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이 지난달 20일 남북정상회담 발췌본을 열람한 후 기자회견에서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에게 ‘보고드린다’는 표현을 썼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비굴과 굴종의 단어가 난무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아울러 “내 말이 조금이라도 과장됐다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까지 강조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김 전 국방위원장에게 ‘보고드린다’는 말을 했다며 이를 걸어 ‘굴욕’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굴욕’이라고 할 만합니다. 게다가 의원 배지를 생명보다 귀히 여길 텐데 직을 걸겠다고 했으니 이 정도면 사실로 받아들여질 만했습니다. 그러나 나흘 후인 지난달 24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공개되자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회의록 전문을 보면 ‘보고’라는 표현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김계관 외무성 부상으로 하여금 노 전 대통령에게 6자회담 진행 경과를 보고한 것을 지칭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즉,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NLL 문제에 대해 한참을 설명하다가 김 부상을 불러 6자회담 보고를 시켰으며, 김 부상은 미국측과 접촉한 결과를 상세히 보고한 것입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수고 많이 하셨다”고 한 뒤 “6자회담에 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 전에 보고를 그렇게 상세하게 보고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서상기 정보위원장의 ‘굴욕’ 언사 주장이 왜곡이자 허위였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최근,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다른 나라들에 대한 정보수집과 도감청 실태를 폭로한 전직 CIA 요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의 용기가 화제입니다. 스노든의 폭로 중에는 NSA가 세계 38개국 대사관의 전화와 팩스를 도청하고 인터넷 망에 침투해 민감한 정보들을 빼내갔다는 놀라운 일들이 있습니다.

이들 나라 가운데는 중동 등 반미 적성국가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회원국 다수가 있으며 심지어 한국을 비롯해 일본, 멕시코, 인도, 터키 등 전통적 동맹국 또는 우방국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히 글로벌적인 범죄행위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EU와 독일, 프랑스 등 주요국들은 곧바로 미국 정부에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독일 연방 검찰은 미 정보기관을 상대로 기소 준비를 하고 있으며, 독일 시민사회가 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합니다.

우리 정부는 어떻습니까? 처음엔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는 말 이외엔 할 수 없다’며 버팁니다. 야당측에서 “미국 당국의 사과와 재발방지를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고 하자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고 결과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상투적으로 답합니다. 아무리 동맹 관계라 해도 금도를 벗어나면 따질 건 따져야 합니다. 이는 국가의 자주성 및 국민의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서해 분쟁수역을 평화지대로 바꾸기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설득하려고 한 노무현 대통령. 우리 대사관을 도청한 미국에 대해 한마디 말도 못하는 우리 정부. 대체 어느 쪽이 굴욕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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