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 정세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3월 7일 북한의 <노동신문> 1면에는 “미제가 핵무기를 휘두르면 우리는 다종화된 우리 식의 정밀 핵타격 수단으로 서울만이 아니라 워싱턴까지 불바다로 만들 것”이라며 “제주도 한라산에 최고사령관기와 공화국기를 휘날리겠다는 것을 맹세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이러한 북한의 횡포한 언어는 5일의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에 뒤이은 것이며, 이와 함께 ‘남북간 불가침 선언 무효화’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무효화’ 등의 후속조치들이 연이어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언술들은 김정은 국방위 1위원장의 NLL(북방한계선)전선 시찰과 ‘전면전 준비’ 선언 및 11일의 판문점 차단과 현영철 북한군 총참모장의 판문점 시찰 등 실제적 조치로도 이어지고 있다.

전에 볼 수 없었던 이러한 북한의 횡포한 언어와 대응조치들은 과거 북한의 언술이나 행동과는 수준이 다르게 느껴진다. 적어도 과거에는 대남 위협언술에서 ‘핵선제공격’이나 ‘한라산 인공기’ 수준의 언어가 동원된 적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는 사실상 언술 상의 ‘레드라인’을 넘어선 것으로 이해된다.

1년치 국방예산 규모의 키리졸브합동훈련

북한이 이렇게 레드라인을 넘어선 횡포한 언사를 격하게 쏟아내고 있는 데는 물론 이유가 있다.

아마도 그 한 가지 이유는 북한이 가장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키리졸브한미합동군사훈련’의 내용과 성격 때문일 것이다. 한국군 20여만 명, 주한미군 3만여 명, 미군 1만 3천여 명의 인원에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와 F-22 스텔스 전투기까지 키리졸브훈련에 동원되는 미군의 전력은 우리나라 한 해 국방예산인 32조에 맞먹는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어마어마한 군사력이 동원되는 키리졸브훈련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방어훈련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북한이 전면전을 감행할 경우 휴전선을 넘어 반격하는 내용은 물론 북한 급변사태 시 핵무기 제거 등의 민감한 작전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훈련은 기본적으로 전시작전계획 5027을 적용한 훈련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1974년 처음 만들어진 작계 5027은 북한의 전면전 감행 시 한국군과 미군의 연합대응 및 북한전역에 대한 공격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전면전 상황에서는 한국군 독자전력과는 별도로 미군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지난 2000년에 발행된 『국방백서』에 따르면 전쟁 발발 90일 이내 미군 병력 69만 명과 160척의 해군 함정, 1600대의 항공기가 한반도에 배치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 또 작계 5027은 한국군 전체와 주한미군 및 미 태평양사령부까지 영향을 주는 작전계획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군사기밀로 지정돼 공개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키리졸브훈련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구체적으로 ‘평양 진주(進駐)’를 연습하는 셈이니, 아무리 방어훈련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면 북한이 극도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만한 충분한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핵보유와 정치적 현실주의

이런 실제적인 측면 외에 정치이론적 측면에서 북한의 최근 행동과 언술을 해석할 수도 있다.

정치적 현실주의를 과학으로 격상시켰다고 평가받는 케네스 월츠(Kenneth N. Waltz)는 미국이 주로 주장하는 ‘핵무기 보유로 인한 핵확산의 위협인식’은 과장된 것이며 오히려 핵 보유국화가 가져올 안정성이 제재 비용을 상쇄한다고 주장한다. 월츠는 “세계에는 현재 9-10개의 핵보유국이 있고, 그들이 핵을 보유한 결과로 각각의 경우에 평온이 찾아왔다”면서, 지역 핵보유국의 등장이 저강도 전쟁이나 재래식 분쟁은 증가시킬 수 있으나 핵 억제력(Nuclear deterrence)이 전면전으로의 확산을 방지함으로써 오히려 안정성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 선제타격과 서울-워싱턴 불바다 위협 발언은 바로 이런 핵보유의 역설을 미국과 한국에게 계속 상기시키려는 북한식의 언술이라 할 수 있다. 즉 북한은 ‘제재나 예방적 공격(preventive strike)으로는 핵보유를 막을 수 없으며 오히려 핵 보유국화가 지역 안정성을 가져올 것’이라는 월츠의 주장을 그들의 횡포한 언어로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며, 또 ‘핵선제타격’ 등의 언술은 “만약 전쟁이 절대적인 끝장으로 귀결될 것이 분명하다면, 그 마지막을 고려하지 않고, 첫 번째 단계의 대응을 할 수 없다”(클라우제비츠)의 오랜 교훈을 미국과 한국에 상기시키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횡포한 언술 이면에 존재하고 있는 북한의 핵정책과 대외전략은 철저히 국제정치적 현실주의 담론에 근거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북한이 미국과 한국에 대해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현실주의적 논리에 따라 행동하기를 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월츠가 말하는 “핵대치 국면에서, 어떤 국가도 그 마지막을 고려하지 않고 첫 번째 대응에 나설 수 없다”는 결론을 미국과 한국이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핵보유의 역설(Paradox)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현실주의적 기대는 실제로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선, 불행하게도 북한의 현실주의에 호응해야 할 한국과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사실상 ‘현실주의’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지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의 보수진영은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이후 북한변화와 조기 통일 추구라는 ‘이념지향적’ 방향으로 급속히 전화되었고 과거의 현실주의 기조로부터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미국 역시 부시정부 이래의 대북정책 기조는 북한체제의 비민주성을 문제삼는 근본주의적 접근법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적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미국 보수진영에서의 정치적 현실주의 전통의 실종은 북핵문제의 악순환이 지속되는 중요한 배경의 하나가 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실주의가 모든 현실에 적절한 결과를 산출해내는 만능의 담론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무엇보다 핵보유를 통해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북한의 전략은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위협의식의 확대와 함께 대중적인 대북인식 악화를 가져왔고, 그것은 보수진영 내에 존재하던 합리적 현실주의자들과 그 전통의 소멸을 초래하였다. 2012년의 한국 대선은 보수진영의 광범한 종북 및 안보공세 하에서 진행되었고, 북한의 3차 핵실험은 박근혜정부의 안보라인과 정책을 더욱더 비현실주의적 구성으로 이끌었다. 안보라인의 핵심들이 군부 출신으로 구성되고, “북한의 도발 시 도발 원점과 그 배후까지 사정없이 응징한다”는 심각한 군사위협적 발언에도 국민들의 안보 무관심은 확대되고 있다.

또한 이란의 핵 무장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대미의존을 더욱 강화시킨 것처럼, ‘핵 보유’를 축으로 한 북한의 전략은 한국정부의 대미의존과 미국 핵우산 및 MD(미사일방어)체계 편입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결국 평화체제를 외면하고 비현실적 대북제재에만 매달린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핵능력만 강화시키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전을 심각하게 악화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국제정치의 현실주의적 맥락에 충실했던 북한의 핵보유 전략과 그 담론 역시 한반도의 근본적인 안정과 평화를 촉진하기보다는 합리적 현실주의 전통의 소멸과 진보적인 통일기반의 약화만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환은 1958년 경북 포항에 태어나, 고려대 경제학과, 경남대 북한대학원(정치학 석사)을 거쳐 경남대 대학원 정치외교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이승환은 통일맞이 정책위원장, 열린정책연구원 정치아카데미 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이며, 또한 민화협 집행위원장,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지난 15년여에 걸쳐 남북 민간교류 활동을 전개해왔으며,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6.15남북공동행사 등을 진행해왔다.

그가 쓴 글로는 “문익환, 김일성 주석을 설득하다”(창작과비평, 통권 143호, 2009), “6월항쟁 20년, 남북 및 북미 관계의 변화와 통일담론”(창작과비평, 통권 137호, 2008), “2000년 이후 대북정책담론 연구”(북한대학원, 2008) 등이 있다.

개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lsh2k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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