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설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개최하자는 우리 정부의 제의에 북측은 8일까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이틀째 묵묵부답인 것이다. 이 제의는 6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비롯됐다. 이날 박 대통령은 새해 정국구상으로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한반도 통일시대 기반구축’을 제시했다. 말하자면 경제발전과 통일시대 구축은 박 대통령의 양대 국가발전전략인 셈이다. 전자인 경제문제의 경우,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연상시킨다. 5.16쿠데타로 정권을 쥔 박정희 대통령은 ‘근대화’, ‘자립경제’라는 명분 아래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한다. 부친의 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모방한 것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부친 시대와 명칭이 똑같으면 부담스럽기에, 또 5년에 해야 할 일을 3년 내에 압축해야겠기에 ‘경제개발’을 ‘경제혁신’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그렇다고 치자. 어떻게든 경제발전은 이뤄야 하는 거니까. 후자인 통일문제를 보자.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문제와 관련 ‘한반도 통일시대 기반구축’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지금 국민들 중에는 ‘통일비용 너무 많이 들지 않겠느냐, 그래서 굳이 통일을 할 필요가 있겠나’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 것으로 안다”고는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다”고 말했다. ‘통일 대박론’으로 항간에 나도는 ‘통일 무용론’과 ‘통일 회의론’을 일축한 것이다. 그러면서 한반도 올해 통일기반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로 △북핵 해결 등 한반도 평화 정착 △대북 인도적 지원 강화와 남북간 동질성 회복 △통일공감대 확산을 위한 국제협력 강화 등 세 가지를 내놓았다. 물론 모두연설에서 “작년에 북한은 3차 핵실험을 감행하고, 전쟁 위협을 서슴지 않았다. 개성공단을 폐쇄 상태로까지 몰고 갔고, 어렵게 마련된 이산가족 상봉을 일방적으로 무산시켰다”며 지난해 모든 걸 북측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건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것도 그렇다고 치자. 더 중요한 건 통일은 대박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날렸으니까. 게다가 북측에 이산가족 상봉까지 제의했으니까. 그러나 과연 그럴까? 6일 박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자.

박 대통령의 이산가족 상봉 제의는 김정은 북측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한 일종의 답이다. 그런데 왠지 찜찜하다. 왜 그런가? 북측이 신년사에서 “북남사이의 관계개선을 위한 분위기 마련”을 제기하자 남측의 언론과 전문가들은 대부분 이를 대남 대화 제의로 해석했다. 긍정적으로 본 것이다. 통일부도 1일 북측 신년사 분석자료에서 “대남 면에서는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 마련’을 언급하였으나, 비난도 계속하고 있어 향후 태도변화 여부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며 양면성을 지적하긴 했지만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3일 통일부 대변인이 북측 신년사에 대한 정부 입장 발표에서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를 언급하였으나 그 진정성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비판했다. 이날 정부의 입장 발표는 북측 신년사를 두고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 아니냐는 대부분 언론의 분석과 여야의 환영입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여론을 무시한 것이다. 정부의 이 같은 공식 입장은 사실상 박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것으로 평가됐다. 이로써 기대됐던 남북관계 개선이 정초부터 물건너 가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대두됐다.

그런데 6일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이 뜬금없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일거에 판을 바꾸면서 북측에 이산가족 상봉을 제기했다. 이는 3일 통일부의 정부 입장 발표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3일 정부 입장 발표가 박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것이고 또 6일 기자회견도 박 대통령의 입장이라면 과연 진정성은 무엇일까?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격이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이다. 이는 박 대통령 자신만이 통일문제를 주도하겠다는 것으로 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통일문제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다. 언론이고 전문가고 관련 정부당국이고 간에 모두 잠자코 있으라는 것이다. 또한, 알려진 대로 북측은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연계하고자 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이산가족 상봉 제의를 선수 쳤고,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 문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는 별개 사안이라고 못박았다. 이는 북측을 전혀 대화의 상대로 고려하지 않는 행위다. 이러니 북측은 난감하다 못해 황당할 것이다. 통일은 함께해야 할 국민이 있고 또 상대편인 북측이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국민여론을 무시하고 또 북측의 요구를 배려하지 않는 것은 통일문제는 오직 자신만이 주도하겠다는 식의 ‘통일 독식주의’인 것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