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진(jsjpol@yahoo.co.kr / 한국정치연구회 연구위원)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미국의 미사일방어망(MD) 추진 문제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인식,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는 탈냉전시대 주체적 행위자로서의 우리정부의 외교역량을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시금석이 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MD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대북정책을 비롯해서 동아시아전반의 평화를 위협하는 중대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MD 추진이 공식화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 상원의 여소야대화(與小野大化), 대다수 주변국들의 반대 등 미국이 처한 복잡한 대내외적 여건을 고려할 때, 결코 고정불변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라 할만큼 유동적이다.

그럼에도 부시 행정부 출범이래 초강대국 미국이 밀어부친다는 점 하나만으로 이미 기정사실화 되어, 순응하는 것이 능사라는 인식도 만연하고 있다. 문제는 새로운 탈냉전시대에 이같은 미국에 대한 계속적인 순응이 우리의 궁극적 국익에 부합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 이에 대한 우리의 문제점은 외부로부터 오는 측면 못지 않게 `국내적 냉전구조`라 일컬어질 만한 대내적인 차원의 문제도 충분히 검토돼야 마땅하다. 지난 한러정상회담에서 ABM조약을 둘러싼 논란처럼, 한미관계 못지 않게 탈냉전적 보편주의와 남북관계를 고려한 우리 정부 나름의 고민과 대응이 `현상적 실패`로 귀결되었을지 몰라도 `정당한 균형외교 시도`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어설픈 균형외교` 등으로 비판받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바 있다. 자국의 국익을 고려한 것인지 아니면 타국을 위한 것인지, 혹은 특정 정략을 위한 논란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유사한 예로 지난 2월 우리 군의 본격 감축도 아닌 인원을 일부 조정하는 문제가 논란거리가 된 바 있다. IMF 이후 사회전반의 구조조정 분위기 가운데서도, 인건비 10% 삭감을 위한 국방부의 구조조정 방침에 대해 내부 반발은 물론이고, 일부 정치권이 이를 정쟁의 도구로 사용했던 것이었다. 인건비 절감을 위한 인력감축은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도 국방혁신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데 말이다. 
 
구조적으로 볼 때, 동아시아에서의 냉전 약화과정은 일정부분 동맹체제의 변화, 재조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음은 역사의 필연이다. 냉전의 해체는 적대관계의 해체나 동맹체제의 재조정으로 인해 이러한 틀을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냉전해체 과정은 동맹관계내에서도 냉전시절과는 달리 이해관계의 차이가 빈번해질 수 있는 것이다. 한미관계에서 이견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그 관계가 일방적 종속관계가 아님을 보여주는 건강한 징표인 것이다.

흔히들 한반도는 "냉전의 유일한 고도"라는 평이 따랐었다. 과거 10여년을 돌이켜 보면, 이는 무엇보다도 지도자들이 역사적인 냉전약화가 가져다주는 자율적 외교 공간을 활용하고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리더쉽의 부재, 나아가 이러한 리더쉽을 뒷받침할만한 국내적 지지기반의 결핍에 기인했던 것이다. 최고지도자뿐만 아니라, 言論을 포함한 우리 시민사회 일반의 수준과도 결코 무관할 수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편협한 정략을 넘어서 성향과 의견이 다르더라도 안보문제에 있어 자국의 이해와 이득을 극대화한다는 원칙에서의 협력과 건설적인 논의가 요망되는 것이다. 나아가 최고지도자는 외교정책 목표를 위해 국내정치적 조건이나 국내여론 등을 다른 국가들과의 협상에서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른바 "양날의 외교"(double-edged diplomacy)가 절실한 시점인 것이다.

분명히 MD문제에 있어서도 비록 현상적으로는 실패로 귀결된다 하더라도, 한미 동맹관계의 지속이라는 틀내에서도 향후의 질적 변화를 잉태할 만한, 나름의 "제 목소리"를 낼만한 공간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거역할 수 없는 하나의 대세로서 탈냉전은 분명 일정한 자율적인 외교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냉전시절과는 달리 이제 나름의 적절한 대응여부도 중요한 관건이 되는 `세상`인 것이다. 보다 복합적이고 양안적(兩眼的)인 외교가 요구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의 지적처럼 우리가 자율적 공간을 넉넉히 마련하지 못할 때, 미국이 불합리하게 개입할 여지가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 시민사회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되새겨볼 만한 점이 충분히 있다. 전통적 안보 문제에 있어 시민사회의 자율적 담론의 중요성 못지 않게 국가주도의 이니셔티브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국가주도의 이니셔티브를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힘 또한 분명히 사회내 역학관계의 반영이기 때문이다(Nicos Poulantzas ; Bob Jessop 참조).

따라서 우리 시민사회내에서 이런 MD와 같은 중대과제가 보다 투명하게 공론화되어야 할 당위성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특히 전통적 의미의 협의의 안보개념이 아니라 광의의 `인간안보`(human security)라는 개념에 비추어 봤을 때는 더욱 그렇다.

결국 MD를 둘러싼 객관적 정세 변화 이상으로 중요한 점은 많은 외국의 역사적 사례가 보여주었듯이, 우리 시민사회내의 합리적 비판이 MD를 포함하여 정부차원의 대미관계 협상에서도 궁극적으로 "협상의 지렛대" 역할을 가능케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8.15 관련 행사에서 제기된 "한국 시민사회의 운동으로서 예컨대 미군기지 철수와 북미대화를 촉구하는 1천만 한국인의 서명을 부시 행정부에 전달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는 지적(美 "국방 및 군축연구소" 소장 Randall Forsberg)은 우리들에게 새삼 새로운 분발을 촉구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국가와 사회관계라는 틀에서 볼 때, MD 문제와 관련한 한국정부의 대응책은 미국이 추진한다는 측면에서 동아시아 안보틀 전반에 걸친 아주 복잡다기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민주화 시대` 우리의 시민사회가 "발전적 개입"을 해야 할 과제라는 점 또한 명백할 것이다. 국가의 공식 정책결정 수준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사회내의 합의점이나 역동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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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및 저서

중앙대 정외과 및 한국외대 대학원 정외과 졸업
중앙대 대학원 정외과 졸업(정치학박사)
99년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Post-Doc. 및 한겨레사회연구원 연구실장 역임
現 한국정치연구회 연구위원
 
『`계획`에서 시장으로: 북한체제변동의 정치경제』(한울출판사, 2000)
『21세기 남북한과 미국』(삼영사, 2001) 등 기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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