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환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지난 1월 초에 북한의 3차 핵실험 강행 첩보가 입수됐다는 뉴스가 나오자마자 누군가가 제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제 대답은 “북한이 자신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확정되기도 전에 굳이 핵실험을 강행할 이유가 있을까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요? 탈냉전 이후 북․미관계를 보면 북한이 어떤 행위를 한 뒤 미국의 대응 태도나 수위를 지켜보고 나서야 그에 맞춰 또 다른 행위를 한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경우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수준의 법칙은 없기 때문에 항상 예외가 있기 마련입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갓 출범했던 2009년에 특히 그랬습니다. 북한은 그해 연초부터 연말까지 장거리 로켓 발사, 핵실험, 우라늄 농축 선언 등 정말 미국이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쁘게 움직였었는데, 돌이켜보면 2008년 쓰러졌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복귀한 뒤 북․미 관계정상화라는 필생의 목표를 향해 조금은 다급하게 달려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약관의 후계자가 북한의 대미 외교를 이끌고 있는 마당에 2009년 같은 ‘속도전’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는 게 평소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랬기에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불과 한 달여 만에 핵실험을 하려 한다는 첩보 역시 신빙성 있게 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1월 22일(한국 시각 23일 새벽)에 대북제재 대상을 추가하는 결의안 2087호를 통과시킨 직후 북한이 “높은 수준의 핵시험”까지 운운하며 강하게 반발할 때도, 저는 “앞으로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대화는 있어도”라는 북한의 주장에 주목하며 3차 핵실험 전에 북.미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탈냉전 이후 북․미가 겉으로는 온갖 험구를 쏟아내면서도 물밑에서는 양자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협상을 성과적으로 벌여 왔던 경우가 실제로 많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수많은 근거들을 제시하며 현재 북한이 미국과의 전면전쟁까지 염두에 두고 움직이고 있다는 정세 분석을 내놓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미국과의 전면전쟁까지 염두에 둔 조선노동당이 세포비서대회를 소집해(1월 28~29일) “우주를 정복한 그 정신, 그 기백으로 경제건설과 인민생활에서 결정적 전환을 이룩”하자고 호소하고, 이러한 목표 달성의 기반인 “당과 인민의 일심단결”을 지키기 위해 “당에서 세도와 관료주의”를 척결하자고 강조하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지난 해 말부터 북한 관영매체에서는 ‘민심’을 헤아리자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고 심지어 2013년 신년사에서도 ‘민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정도로 부쩍 민생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런 북한 내 분위기와 전면전쟁 준비가 쉽게 연결되는지요? 2009년 6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874호 채택 직후 평양시를 시작으로 북한 주요 도시에서 진행됐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규탄 군중대회도 올해는 감감무소식인데 이러한 차이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한마디로 제 입장은 북.미 전면전쟁까지 염두에 둔 정세 전망에 아직까지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때마침 북한 주간지 『통일신보』가 2월 8일자 기사에서 “최근 공화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조작한 제재결의를 배격하고 그에 따른 국가적 중대조치를 취하겠다고 내외에 선포했다”며 “미국과 적대세력은 공화국이 제3차 핵실험을 한다고 지레짐작하면서 그것이 현실화되는 경우 선제타격까지 해야 한다고 입방아를 찧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합니다. 비록 외무성, 국방위원회 같은 북한 국가기구의 입장 발표는 아니었지만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월 27일 ‘국가안전 및 대외부문 일꾼협의회’에서 결심했다는 ‘국가적 중대조치’를 ‘핵실험’과 거의 동일시해왔던 국제사회 여론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벌써부터 한국 정부가 북한의 ‘기만전술’, ‘연막전술’로 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던데,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을 리 없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이처럼 북한이 여지를 보일 때 어떤 경로로든 대화를 시도해보는 게 좀 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까요? 만약 현재 남북 간에도 ‘물밑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면 이참에 북한의 ‘진의’를 파악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반도 정세는 지금 중요한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2월에도 북.미 물밑협상의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못한 채 3월 초로 예정된 한.미합동군사훈련이 계획대로 실행된다면 북한이 공언한 ‘국가적 중대조치’의 실체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 전에라도 북한이 2009년처럼 ‘속도전’을 할 수도 있겠지요. 예상되는 2월 중 핵실험 날짜는 벌써 한국 언론사들이 몇 개 꼽아 놓았더군요.

반대로 2월 안에 북.미가 양자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낭보가 들려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대북협상파를 자임하는 존 케리 국무장관이 2월 들어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 국방예산을 삭감해야 하는 미국 사정 때문에 3월 초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중지될 수도 있다는 점 등도 한반도 정세 분석을 할 때 당분간 빼놓지 말아야 할 변수입니다. 여기에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까지 더해진다면 북.미 대화 가능성은 훨씬 더 높아질 것입니다.

재개될 북.미 대화가 성과를 내며 순항할 것인지,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다 끝날 것인지는 확실히 예측할 수 없지만, 그래도 대화 없이 으르렁거리는 북.미를 바라보며 하루하루 불안에 떨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북․미 대화가 언제나 절실한 바람일 것입니다. 더 이상의 긴장 고조 없이 북.미 대화가 재개될 수도 있다는 예측이 이번만큼은 현실이 되기를 바랍니다.


동국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 전에는 민주노동당 통일외교 정책연구원,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위원 등으로 일해 왔다. 이 밖에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경실련 통일협회,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같은 통일 관련 단체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동북아시아 열국지 1: 북․미 핵공방의 기원과 전개』(2012), 『코리언의 생활문화』(2012, 공저), 『문화분단: 남한의 개인주의와 북한의 집단주의』(2012, 공저), 『구술사로 읽는 한국전쟁』(2011, 공저), 『북한위기론: 신화와 냉소를 넘어』(2010), 『민족과 통일』(2010, 공저), 『시련과 발돋움의 남북현대사』(2009, 공저) 등이 있다.

현재 월간『민족21』에 ‘김진환의 동북아시아 열국지’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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