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Daum영화]

지난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국정 운영의 각 주체들이 애국심을 가지고 소임을 다해 줄 때만이 경제가 살아나고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5부 요인(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중앙선거관리위원장)과 여야 대표를 비롯하여 주요 정 ․ 재계 인사들이 총망라되어 참석한 자리였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 발언에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날 각 언론사의 뉴스는 머리기사로 대통령의 신년 인사를 다루면서 국민 소득 4만 불 시대를 앞당기자는 말과 국정의 공동 책임을 강조하면서 국정 운영을 2인 3각, 3인 4각 경주에 빗대 표현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언론도 무신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국정 운영의 각 주체들이 소임을 다해 줄 때만이 경제가 살아나고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라고 대통령은 말할 수 있었다. 아니, 문장의 의미 구조상 그렇게 말해야 했다. 거기에 굳이 ‘애국심을 가지고’라는 표현을 덧붙였을 때, 나에게 협조하지 않으면 애국심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서슬 퍼런 겁박, 더 나아가서 자신이 국정 운영에 간여하는 최고위직들과 가장 영향력 있는 위치의 인사들의 애국심을 논단하고 훈시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서릿발 같은 확신이 배어난다. 그는 스스로 국가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다.

잠깐,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 아니던가? 우리나라는 삼권분립제도에 기초하고 있는 바, 대통령은 일시적으로 권력을 위임받아 법의 규제 하에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국정 운영의 집행권을 행사하고, 국회는 국민의 대의 기관으로서 입법 행위를 통해 국정 운영의 근거를 마련하며, 사법부는 한 국가를 둘러싼 모든 행위의 적법성과 위법성을 가려내어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을 그 임무로 삼는다.

삼권분립이 지켜져야 권력 남용을 막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가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기본적인 통치 원리이다. 그리고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국민 주권의 원리를 실현하는 대의기관은 분명 국회라고 사회 시간에 배우지 않았던가? 그런데 행정부의 수반이 애국심 없는 세태가 못마땅하여 애국심을 가지라고 일갈하는데 국민도 국회도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린 채 말이 없다.

우리는 이런 표현에 너무나 익숙해 있다. 국민의 대변인은 국회여야 하는데, 그럼 대통령이 대변하는 ‘국가’는 누구지? 누가 그를 국가의 대변인으로 세웠지? 그가 사랑하라는 국가의 실체는 뭐지?

▲ [사진출처-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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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은 1981년이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집권 초기 민주화 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고자 공안 사건을 조작, 민주화운동 세력에 대한 기선 제압에 나서는데, 이것이 학림 사건이다.

학림 사건이란 명칭은 당시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이라는 학생 단체가 첫 모임을 가진 대학로의 '학림다방'에서 유래한 말로, 당시 경찰이 ‘숲(林)처럼 무성한 학생운동 조직을 일망타진했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전민학련, 전민노련(전국 민주 노동자 연맹)이란 민주화운동 단체를 불법 구금과 고문으로 용공 조작하여 반국가단체로 몰아 중형으로 처벌했는데, 2010년 법원의 재심으로 전원 무죄를 선고받았으며, 재판부는 과거의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이 1980년대 대표적인 공안 사건인 학림 사건의 부산판이 바로 부림 사건이다. 부산 지역에서 사회과학 독서 모임을 하던 대학생,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하여 학림 사건과 마찬가지로 불법 구금과 고문으로 용공 조작을 했기 때문에 ‘부산의 학림 사건’이라는 뜻으로 부림 사건이란 이름을 얻었다. 부산 지역 사상 최대의 용공 조작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 역시 2008년 대법원에서 재심 판결을 받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 [사진출처-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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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당시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던 노무현, 김광일, 문재인 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맡았는데, 이때 노무현 변호사가 고문당한 학생들을 접견하고 분노하여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는 이것을 소재로 삼았다. 따라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영화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영화는 기억 속의 실존 인물을 스크린에 소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가족과 돈벌이에 충실했던 한 세법 전문 변호사가 인권이란 보편적 가치에 눈을 뜨고 그것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여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게 되는 과정이다.

우리가 권력의 횡포로 얼룩진 지난 시대의 잔혹사를 보고 슬픔과 분노로 전율한다 한들 극장을 나서면서 누구나 인권운동가로 변신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한 인간의 마음을 흔들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을까를 지켜보는 과정은 우리로 하여금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이란 존재 속에 숨겨진 숭고하고 위대한 인간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그 성장담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보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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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없고 빽도 없고 학벌도 없이 무턱대고 고시를 준비하던 시절 송우석은 국밥 한 그릇 값을 내지 못한 채 도망치는데, 그는 변호사가 되어 이 한 그릇 국밥 값을 갚으러 간다. 기껏 몇천 원짜리 국밥 한 그릇이 뭐라고 송우석은 십 년 가까운 세월 그것을 마음에 담아 두며, 이 작은 에피소드가 의외로 보는 이를 울컥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범선은 소설 <오발탄>에서 그것을 ‘손톱 밑의 가시’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양심이라고 부른다. 돼지국밥은 양심의 다른 이름이다. 이것은 영화의 말미에서 상명하복의 질서 속에 놓인 한 젊은 군의관의 결단으로 변주되어 나타나는데, 그가 송우석을 만나는 장소는 성당이다. 영화가 끝났을 때 나는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치러야 할 엄청난 희생을 떠올리며 신 앞에 간구했을 이 젊은이가 법정에서 끌려나가 어떻게 되었을지를 생각하는 것이 더 괴로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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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웠던 시절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변명도, 상관의 명령을 따랐을 뿐 내 의지는 아니었다는 자기 합리화의 여지도 봉쇄해 버리는 인간성의 밑바탕 양심, 그 양심을 지키게 해주는 힘은 무엇일까.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면서 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평범한 중년 남성이 대학살의 주범이라는 사실에 전율하며 그의 발언에 주목한다.

“나는 그냥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그는 반복했다. 이 재판에 대한 보고서에서 한나 아렌트는 악이 근본적인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평범한 사람들이 비판적 사고 없이 명령에 복종하고 다수 의견에 따르려 하는 경향의 작용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생각 없음’이 결과적으로 악의 진부함을 낳는다.

인간의 양심은 현실 속에서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고 연민하는 능력으로 작용한다. 분노하고 슬퍼할 줄 모르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다. 참혹하게 고문당해 반쯤 정신줄을 놓아버린 진우의 모습을 보았을 때, 송우석은 타는 듯한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학생들이 탐독했다는 불온서적을 밤새워 읽는 것이었다.

송우석이 뉴스를 보며 “공부하기 싫어 데모하는 것들”이라고 매도할 때, 부산일보 기자인 그의 친구가 하는 말도 한번만이라도 그들의 주장에 대해 진지하게 알아보고 생각해 봤냐는 것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그러나 언론은 권력에 장악되고 댓글조차 조작 가능한 시대에 스스로 생각하고 공부하고 판단하는 부지런함 없이는 인간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는 것도 힘들어진다.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을 몰고 온 고려대학교 주현우 학생이 시청 앞 집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천만 명이 영화를 보면 영화사는 대박이 납니다. 그러나 천만 명이 거리로 나오면 세상이 바뀝니다.” 고문 앞에 무너지는 진우를 보며, 일말의 가책도 없는 고문 경찰관 차동영을 보며 우리의 이성이 분노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극장을 나서는 순간, 우리 대부분은 맥없는 일상으로 돌아가 양념처럼 몇 방울의 눈물로 팍팍한 삶에 온기를 주었음을 자기 위안으로 삼을 것이다. 그런데 진우를 만난 송우석은 왜 거기서 멈추지 않았을까? 상고 출신 송우석이 겹겹으로 둘러쳐진 사회적 장벽을 넘어 변호사가 될 수 있었던 힘은 ‘절대 포기하지 말자’는 다짐이었다. 진우의 변호를 자임했을 때 만류하는 선배 변호사에게 던지는 말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끌고가는 것은 열정이요, 시련과 좌절이 덮쳐올 때 그 다짐을 받쳐 주는 힘은 용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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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중한 돈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이것이 개천에서 난 용이 되어 성공가도를 달려가던 변호사 송우석의 명함이었다. 그런 그가 시대의 진실과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고 우직하게 받아 안으며 돈 대신 민주주의를 지키는 변호인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은 우리의 마음을 격동시킨다.

그리고 송우석의 돼지국밥처럼 우리에겐 이 영화가 ‘손톱 밑의 가시’가 되어 영혼을 찌를 것이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를 생각하며, 또한 송우석이란 인물에서 어른거리는 노무현이란 사람의 그림자를 떠올리며, 그를, 한 시대의 양심을 지켜내지 못한 깊은 회한에 몸을 떨며, 우리는 이 영화를 되새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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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평점 테러 등 영화 상영에 난관을 조성하는 방해 공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개봉 25일 만에 900만을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무엇이 이렇게 많은 이의 발길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것일까? 영화가 아무리 잘 만들어졌다 해도 이런 류의 성장담이 처음은 아니다.

송우석은 대기업의 스카웃 제의 미팅과 국밥집 아주머니의 진우 면회 요청이 겹치자 아주머니의 간청을 뿌리치고 기업과의 미팅에 나간다. 그쪽이 선약이니 송우석의 선택에 잘못은 없지만 아주머니의 긴급하고 절박한 하소연을 외면한 게 계속 마음에 걸린다.

이 장면에서 탁월한 배우 송강호의 한쪽 눈은 테이블 건너의 상대를 응시하며 진지하게 회의에 임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 눈은 불안과 염려에 가득찬 시선으로 딴 곳을 보고 있다. 나는 한 사람이 두 개의 시선으로 다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영화에서,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말이 필요 없는 열연이지만, 송강호의 연기는 가히 심장을 오그라들게 한다. 그 연기가 가장 불을 뿜는 장면이자, 영화에서 최고의 명대사라고 일컬어지는 장면은 이것이다.

송우석이 묻는다. “국가가 뭡니까?”
일찍이 차동영이 그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당신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뭔지, 애국이 뭔지, 집에 가서 잘 생각해 봐.” 송우석이 천둥치듯 그 질문을 되돌려 주고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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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이것이야말로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 질문이며,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며, 관객의 심장을 터질 듯이 쥐고 흔드는 각성의 순간이다.

국가란 정권인가? 국가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정권에 충성을 강요당했고, 국가 안위를 해친다는 명분으로 정권에 대한 반대는 용인되지 않았다. 국가 경제를 위해서 국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맸고, 국가 안보 즉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국민들은 불법 구금되고 고문당했다.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아니, 국가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 여태껏 자기가 국가라고 사칭해 온 사기꾼이 있었다. 우리는 국가의 안녕을 위해 국민들의 안녕은 저당 잡힌 참 나쁜 시대를 살아 왔다. 그러므로 지금, 누구나 알고 있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말, 소문처럼 떠돌았으되 벼락 치듯 다가온 저 말, “국가란 국민입니다!” 저 한마디를 듣기 위해 지금 천만 관객이 극장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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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실제 인물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부림 사건 판사로 잘못 알려진 현 여당 대표 황우여는 학림 사건 때 판사였고, 부림 사건 담당 판사는 서석구란 인물이다. 당시에 일부 무죄를 선고하다 좌천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보수 우익 인사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며, 당시 자신이 좌측으로 기울어져 있었다며 영화를 안 보겠다고 선언했다.

당시의 공안 검사 최병국 전 새누리당 의원은 여전히 소신껏 수사했으며 고문은 없었다고 주장하며 따라서 사과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전히 위풍당당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 얼마 전 영국 주재 중국 대사 류샤오밍이 BBC 방송에 출연해서 인용했다는 처칠의 명언이 생각난다. “역사에서 배우기를 실패한 자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 그것을 되풀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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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까 하는 궁금증도 인다. 노 전 대통령 관련 일화는 대개 다 사실이라고 한다. 떼먹은 국밥 값을 나중에 갚은 일이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일한 것, 나이트클럽에서 명함을 돌린 일 등도 모두 사실이란다. 소형 요트 에피소드 역시 조선일보가 호화 요트라고 악의적인 보도를 했다가 명예훼손으로 2,000만 원의 위자료를 물어 준 일이 있다.

송우석이 법정에 서자 부산 지역 변호사 상당수가 변호에 참여해 법정에서 일일이 출석을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역시 1987년 대우 조선 사건 때 법정에 선 노무현 변호사를 위해 부산 지역 변호사 99명이 변호인으로 법정에 출석해 호명된 일이 있단다.

참여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 씨가 엮은 노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에는 노 전 대통령이 변론 도중 “알리하고 포먼하고 권투시합을 하는데 김일성이 알리 편을 들었을 때 피고인도 알리 편을 들었다면 그것도 이적행위냐”고 따져 묻자, 당시 최병국 검사가 “북괴를 찬양하는 발언을 자제해 주십시오”라고 발언한 내용도 서술돼 있다니, 현실이 허구보다 더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 사람의 생이 이렇게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면, 그리고 이런 이야깃거리를 남기게 만든 현실이 실재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슴 저미고도 기가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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