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


제1차 핵 위기가 불거진 1993년 이후 숨 가쁘게 달려 온 지난 20년의 북한 핵문제가 3차 핵실험을 앞두고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 보수언론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북한 정권을 설득해서 핵을 포기하게 만들기는 어렵다”고 말하며, 한반도 정세에 대한 비관적 인식을 드러냈다. 한편으로는 북한에 대해 외교적 노력이나 경제, 군사적 제재가 실효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더욱 강력한 제재”를 말하는 논리적 모순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중이다. 제재가 소용이 없지만 안 할 수도 없으니 더 해야 한다는 궁색한 논법이다. 그만큼 국제사회가 북한 핵실험에 대해 충격과 무력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보수, 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어떤 정책도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자학적인 인식이다. 보수정권의 ‘기다리는 전략’이나 진보정권의 ‘퍼 주는 전략’ 어느 것도 북한에 먹히지 않았다고 지레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한반도의 안보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북미 관계정상화나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은 착수조차 되지 않았다. 9.19 공동성명 채택 당시에 국제사회는 물론 우리 사회 내부의 반발조차 무릅쓰고 6자회담에서 평화체제를 논의한다고 하였지만 그런 회의는 열린 적도 없고, 시작도 하기 전에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6자회담 무용론을 퍼뜨렸다. 북한 정권이 설득으로 안 된다고 말하지만 설득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접촉조차 없이 5년을 허비하자, 이제는 북한이 “앞으로 비핵화를 위한 대화는 없다”며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덥썩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한반도 정세가 된 것인데 이제 와서 이 대통령이 무엇이 개탄스럽다는 것인지, 그 속내를 알 길이 없다.

이전의 6자회담 시대에는 그래도 북한의 원자로 가동을 불능화하여 북이 더 이상의 플루토늄 추출이 불가능하도록 하는 나름대로의 성과도 있었다. 그 때까지 고농축 우라늄 문제는 단지 하나의 가능성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명박 정부에서 실제적인 문제로 전환되었는데, 이는 북한 핵에 대한 무관심과 방치의 결과이기도 하다. 핵무기를 제조하는 데 핵물질의 임계질량 대비 효과는 우라늄보다 플루토늄이 더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건 그런대로 성과를 거둔 셈이다. 여기서 아직도 6자회담의 효과는 작동 중이라는 점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게다가 우라늄 농축은 고속으로 회전하는 원심분리기와 이를 완전 가동하는 데 양질의 전력이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 북한의 전력사정과 기술수준이 핵무기의 대량생산에 진입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 능력을 냉철히 평가하고 보다 높은 수준의 대북정책을 고심하는 것이 정부의 마땅한 자세일 터이나 지레 비관적 전망을 퍼뜨리는 그 무책임성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설득으로 생각을 바꾸지 못한 정권은 북한일 수도 있으나 이명박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둘째, 북한 핵 실험으로 한반도 정세에 이는 격랑을 헤치고 나갈 어떤 정치적 리더십도 실종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 실험이 예정된 위기의 조짐에도 박 당선자가 향후 한반도 정세를 우리가 어떻게 주도하고 관리할 것인지, 말 한마디도 없다. 역사적으로 한반도 정세를 우리가 주도하지 못하면 항상 주변국에 의해 주도 당했다. 집권 초에 곧바로 한반도 정세 변화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준비하지 못하면 주변국은 그 빈틈으로 들어와 한반도 정세를 규정할 것이다. 그런데 인수위는 격랑으로 치달을 한반도 정세도 마치 남의 일처럼 여기는 것 같다. 비밀, 침묵,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당선자와 인수위의 기이한 행태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3차 핵실험이 예고되자 박 당선자가 “인수위로부터 북한 핵 문제를 보고받았다”고 공개한 것이 지금껏 차기 정치지도자가 한 일의 전부이고, 나머지는 미국으로 보낸 정책협의대표들에게 물어보아야 그나마 다음 행보를 짐작케 할 뿐이다.

그동안 입만 열면 안보문제를 말해왔고, 신뢰를 내세운 곧 출범할 박근혜 정부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동북아시아의 판이 변하고 있다”던 박 당선자 머리속에는 한반도의 어떤 미래가 펼쳐지고 있는가. 북한에 대해 기다리지도 않고 퍼주지도 않겠다면 무얼 하겠다는 것인지, 국민들에게, 주변국에게 말이라도 하라. 임기 끝나는 순간까지 비관주의를 확산시키는 현 정부의 뒤만 쫓아갈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긍정과 낙관의 공간을 창출할 것인지, 그 의지를 밝히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14~16대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 보좌관
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방전문위원
전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전 국무총리실 산하 비상기획위원회 혁신기획관
<디펜스21+>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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