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회화를 디지털도구로 변주한 ‘디지털 궁중회화展’에 못다 한 이야기가 있다.

전시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시기획’이다.
참여 작가들은 전시기획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야 일관성이 있는 작품을 창작할 수 있고 집중력이 있는 전시가 이루어진다.

이번 전시의 기획은 궁중회화를 디지털로 복원하는 것에 있지 않다.
복원은 그야말로 ‘원래의 것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래 전에 창작된 작품을 디지털 도구를 이용해 원 상태로 되돌리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런 작업은 화가들이 아니라 ‘복원 전문가’의 몫이다.

이번 전시기획의 핵심은 ‘궁중회화의 변주를 통한 창작’에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회화와의 관계는 뭘까?
궁중회화를 변주하기 위해서는 미학, 조형원리 따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미학은 이론적인 문제이기에 공부를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조형원리에는 미술재료라는 특수한 문제가 붙어있다.
궁중회화는 비단, 진채물감, 먹, 붓 따위의 재료를 사용해 그려졌다. 이런 미술재료가 만들어 내는 화면은 서구의 캔버스와 유성물감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또한 미술재료는 그것에 맞는 사용방법과 기법이 있다. 미술적 표현은 그야말로 미술도구의 한계를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미술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조형원리를 습득하는 과정은 미술재료를 사용하고 익히는 과정과 붙어있다.

궁중회화는 수묵화나 담채화가 아니라 진채그림이다. 그러니까 투명한 수성물감을 이용해 불투명 화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수성물감은 분말형태로 만들어져 있는데 물에 희석해 사용한다. 물에 희석하면 물감은 엷어지고 색상은 탁해진다. 진한 색깔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 번을 겹쳐 발라야 한다.
하지만 얇은 비단이 흡수하는 물감의 양은 얼마 되지 않아 겹쳐 칠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술용 접착제를 사용해야 한다. 물감이 비단에 달아 붙어야 하고 물감과 물감이 서로 붙어야 한다. 미술용 접착제인 ‘아교’를 사용하면 물감을 뻑뻑해지고 그만큼 붓질에 힘이 들어가고 기교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채색을 한 후에 아교를 바르고, 말린 다음 또다시 칠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진하고 선명한 색상을 얻을 수 있다.
이런 미술재료에 따른 기술을 배우고 체화하는 과정은 험난하다. 빠르면 3년, 제대로 한다면 1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은 서구의 유화기법을 배우고 체득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비단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비단을 당겨 고정할 틀이 있어야 하고, 2~5m에 이르는 커다란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넓은 공간도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미술재료의 특성에 따른 준비를 하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디지털 미술재료’를 사용한 것이다.
디지털은 복잡하고 어려운 궁중회화의 재료적 문제를 비교적 쉽게 극복할 수 있다.
비단이나 진채물감, 아교 사용법을 모르고 넓은 화실이 없어도 실제와 비슷한 표현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물론 디지털 미술재료로 창작한 궁중회화는 원래의 안료 느낌과 다르고 미세한 표현에서도 차이가 난다. 반대로 디지털로 표현한 궁중회화는 현대인의 정서나 미감에 잘 맞는다.

궁중회화의 진채기법은 맥이 끊어졌다.
가끔 사찰의 불화에서 그 전통을 확인할 수 있지만 종교라는 벽이 가로막고 있다.
어쨌든 전통적 진채기법을 사용해 궁중회화를 복원하는 화가들이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 ‘디지털 궁중회화展’에 참여하는 작가들. 한국화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서양화법을 체계적으로 공부했고 연필화, 수채화나 아크릴물감을 사용해 창작을 하던 사람들이다. 물론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 따위를 능숙하게 다루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자료사진 - 심규섭]
궁중회화의 전통은 미술재료나 표현기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재료가 달라진다고 미학이나 조형원리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과 더불어 미술도 발전한다.
빨래방망이에서 세탁기로, 장독대에서 김치냉장고로, 가마솥에서 전기압력밥솥으로 발전하듯이 미술도구도 시대를 반영하여 발전하면서 새로운 기법과 표현방법들을 만들어낸다.
전통은 뿌리이고 역사의 지혜와 경험이 농축된 것이다.
뿌리를 찾는 것은 정체성을 갖는 일이고 역사의 지혜와 경험을 배우는 것은 현재를 풍성하게 하고 미래를 열기 위함이다.
그래서 전통을 현대에 맞게 되살리고 곱씹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전시에 참가한 작가들은 한국화를 전공하지 않았고 먹이나 비단, 혹은 한지에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다. 전통기법을 따로 공부하지도 않았다.
작가들은 서양화법을 체계적으로 공부했고 연필화, 수채화나 아크릴물감을 사용해 창작을 하던 사람들이다. 물론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 따위를 능숙하게 다루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그림의 전통적인 기법을 모르면서 어떻게 궁중회화를 창작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작가들의 가장 큰 장점은 우리의 민족문화와 궁중회화를 사랑한다는 점이다.
사랑은 관심과 집중력을 높여준다.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
이런 애정과 자부심이 없었다면 궁중회화의 창작은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창작과정은 배움의 연속이었고 그야말로 시간과의 싸움이었으며 자신의 한계를 넘나드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엄밀히 말해 이번 전시에 참가하는 작가들은 제대로 된 궁중회화를 창작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는 않았다. 궁중회화를 배우는 사습생도나 초보 화원의 자세를 가졌다.
그림은 이론으로만 배우지 않는다. 그림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베껴 그리거나 따라 그려보는 것이다.
궁중회화를 따라 그리면서 궁중회화 속에 녹아있는 미학과 조형원리를 배우고 몸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다음 전시에 창작할 작품이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또한 서양화법을 공부한 작가들이지만 우리의 전통그림을 수용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형태와 명암, 원근법이라는 서양화법의 핵심과 본그림과 선묘, 확대원근법이라는 궁중회화의 조형적 원리는 충돌하지 않았다. 이것은 모든 미술창작의 원리가 비슷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궁중회화가 서구를 비롯한 세계에 보편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수성은 보편성 위에서 나온다.
궁중회화는 우리그림의 보편성이고 미술교과서이다.
화가는 그 보편성을 충분히 익힌 다음 자신의 재능과 정서, 시대적 흐름의 바탕으로 변주하여 독창적인 화풍을 만든다.
이번 전시 작품은 서양화법을 배운 작가들이 궁중회화의 보편성에 동감하면서 자신의 방식에 맞게 변주한 것이다.

아직도 손대지 못한 궁중회화가 많이 있다. 그 중에는 일제에 의해 변질된 것도 있고 엉뚱한 그림이 궁중회화의 자리를 꿰차고 있기도 하다.
할 일은 많지만 손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시작에 불과하다.
곧바로 새로운 전시기획을 준비할 것이다. 그 과정은 인터넷과 디지털을 통해 사람들과 공유할 것이고 모든 창작에 관한 정보도 공개할 것이다.
그래서 젊고 똑똑한 창작자들이 궁중회화에 관심을 가져 더 나은 민족문화를 창조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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