노력이 쌓이고 쌓여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식으로 점진적.단계적 통일구상을 공개적으로 천명한다면, 통일대박론이 북한 급변사태에 따른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 주장 아니냐는 세간의 의구심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 급변사태나 흡수통일을 직접 말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통일대박론을 ‘화장한 흡수통일론’(2월 7일 오영식 민주당 의원의 발언)처럼 받아들인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흡수통일반대론’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2월 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박근혜 대통령은 ‘장성택 숙청사건’ 이후 북한의 ‘불안정성’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통일대박론을 설파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당이나 일부 언론의 인식이 오해라면 오해의 빌미는 박 대통령이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2월 7일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도 “북한은 여전히 핵개발과 경제개발 병진노선을 고수하고 있고 장성택 처형 이후 불안정한 상황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흡수통일이 박 대통령의 진심이 아니라면, 또한 이산가족 상봉을 전격적으로 제의했듯 남북관계 개선을 진심으로 원한다면 이제 북한의 불안정성은 속으로만 걱정하고 대비하는 게 좋다.

다음으로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실천’이라는 말도 있듯이, 말이야 어떻게 하든 간에 임기 중에 점진적.단계적 통일을 실질적으로 추진해가야 한다. 그래야만 통일이 대박이 될 것이라는 자신의 말을 책임질 수 있을 것이다.

점진적.단계적 통일은 급진적 통일보다 대박이 될 가능성이 높은 통일이다. 첫째, 어떤 이유로든 급진적으로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 ‘경제 대도약’은 일장춘몽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연구자나 연구기관마다 통일비용 정의나 산출방법 등은 많이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모아지고 있는 결론이 있다. 급진적 방식이 점진적 방식보다 더 큰 경제적 부담을 준다는 것이다. 둘째, 점진적.단계적 통일만이 남과 북에 현존하는 대결구조.의식을 차분하게 청산할 시간, 남과 북이 서로에게 가했던 상처를 차분하게 치유할 수 있는 시간, 남과 북의 주민들이 ‘같음과 다름’을 차분하게 확인할 수 있는 시간 등을 보장해줄 수 있다. 한밤 중에 도둑처럼 찾아오는 통일은 박 대통령의 바람과 달리 기존 대결구조.의식, 상처, 오해 등에 또 다른 공포, 억압, 불행을 더해 줄 가능성이 높다.

작은 통일, 큰 통일

무엇보다 북한의 정치.외교.경제 실상을 고려할 때, 현재로서는 급진적 통일보다 점진적.단계적 통일의 실현가능성이 더 높다. 그래서일까? 통일부도 2월 6일 대통령 업무보고 때 2014년 중점 추진 과제 중 하나로 ‘통일친화적 사회로의 전환’을 제시하면서 “‘작은 통일→큰 통일’ 등 단계적.점진적 통일론 견지-통일의 과정과 방법에 대한 인식 공유, 국론통합”이라는 추진 계획을 내놓았다. 이날 보고를 받은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부의 이러한 계획에 대해 수정을 지시하거나 비판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 역시 단계적.점진적 통일구상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도 될까?

곧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산가족 상봉, 한.미 연합군사연습, 금강산.개성 관광 재개, 5.24조치 해제 같은 현안들이 박 대통령의 책상에 올라와 있다. 9월에는 인천에서 아시안게임도 열린다. 사람들은 인천 아시안게임을 대규모 북한 응원단이 왔던 부산 아시안게임(2002년)과 비교할 것이다. 앞으로 몇 달 동안 이 현안들에 대해 박 대통령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 지가 문제를 푸는 실마리다. 비록 올해가 말띠해지만 통일만큼은 소걸음으로 가자.

 

 
동국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밖에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경실련 통일협회,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같은 통일 관련 단체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평화와 통일의 사건사』(2014, 공저), 『동북아시아 열국지 2: 팍스 아메리카나의 뒤안길』(2013), 『동북아시아 열국지 1: 북·미 핵공방의 기원과 전개』(2012), 『구술사로 읽는 한국전쟁』(2011, 공저), 『북한위기론: 신화와 냉소를 넘어』(2010) 등이 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