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화(樽花)는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그림으로 기록되어 있다. 
나라의 잔치 때 준(樽)에 꽂아 춤에 쓰던 조화(造花)의 한 가지이다. 
준(樽)은 술 단지, 목이 짧고 배가 부른 술통을 뜻하는 한자이다.
다른 말로 화준(花罇)은 꽃병, 화병이라고도 하는데 같은 의미로 쓰인다.
병(甁)이 작은 항아리라는 의미로 사용하니까 화병(花甁)은 꽃을 꽂은 작은 항아리를 말하고, 화준은 꽃을 꽂은 큰 항아리를 뜻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용문양이 들어가 있는 커다란 청화백자에 가짜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여러 가지 꽃과 새, 나비 따위를 만들어 붙인 것을 말한다.
꽃과 새, 나비 따위는 주로 종이나 비단 조각으로 만든다. 

▲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그려져 있는 준화(樽花)의 모습. [자료사진 - 심규섭]

그림으로 남아있는 기록을 참조하면,
일단 용문양이 들어가 있는 용문청화백자가 있다. 
그 위에 가짜 나무를 세웠는데, 이파리와 꽃을 보면 복숭아나무로 추정한다. 
혹은 매화와 도화가 비슷하여 매화나무가 아닐까 추측할 수도 있지만 궁중회화를 참조하면 매화나무를 그릴 때는 꽃만 그리지 이파리는 그리지 않는다.
복숭아나무에는 복숭아꽃(도화)을 종이나 비단조각으로 만들어 붙였다. 
복숭아나무에는 여러 종류의 새와 곤충을 만들어 붙였는데 총 23마리가 등장한다.
이 중에서 이름을 알 수 있는 것은 공작, 봉황, 꿩, 제비, 금조, 잠자리 정도이고 나머지는 종류를 알 수 없다. 
   

▲ 복숭아나무에 꽃과 여러 새와 곤충을 만들어 넣은 준화와 모란꽃을 꽂은 준화.
좌측은 주로 장식용으로 사용했으며 우측의 준화는 궁중무용에 사용되었다. [자료사진 - 심규섭]
     
이 준화의 쓰임새는 궁중에서 가례, 의례, 회갑, 연희와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행사장 주변을 꾸미는 장식물 중에 하나이다.
또한 궁중무용인 [가인전목단]처럼 중간에 화준을 놓고 여러 무희들이 춤을 출 때 사용되기도 한다.
호화롭고 풍성한 잔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꽃을 꽂는 화준이라고 부르는 청화도자기가 있었는데, 화준에는 용, 모란, 사군자, 산수문 등이 청화로 그려졌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니까 화준은 크게 두 가지 쓰임새가 있다. 
첫째, 각종 새와 곤충을 매단 꽃나무 형태로 만들어 행사장을 장식하는 것.
둘째, 모란과 같은 화려한 꽃만 넣어 무용이나 연희용으로 사용하는 것.
     
이 중에서 두 번째는 조금 흔하다. 
화려한 꽃과 병이나 도자기의 형태는 서구에서도 흔하고 요즘 성당, 교회, 불교사찰의 꽃꽂이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크게 언급할 내용이 없다. 
     
하지만 첫 번째 큰 청화백자에 복숭아나무를 만들고 꽃과 각종 새와 곤충을 만들어 넣은 형태는 보기 드문 형식이다.
조선 궁중미술을 대표하는 그림에는 장생도가 있는데, 장생도에는 복숭아나무, 꽃, 학, 봉황, 사슴 따위가 등장한다. 
또한 궁중을 장식하던 작품 중에는 화조도가 있는데 꽃과 새를 어우러지게 그린 화조도에는 금조, 까치, 오리, 앵무새, 원앙새, 파랑새, 꿩, 학 따위의 각종 새들과 화려한 꽃들이 등장한다. 그러니까 장생도의 복숭아나무와 화조도의 각종 꽃과 새들을 결합시킨 형식이라는 말이다. 
마치 평면 회화작품인 화조도를 조각과 같은 입체 작품으로 만든 느낌이다.
     
어쨌든 이 두 가지는 모두 입체물이었는데 주로 궁중에서만 사용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궁중에서 사용되는 것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양반들이나 일반백성들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들기도 어렵고 가격도 비쌌을 것이다.
만약 이것을 그림으로 만든다면 제작과 보관, 이동이 용이하고 대량으로 창작할 수도 있으며 상대적으로 가격도 저렴할 것이다. 
    
이 중에서 두 번째, 꽃만 넣은 도자기는 이미 독자적인 그림으로 창작되었다. 
흔히 ‘사계절 꽃그림’이나 ‘화병그림’은 다양한 형태의 도자기에 모란, 연꽃, 매화, 해당화, 국화 따위의 꽃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 다양한 화병그림. 화병그림은 독자적인 작품이라기보다는 궁중회화인 책가도, 기명도의 일부에서 떨어져 나와 대중그림으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한다. 시대의 흐름을 잘 아는 화가나 상술에 뛰어난 화상들은 선비들이 가치를 높여주는 상징들을 모으고 값비싼 재료를 사용해 화병그림을 그렸다. 이런 작품은 선비들의 방안에 걸렸고 양반들의 놀이터인 고급 술집의 내부를 장식했을 것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 [자료사진 - 심규섭]
 
그러나 꽃나무 형태로 만들어 각종 새와 곤충을 만들어 붙인 준화는 쉽게 그림으로 그리지 못했다. 
형식적으로 본다면 복숭아나무와 수 백 개의 꽃과 20여개가 넘는 각종 새와 곤충을 모두 하나의 화면에 그려 넣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용적인 부분은 궁중회화인 장생도를 중심으로 화조도를 결합시킨 것이다. 
장생도의 내용은 ‘그냥 오래 사세요.’가 아니다. 
‘생명력이 넘치는 조화롭고 이상적인 세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 화조도의 각종 꽃을 결합시켜 장식성을 높였다. 
입체물인 준화를 평면적인 그림으로 표현하려면 나무, 새, 곤충, 꽃을 모두 그릴 수 있어야한다. 

아무튼 ‘의궤’에 나오는 조그만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입체물인 준화를 그림으로 재창조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만 한다면 새로운 종류의 작품이 탄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생도나 화조도의 요소를 가지고 입체물인 준화를 만들었다면 반대로 준화를 그림으로 바꾸는 일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발상이다.
궁중에서 사용하던 입체물인 준화를 그림으로 변주한다고 궁중회화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화병과 꽃나무와 복숭아, 다양한 새와 곤충이 어우러지는 그림은 세계적으로 드물고, 전통을 현대에 맞게 재창작한다는 의미가 있다.
가끔 궁중회화나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창작했다는 작품을 본 적이 있는데 대부분은 해체나 왜곡 수준이었다. 재창작하는 과정에서 조형원리나 상징을 궁중회화나 민화에 중심을 두지 않고 서양화법에 중심을 두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방법으로 재창작하면 우리그림의 정체성과 고유성이 사라지고 자칫 돈벌이나 반짝 인기에 치중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작은 준화인 ‘사계절 꽃그림’을 여러 번 그려 본 터라 구상은 어렵지 않았다.  
궁중박물관 자료를 뒤져 용무늬 청화백자를 찾아내었다.
또한 장생도에서 복숭아나무를 차용하고, 각종 화조도에서 새와 곤충의 모습을 찾았다. 
각각의 형상은 최대한 궁중회화의 형식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때론 사진자료와 민화에서의 새를 비교하면서 보완하기도 하고 현대적인 변주를 가미하기도 했다.
준화의 실제 크기를 감안해 작품의 크기도 100~200호 이상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크게 잡았다. 또한 한 점을 복제해 두 점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입체물은 중앙에 한 점을 넣어도 사방에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평면 그림은 사방에서 보지 못하고 오직 한 방향에서만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 입체물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 내기 위해 좌우 양쪽을 볼 수 있도록 기획한 것이다.

실제 입체물의 경우 만들어 붙인 새나 곤충이 서로 뒤엉켜 잘 보이지 않는데 평면그림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나무와 꽃, 새와 곤충이 잘 어우러지면서도 그 특징이 잘 드러나도록 했다.
특히 너무 요란해 보이지 않도록 각 요소들 간에 균형을 잡아주고 색상은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아름답고 우아해 보이도록 했다.
또한 복숭아나무에 천도복숭아를 첨가했다.
복숭아나무만 그리면 자칫 화조도에 고정되어 버릴 수 있다.
화조도는 아름답고 조화로운 자연의 이치를 담고 있는데, 천도복숭아를 넣으면서 생명력이 넘치는 세계로 확장시켰다.
너무 복잡한 공작새는 빼버렸고 원래 없었던 학과 매, 나비 따위와 같은 몇 가지 요소를 추가로 그려 넣었다.
실제 창작에 있어 사실적인 기법은 최대한 피하고 각 사물을 정형화하는데 주력했다. 작가의 독창적인 기법이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이 작품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쉽게 베껴 그릴 수 있도록 고려한 것이다.
이 작품을 본그림으로 다양한 변주가 일어날 것이다.
화병과 꽃나무, 몇 마리의 새만 그려도 되고 심지어는 화병에 꽃나무만 그려도 된다. 복숭아나무를 소나무나 석류나무, 매화나무로 바꾸어도 되고 그 속에 들어가는 각종 요소도 창작자의 취향이나 필요에 따라 더하고 빼기를 할 수 있다.
 
형식과 내용을 잘 연결해 작품의 제목도 미리 생각해 두었다. 
‘생명력이 넘치는 우주나무’
간단히 ‘우주나무 그림’이다. 

▲ 심규섭/우주나무(우,좌)/디지털민화/2012. [자료사진 - 심규섭]

▲ 심규섭/우주나무(우,좌)/디지털민화/2012. [자료사진 - 심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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