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쓸쓸한 추석을 맞게 된 황창화 목민ASSOCIATION 대표와 서울 여의도에서 16일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사실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아이들과 안식구 보기도 부끄럽다. 잠시 떨어져 살았으면 하는 마음까지 든다.”

모두가 추석 명절을 앞두고 부푼 마음에 들떠있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사무실에서 만난 황창환(53) 목민ASSOCIATION 대표는 올해는 부모님 묘역에 벌초도 못했다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찍이 남북경협에 뛰어들어 북한산 조개를 반입하는 사업으로 연매출 40억원에 이르던 그의 사업은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취해진 5.24조치로 인해 완전히 중단되고 말았다.

“‘좀 길어야 1년 가지 않겠냐, 곧 풀리겠지’ 했는데 4년째로 접어들었다. 다른 일, 투 잡(two job)을 하다가 그랬으면 여파가 적었을 텐데 올인(all in)을 했다.”

더구나 최근 개성공단 중단과 재가동 과정을 지켜본 황 대표의 심경은 더욱 복잡하다.

“이번 개성공단 사태는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여서 해결한 것이고, 나머지 금강산이나 경협 관련자는 MB 정부에서 발생해 분리해서 조치를 취하는 것 아닌가 싶다”며 “정부가 개성공단만 너무 옥동자마냥 하고, 우리는 서자마냥 대우해 서운한 점도 없지 않다”고 심경의 일단을 내비쳤다.

최근 금강산지역 기업인들과 북한 내륙지역 기업인들, 임가공과 무역 종사자 등이 결성한 ‘남북경협기업비상대책위원회’에서 홍보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황 대표는 “우리 의지에 상관없이 이런 사태가 발생해 본의 아니게 경협에 올인한 사람들이 모두 피해자가 돼 있다”며 “천재지변에 준하는 ‘재난 지역’ 선포 정도로 정부에서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부에 대해 “생활 안정에 필요한 대출”을 요구하고 “경협이 재개되는 게 지금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단지 경협의 재개를 넘어 “아버지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으면, 박근혜 대통령은 ‘대동강의 기적’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고 “중국 길림성과 요녕성, 흑룡강성에 약 3억 명이 산다. 러시아 극동에도 5천만, 일본이 1억 2천만, 우리가 7천 5백만, 남북만 합치면 5,6억명의 시장을 움직일 수 있다”고 제시했다.

아울러 “조선시대 500년 이후 분단 70년은 긴 세월이 아니고 결국 통일될 것”이라며 “민족의 먼 장래를 보고 병행해서 사업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좀 동정어린 시선으로 봐 달라”고 부탁했다.

다음은 지난 16일 오후 5시 30분 서울 여의도 소재 한 사무실에서 황창환 대표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잡혀갈 각오하고 성사시켜 성공했다”

▲ 황창환 대표는 이윤구 전 적십자 총재와 함께 북한에 국수공장을 지어주는 일에 동참한 것을 시작으로 세계결핵제로운동본부 이사로 활동했다. [사진 제공 - 황창환]
□ 통일뉴스 : 언제부터 경협 사업에 뛰어들었나?

■ 황창환 대표 : (북으로부터) 물건이 진짜 오기 시작한 건 95년이다.

□ 빠른 편인데,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

■ 최근 양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윤구 전 적십자 총재이다. 미국에서 지난달 30일 갑자기 돌아가셔서 12일 YMCA에서 범시민단체 추모식을 했다.

1994년도에 월드비전 총재를 하셨는데, 그때 북한 식량난이 너무 심해 다 굶어죽으니까 국수공장을 만들어 주자고 하셨다. 내가 무역을 시작하려고 하던 참에 제안을 받아 그 일을 하게 됐다. 이 총재 말씀으로는 지금까지 600만명을 살렸다고 하더라. 그런 계기로 북한과 무역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온 거다.

□ 대북 지원사업에서 경협사업으로 전환은 언제 했나?

■ 원래 사업을 했고, 사업하려고 북한과 접촉했다. ‘물수건’을 하다가 이윤구 총재를 만난 것이다.

당시 이 총재는 유엔아동기금(UNISEF)에 근무하다가 오신지 얼마 안 됐다. 이 총재는 “북한에 우리민족이 다 굶어 죽는다. 아프리카에만 식량을 보낼 것이 아니라 북한에도 보내야 한다”고 했는데 성공했다.

김영삼 정부 때인데, 반대가 굉장했다. 잡혀갈 각오하고 성사시켜서 성공했다. 오늘날까지 월드비전이 북한에 인도적 지원사업을 잘하고 있다. SBS와는 1년에 한 번씩 ‘기아체험 모금운동’을 해 북한은 물론 아프리카, 제3세계 지원으로까지 확대됐다.

□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과도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 김우중 회장이 남포공단을 만들 때, 같이 대화도 많이 했고, 민족을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나 꿈에 부풀었다. 김우중 회장의 북측 파트너가 내 파트너였다.

그러나 현실은 지금까지도 진전이 거의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정주영 회장까지 큰 뜻을 품고 일을 했는데도 결과물에 있어서는 굉장히 미약하지 않느냐.

남북 간에 상징적으로 개성공단이라는 것은 하나 만들었지만, 오늘 다시 6개월 만에야 재가동 됐다. 근 20년 몸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남북 경협은 크게 진전된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주변 경협업자 “숨만 쉬고 있다”

▲ 북한산 조개 반입 사업은 연매출 40억원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지만 2010년 5.24조치라는 '날벼락'을 맞아 전면 중단됐다. 북한산 산품은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진은 북한산 조개 선별과정. [사진 제공 - 황창환]
□ 북한산 조개를 들여오는 사업을 한 것으로 안다.

■ 2003년부터 2010년 5.24조치 전까지 조개 반입 사업을 했다. 조개구이집에 들어가는 조개들이다. 보통 식탁에 올라가는 바지락은 물론, 조개구이집에 들어가는 조개 종류가 20가지가 넘는다. 5.24 전까지 마지막에는 연매출 40억원 정도로 안정권에 들어갈 시점이었는데 날벼락을 맞았다.

□ 5.24조치 이후에는 어떻게 지냈나?

■ ‘좀 길어야 1년 가지 않겠냐, 곧 풀리겠지’ 했는데 4년째로 접어들었다. 다른 일, 투 잡(two job)을 하다가 그랬으면 여파가 적었을 텐데 올인(all-in)을 했다. 나이도 있고 경험도 그렇고, 쉽게 안 되더라. 그렇다고 막노동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경험이 있어야지.

어렵게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나도 천 개 경협기업 중 하나고 다들 어렵다고 봐야할 것이다. 개성공단에 대한 정부의 해결방법을 보니까 우리도 정부에서 좀 따뜻하게 감싸야 될 것 아닌가 생각된다.

□ 주변 경협업자들도 비슷한 상황일 것 같다.

■ 송이버섯을 들여왔던 모 사장의 경우도 5.24조치 이후 선불금을 준 물건만 들어온 뒤 2011년부터는 반입을 전혀 못해 파산 직전인 상황이다. 송이버섯은 지금 남북 경협이 풀리더라도 올해는 이미 늦었고 내년 9월에나 들여와야 하는 상황이다.

그 회사는 지금은 직원 2명이 관리만 하고 있는 상태인 것으로 아는데, 이 사장은 “숨만 쉬고 있다”고 말한다.

□ 추석 명절을 앞둔 심경은?

■ 일단 ‘장(長)’자가 붙으면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데 가장이 돼서 4년 동안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니까. 5.24조치로 집도 경매가 됐고, 돈이 없어서 자식들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서 집도 두 번이나 옮기게 됐다.

사실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아이들과 와이프 보기도 부끄럽다. 잠시 떨어져 살았으면 하는 마음까지 든다. 비단 나뿐 아니라 경협에 올인했던 사람들은 거의 나와 같다고 보면 된다.

□ 자녀들은 다 컸을 것 같다.

■ 그나마 직장 다니고 자기 사업들 하니까 은행에서 5백만원, 천만원 정도 신용대출이 가능해 이번에 집을 옮겼다. 옮긴 지 2주도 안 됐다. 아무도 오지 말라고 한다. 다리뻗고 자는 정도다.

재개 전 개성공단 쪽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천재지변에 준하는 ‘재난 지역’ 선포 정도로 정부에서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의지에 상관없이 이런 사태가 발생해 본의 아니게 경협에 올인한 사람들이 모두 피해자가 돼 있다.

“경협 재개,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 개성공단은 정부의 집중적 관심 속에 재가동에 들어가지만 금강산과 내륙기업은 아직 전면 중단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북경협기업비상대책위원회 홍보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황창환 대표가 개성공단 기업주들에게 축하의 장미꽃을 전달한 뒤 도라산 출입경사무소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제공 - 황창환]
□ 정부에게 어떤 대책을 바라나?

■ 이번 개성공단 사태는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여서 해결한 것이고, 나머지 금강산이나 경협 관련자는 MB 정부에서 발생해 분리해서 조치를 취하는 것 아닌가 싶다.

박근혜 정부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MB 정부 때나 박근혜 정부 때나 경협을 한 국민은 똑같다는 것이다. 분리해서 대할 게 아니라 MB 정부 때 본의 아니게 피해를 당한 기업들에게도 생활 안정에 필요한 대출 정도는 해줘야 되지 않겠나.

□ 경협을 다시 재개할 수 있는 조건을 바라지 않나?

■ 과거를 자꾸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다. 천안함, 연평도, KAL기 사건, 아웅산 사건, 6.25까지 과거를 물고가면 한도 끝도 없다.

이 정부에 내가 희망을 가졌던 게 국정 제일 지표를 평화통일로 놓았다는 것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조찬에 가서 듣고 깜짝 놀랐는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서 남북관계 발전,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기반 구축이 들어 있어 희망적으로 봤다.

과거에 너무 얽매여 미래가 발목잡히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경협이 재개되는 게 지금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삼국지에 보면 삼분정립(三分鼎立)이라는 말이 있다. 솥이 서있으려면 남북 다리로는 불안정하다. 경협이라는 다리가 하나 있으면 솥의 안정적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선경후정(先經後政)’으로 가야 한다.

21세기 무한경쟁시대에 우리 한민족이 살아날 길은 북한에 있는 자원과 우수한 인력이고 우리의 우수한 과학기술력이다.

내가 처음에 북한하고 꿈을 가졌던 것도, 그런 것이었다. 정주영 회장이 소 1,001 마리 가지고 올라 간 이유도 그렇게 보는데, 지금도 늦지 않았다.

미래는 리더의 의사결정에 달려있다고 본다. 상황에 따라가지 말고 앞으로 우리민족을 이렇게 끌고 가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을 믿는다. 아버지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으면, 박근혜 대통령은 ‘대동강의 기적’을 만들어 달라.

중국 길림성과 요녕성, 흑룡강성에 약 3억 명이 산다. 러시아 극동에도 5천만, 일본이 1억 2천만, 우리가 7천 5백만, 남북만 합치면 5,6억명의 시장을 움직일 수 있다. 이게 굉장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이나 아프리카나 앞으로 새로 뜨는 인도나 세계지도를 놓고 보더라도 충분히 우리가 5만불 시대를 만들 수 있다.

나는 된다고 본다. 과거 가지고 자꾸 이야기하면 나갈 길이 안 보인다. 글로벌 무한경쟁시대에서 살아날 길은 남북이 화합해서, 정치적으로는 어려우니까 선경후정해서 남북이 하나가 되서 박근혜 대통령이 ‘신뢰 프로세스’에 걸맞게 나가야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 선경후정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20년 경협 경험이 말해주듯 정치적 이유로 경협이 많은 영향을 받지 않았나? 정치적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경협도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 그렇다. 이번에 대통령 선거 결과를 봐도 51:49다. 정치는 51%에게 5년을 맡기는 것이지만 51%가 지지했다고 해서 49%를 생각 안한다면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49%는 경협을 하라는 쪽으로 봐도 될 것이다. 51%를 잘 설득해서 끌고나가야 한다. 그게 정치다. 선경후정을 흔드는 것을 이런 지혜로 풀어가야 한다.

우리가 자중지란에 빠지면 나면 과연 누가 뒤에서 웃을까 생각해 봐야 한다. 중국과 대만도 장개석과 모택동이 싸울 때 엄청난 사람이 죽었지만 그래도 이 사람들은 화합했다. 여기서 뭘 느끼냐면, 우리 선조들이 대륙을 경영해봤다면 지금 이렇게 갈등의 골이 깊게 안 갈 것 같다. 만약 일본이 분단됐다면 우리 같지는 않을 것 같다. 일본은 대륙 경영을 시도해봤다. 우리가 가슴 사이즈를 키워야 한다.

“북한이 1만불만 되면 평화는 자동으로 온다”

□ 북한에 마지막 다녀온 게 언제인가?

■ 2010년 5.24조치 1주일 전쯤 개성에 가서 상담하고 왔다. 통일부는 그때 가지 말라고 했다. 5.4조치가 임박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나는 5.24조치로 배가 못 다니는 것을 상상도 못했다.

나처럼 20년간 북과 관계를 유지한 경우도 드물 것이다. 외상도 할 수 있고 항의하면 반품도 받아줬다.

□ 북측 지역에 공장이나 시설 같은 것도 있나?

■ 없다. 한창 원산에 수족관을 만들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바다에서 바로 잡은 것은 산품(産品)이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상품(商品)이다. 수족관을 만들어서 상품을 만들 계획이었다. 중요한 것은 북한도 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또 원산에 폐선을 올려 보내서 조금만 수리하면 쓸 수 있다. 우리는 폐선을 돈 주고 사서 버리는데 북한에서는 유용하게 쓸 수 있다. 폐선을 물고기와 조개로 물물 교환하는 것이다.

좋지 않은 에피소드도 많지만 나 같은 경우는 열심히 하려 했고 적극적이었다. 북한에 어떤 동력을 가해주면, 북한이 1만불만 되면 평화는 자동으로 온다. 북한 국민소득이 1만불 되면 평화가 오지 긴장이 지속되지 않으리라 본다. 북한 소득을 1만불까지 올려놔야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그래서 대동강 기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 경협과정에서 어려운 점도 많았을 텐데.

■ 경협사업하는 1,000 여개 기업가들에게 인생이랑 똑 같다. 인생이 어느 때는 막히지만 한없이 막히지는 않는다. 태풍이 강하지만 계속 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좋은 미래를 생각하고 이 고통을 서로가 슬기롭게 잘 넘어가자는 말씀 드리고 싶다.

□ 소개할만한 경험담이 있다면?

■ 북한이 95년도에 나진-선봉을 남쪽 식으로 표현하면 개혁.개방했다. 그리고 나서 신의주 개방한다고 했는데 양빈 때문에 좌절됐고, 이번에 김정은 체제 들어서서 새롭게 제3의 개혁.개방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내가 볼 때 북한이 성공할 것 같다.

조선시대 500년 이후 분단 70년은 긴 세월이 아니고 결국 통일될 것이다. 이번에는 한국의 우수한 인력들이 북한과 손잡고 통일만 되면 세계를 호령하지 않을까 싶다. 중국도 호랑이고 일본도 호랑이라고 보는데, 우리 한국은 부채를 든 신선이 돼서 호랑이 두 마리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신선 옆에 호랑이 두 마리가 납작 엎드릴 것이다. 한국이 충분히 헤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러시아나 미국이나 우리를 둘러싼 4대 강국들도 우리가 얼마든지 신선이 돼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 경험담이라기 보다는 거시적 비전을 이야기 한 것 같다.

■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이야기 하고 싶다. 북한의 핵이 전 세계적인 이슈다. 그러나 그것은 거시적인 핵이고, 미시적인 핵을 봐야 된다. 북한의 어린이들이 핵보다 무서운 결핵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 같은 민족이면 우리가 살려야 한다.

이 총재 돌아가시기 전까지 세계결핵제로운동본부(사)에서 나도 이사로 참여해 이 사업을 했다. 이 사업엔 우리나라 대표적 보수신문인 조선일보도 함께 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동안 100억원 상당의 결핵약을 보내줬고, 5.24조치 이후 못 올라간 결핵약이 이번 인도적지원사업에 해당돼 올라가게 됐다. 아주 잘된 일이라 생각한다. 유효기간이 걱정이었는데 2억3천만원 정도 올라가게 된 것이 기쁘다.

“정부가 개성공단만 너무 옥동자마냥 하고...”

▲ 경협사업가이면서도 민족적 미래 비전을 고심하고 있는 황 대표는 어려운 가운데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오늘 아침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방북에 남북경협 비대위 소속 경협업자들이 시위를 한 것으로 안다.

■ 경협이 재개 됐으니까 같은 경협하는 사람으로서 축하하고, 또 하나 금강산이나 내륙기업들 길이 막혀있고 무역도 4년째 중단돼 하루라도 빨리 경협재개를 희망하는 마음에서 간 것이다.

□ 개성공단 기업주들이 부러웠겠다.

■ 당연하다. 같은 경협인 입장에서 볼멘소리도 나올 수 있고 서운한 면도 있다. 정부가 개성공단만 너무 옥동자마냥 하고, 우리는 서자마냥 대우해 서운한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MB 정부와 달리 다시 한 번 협상해서 개성공단을 재가동한 것은 잘 한 일이다. 금강산도 재개되고, 그러다 보면 내륙기업이나 무역도 열리지 않겠냐는 희망이 있다. 앞당겨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이번 추석은 어려운 상황에서 지내게 됐는데 다음 설이나 추석에는 상황이 풀렸으면 좋겠다.

■ 두말하면 잔소리다. 가족들에게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밥먹는 것도 미안해 죽겠다. 상황이 풀리면 바닷가 가서 조개구이도 같이 먹자.

그러나 마이너스만 있는 게 아니다. 옛말에 포의지교(布衣之交)라고 베옷 입고 어려운 시절에 만난 친구들이 우정이 오래가는 것이다. 이번에 그런 것을 우리가 얻은 것 같다.

□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나?

■ 홍성에 부모님 묘가 있어서 가긴 간다. 자식된 도리로 벌초는 내가 내려가서 해야 하지만 시간적으로 어려운데 사람이라도 사서 깎아야 되는데 그것도 못해서 조상묘를 어떻게 봐야될 지 모르겠다. 올해는 사실 벌초도 못했다.

□ 국민들과 네티즌에게 하고 싶은 말은?

■ 국민들이 경협하는 사람들 고충을 열에 한 명도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언론에서 좀더 많이 다뤄줘서 경협하는 사람들 내돈 벌려고 하는 사람들만 아니다. 민족의 먼 장래를 보고 병행해서 사업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좀 동정어린 시선으로 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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