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활웅 (본사 상임고문, 재미 통일연구가)


지난달 25일 취임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북한의 비핵화가 선행돼야 남북 간 신뢰프로세스가 진행될 수 있다고 언명함으로써 무모하고 무책임했던 전임자의 대북 강경자세를 그대로 계승할 것 같은 우려를 자아냈었다.

그리고 신임 류길재 통일부장관도 11일 취임사에서 북한의 핵개발과 “안보적 도발”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에 대한 도전이자 우리 민족의 생존과 미래에 대한 도전으로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대통령의 뜻을 받든 장관의 발언이라 볼 수 있었다.

다소나마 근심을 덜어 주는 류 장관의 발언들

그러나 류 장관은 곧 이어 그런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드려야” 한다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하고 남북관계를 정상화하여 “행복한 통일시대”로 나아가고자 한다고 언명했는데 이는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특히 그는 “신뢰는 서로가 함께 쌓아가는 것”이라면서 7.4 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 등 과거에 합의한 약속은 존중되고 준수되어야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북 간에 대화가 있어야 하며 정치적상황과 상관없이 인도적 지원과 이산가족,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 등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북한이 약속을 존중하고 협력적 자세를 보이는 것이 신뢰형성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류 장관은 지난 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6자회담 재개, 미.중과의 대화협력 증진, 신뢰프로세스를 위한 사전작업으로서의 이산가족상봉과 비정치적 교류사업 추진 및 상설적인 남북대화창구의 개설 등을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5.24 조치”도 원칙적으로 해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오랫동안 통일문제를 연구해온 류 장관의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이와 같은 차분하고 합리적인 정책구상은 우리들의 근심을 다소나마 덜어 주고 있다. 그리고 류 장관의 그런 입장표명이 결코 대통령의 생각과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면 매우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박 대통령과 류 장관이 이구동성으로 요구하는 “북핵 무조건 폐기”는 두 분의 주장이 아무리 강경하고 집요하더라도 결코 그대로 관철될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북한은 기본적으로 남한이든 미국이든 어누 누구를 괴롭히거나 혹은 무엇을 얻어내려고 핵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체제전복위협에 맞서기 위한 유일한 방편으로 핵을 개발하고 유지하려고 하기 있기 때문이다. 즉 체제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존재하는 한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북한에 비춰진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

그러면 북한이 자기체제에 대한 절대적 위협으로 간주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미국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주한미군의 존재이다. 북한의 눈에 비춰진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

첫째, 미국은 1950년 한국에 내전이 일어나도 출병하지 않겠다고 공언해 놓고도 북한이 남침하자 곧 출병해 북한군을 격퇴하고 38선을 넘어 압록강변까지 쳐들어가 무자비한 폭격으로 북한전역을 구석기시대처럼 파괴해 버린 나라이다.

둘째, 미국은 1953년 휴전협정으로 3개월 내에 정치회담을 열어 외국군 철수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정치문제를 해결하기로 약속해 놓고도 3개월 이전에 주한미군 영구주둔을 위한 방위조약을 남한과 체결한 나라이다.

셋째, 미국은 휴전협정을 어기고 195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남한에 수많은 핵무기를 반입하여 북한을 위협한 나라이다.

넷째, 미국은 1994년 제네바 약정으로 북한에 경수로 2기를 2003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해 주기로 약속 했지만 이 핑계 저 핑계로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나라이다.

다섯째, 미국은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선언으로 북한으로부터 비핵화 약속을 받아 놓고도 바로 그 다음날 대북 금융제재조치(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을 통한)를 취해 9.19선언 이행을 방해한 나라이다. 물론 미국의 눈으로 볼 때 북한도 약속을 안 지키는 믿을 수 없는 나라이기는 마찬가지여서 서로의 입장은 피장파장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북핵 포기시키려면 북미간 평화체제 수립과 주한미군 철수해야

그런데 보다 더 핵심적인 문제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상호 안보위협의 문제가 있는데 이 문제는 상호불신 문제와 달라서 매우 비대칭적이라는 사실이다. 즉 미국에 대한 북한 위협은 매우 한정적인데 비해 북한에 주는 미국의 위협은 포괄적이며 절대적이며 치명적이다.

전 국무성 한국 담당관 “퀴노네스”는 이런 비대칭관계를 “미국은 북한체제를 완전 제거할 수 있지만 그러려면 미국이 손가락 하나 쯤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즉 북한은 적어도 미국의 손가락 하나는 해칠만한 수단을 확보하고 있어야만 미국의 체제전복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핵을 보유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생존의 본능이 있는 것처럼 모든 나라에게는 체제보존의 본능과 권리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미국으로부터 체제말소의 위협을 받고 있는 북한이 그의 체제수호의 최후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는 핵무기 개발 및 보유를 포기시키려면 지난 60년 동안 계속해서 북한에 가해지고 있는 미국의 대북위협의 제거, 보다 구체적으로는 북미간 평화체제 수립과 주한미군 철수를 실행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북한이 두렵다며 주한미군이 무기한으로 있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면서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라고 하는데 이는 무리한 주장이다. 주한미군을 내보낼 테니 북한은 핵을 포기하라고 해야 이치에 맞는다. 북한보다 인구나 경제력에서 월등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남한으로서 그것을 못한다면 자주독립국의 대접을 기대할 자격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