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북한의 노력은 외교관계, 경제건설, 지방 주권기관 정비, 교육문화 사업의 확충 등으로 숨가쁘게 진행되었습니다. 북한은 이런 노력과 더불어 남북 정치역량을 통합하기 위한 작업에도 착수했습니다. 남북으로 나뉘어 있던 노동당과 민전을 통합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정치역량의 통합은 유일 주권국가임을 내세웠던 북한 정권으로서는 당연한 정치적 수순이었을 뿐 아니라 `국토완정`이라는 통일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도 현실적으로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남북노동당의 통합은 북한 정권 수립과 함께 이미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1948년 8월 정권 수립을 앞두고 연합중앙위원회가 구성돼 사실상 이때부터 상부는 통합되었으며, 10여개월 후인 1949년 6월 30일 북로당과 남로당은 정식으로 통합돼 조선노동당으로 출범하게 됩니다. 조선노동당의 출범으로 남북의 좌익 세력은 하나로 통일되었으며, 북한은 통일된 정치적 힘을 바탕으로 대남 관계, 즉 통일 문제에도 적극 대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남북노동당의 합당은 비공개리에 진행되었고, 1950년 7월까지는 대외적으로 합당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나온 전술적 고려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북노동당의 합당으로 출범한 조선노동당의 지도부 구성은 어떠했을까요?

위원장에 김일성, 부위원장에 박헌영이 선출되었고, 새로 신설된 당 비서에는 허가이(제1비서), 이승엽(제2비서), 김삼룡(제3비서)이 뽑혔습니다. 당의 핵심인 정치위원에는 김일성·박헌영·김책·박일우·허가이·이승엽·김삼룡·김두봉·허헌(뒤에 박정애)이 선출되었습니다. 그리고 9명의 정치위원에 최창익과 김열을 포함시켜 조직위원회를 구성하게 됩니다.

지도부 구성을 보면 전체적인 판도에서는 북로당이 남로당보다 약간 앞서 있지만, 각 파벌로 보면 항일유격대 출신은 김일성 외에 김책밖에 없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김일성의 입지가 약화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결국 합당 당시의 조선노동당 정치구조는 각 계파들의 `정치연합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지도력도 계파와 김일성·박헌영·허가이 등에게 분산된 집단적 지도체제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남북노동당의 합당은 크게 보아 북로당이 남로당을 흡수통합한 성격이 강했습니다. 1949년 6월 합당 당시 북로당은 북한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었던 반면, 남로당 조직은 타격을 입어 남한에서 궤멸 상태와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남북노동당의 합당으로 남북의 공산주의 정치역량은 하나로 통합되었지만, 이것은 한편으로는 해방공간에서 형성되었던 남한 혁명 세력의 몰락과 혁명운동의 쇠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동시에 조선노동당은 합당이 성사되기는 했지만, 당 내부에 유일적 지도가 실현되지 못하는 파벌연합적 성격이 존재함으로써 갈등 요인이 잠복돼 있었습니다. 그 갈등의 가장 큰 축은 북로당의 김일성과 남로당의 박헌영 사이에 있었지만, 작게는 파벌 사이에도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조선노동당은 출범에서부터 종파문제와 권력투쟁의 개연성을 안고 있었던 셈입니다.

남북노동당의 통합으로 남한 혁명과 통일문제에 대한 조선노동당의 유일적 지도가 가능하게 되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는 없었습니다. 외곽 조직과 대중을 포섭하는 통일전선조직인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의 통합도 당연히 함께 진행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1949년 6월 26일 북조선 민전과 남조선 민전을 하나로 통합해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이 결성됩니다. 여기에는 남북한의 70여 개 정당·사회단체들이 참가하였습니다.

조국전선은 남북에 존재하던 모든 정치적 역량을 하나로 통합해 민족통일전선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겨냥한 것은 사실상 남한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조국전선은 그 결성 직후인 6월 말 남북한 총선거에 의한 평화통일 방안을 주장했으며, 1950년 5월 7일에는 남북간의 최고 입법기관 준비 선거를 위해 남북 제정당·사회단체협의회를 개최하자고 제의하기도 하는 등 남한을 향해 계속해서 선전 공세를 펼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조국전선은 남한에 대한 평화통일 공세를 주요한 활동 방향으로 정해놓았기 때문에 지도부 구성에서 실질적인 활동을 담당하는 상무위원회는 대부분 남로당 출신이 차지하게 됩니다. 이로써 1948년∼1949년 사이에 북한은 정권의 수립과 인민경제개발계획의 수립, 내부 정비, 남북 노동당과 남북 민전의 통합 등을 통해 북한 체제 정비를 일단락 짓게 됩니다.

북한은 이러한 성과들을 바탕으로 사회주의 건설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한편, 새로운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적극 나서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통일문제의 해결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전쟁을 의미했습니다. 통일방안을 두고 남과 북은 이미 `북진통일론`과 `국토완정론`이라는 화해할 수 없는 대립점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급진적 해결방안은 찾는다면 그것은 무력에 의한 것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