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욱기자(kjw@yonhapnews.co.kr)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평화통일의 틀이 잡혀가고 있다.

당사자인 남북한이 긴장완화를 위한 대화에 나서고 있고 북-미 적대관계의 `법적 청산`을 위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으며 동시에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들이 한반도 평화와 안보를 보장하는데 대한 의지를 표시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53년 휴전이 낳은 `정전상태`라는 기형적 체제를 해체하기 위한 새로운 해법으로서 과거의 한반도문제에 대한 인식과 차원을 달리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21일 중앙일보와의 회견에서 "내년 봄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때 남북한 `평화체제`를 어떻게 만드느냐는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남북 평화체제`를 거듭 강조함으로써 남한내 일각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남북 평화협정 체결` 주장과 거리를 두고 있음을 분명히했다.

김 대통령의 이런 구상에 대해 한반도 문제의 제3자이면서 실질적 당사자인 미국도 어느정도 `공감`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주목을 끈다.

제32차 한-미 연례안보회의차 서울을 방문한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은 21일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남북간은 물론 북-미간 신뢰 조치도 협의돼야 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는 미국 정부의 한반도 군사 문제 인식이 `남-북 긴장완화`와 `북-미 적대관계 청산`으로 구체화됨으로써 북측이 휴전 이후 일관되게 주장해 온 `북-미 평화협정 체결`에 한 발 다가섰음을 의미한다.

미국은 지금까지 한반도 문제의 남북 당사자 원칙만을 강조했을 뿐 북-미간 법적이고 실질적인 군사대치 상태 해소에는 소극적이었다는 점에서 코언 장관의 이날 발언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코언 장관은 또 "주한미군의 구조는 어떠한 안보체제가 등장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해 남북간 긴장완에 따른 주한미군 지위 변경 가능성을 시사했다.

코언 장관은 지난 4월초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이후 지금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한미군 지위 불변`을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이 발언 역시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모종의 변화가 일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같은날 황원탁(黃源卓)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남북관계 진전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정전체제의 관리책임을 맡고 있는 유엔사의 지위를 재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전 수석의 이런 지적 또한 한반도 군사문제에 대한 미국의 책임과 의무를 은연중 강조한 것이다.

김 대통령과 황 전 수석 및 코언 미 국방장관의 발언은 모두 ▲남북간 대립과 긴장 및 ▲북-미간 군사적 대치상태가 한반도 문제의 두 축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이 해법은 최근에도 횡행하는 `남북간 평화협정 체결` 주장과 전해 다른 패러다임이다.

남북평화협정 체결 주장은 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의 법적(de jure) 의미를 무시한 채 남북한이 한반도 문제의 실질적(de facto) 당사자라는 사실만을 강조하는 것이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정전협정 체결의 법적 당사자이면서 현재까지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북한과 미국이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 북한과 미국 사이의 휴전(休戰) 상태가 청산되고 평화적 우호 관계가 성립됨으써 한반도 문제의 실질적 당사자인 남북간 평화체제가 구축될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북-미간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남북 평화체제가 확고히 구축되면 다음은 주변국들이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보장하는 절차가 남는다.

김 대통령이나 코언 장관 및 황 전 수석의 발언들을 종합해 보면 이 문제에 대해서도 한-미 양국간에는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또한 최근 중국을 방문한 일본의 중-일우호 의원연맹 방중단(단장 하야시 요시로(林義郞) 중의원 의원)이 전하는 중국 정부의 입장도 주목된다.

`중국의 한 고위 관리`는 방중단을 만난 자리에서 "연방제 보다 형식적인 형태가 될지 모르지만 남북통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고 주룽지(朱鎔基) 총리도 방중단에게 "한반도 긴장 완화를 환영하며 (장래를) 낙관하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일본의 도쿄신문은 "중국 정부가 최근의 남북 관계 진전을 통일을 위한 본격적인 긴장 완화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통령은 또 21일 회견에서 "내년 봄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남북이) `평양 합의`보다 한 발 더 나아가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할 것"이라고 말해 남북간 평화와 통일에 중요한 진전이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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