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


유엔 안보리가 지난 1월 22일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결의 2087호를 채택했다. 북한이 작년 12월에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것에 대한 대응조치이다. 북한은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외무성 성명, 국방위원회 성명,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을 연이어 발표하고 이어서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이 주관하는 ‘국가안전 및 대외부문 일꾼협의회’ 개최 사실을 보도했다.

북한의 대응조치는 매우 잘 짜여진 매뉴얼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작년 12월에 장거리로켓을 발사한 이후에 국제사회가 이를 미사일 발사라고 비판한 이후부터 대응 매뉴얼을 준비해온 듯하다.

9.19 공동성명 부정한 외무성 성명

유엔결의 직후 1월 23일, 북한은 신속하게 외무성 성명을 발표했다. 유엔결의를 추진한 국제사회에 대한 반박을 위해 해당기관인 외무성의 성명으로 대응한 것이다. 이번 외무성 성명은 그동안 북한 외무성이 유엔결의에 반박했던 것에 비해 한결 강경하다.

외무성 성명에는 △실용위성 계속 발사, △6자회담과 9.19공동성명 사멸, △한반도 비핵화 종말, △핵억제력을 포함한 자위적인 군사력을 확대하는 물리적 대응조치 등 국제사회와 정면 충돌을 불사하겠다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북핵문제가 표류할 때에도 6자회담 참가국가들 사이에는 ‘6자회담과 9.19 공동성명 이행’이라는 합의가 있었다. 어떤 나라도 이를 부정하지 못하는 권위가 있었다. 이 합의가 관련국 사이에서 북핵문제를 풀어가는 데 북극성과 같은 역할을 했다. 북한이 이번 외무성 성명에서 이를 부정해버린 것이다.

북한 국방위원회가 미국과 전면대결 선포

외무성 성명 발표 다음날인 1월 24일에는 국방위원회 성명을 발표하였다. 국방위원회는 북한의 최고 군사지도기관이다. 국방위원회 성명은 국가의 최고군사기관의 표현으로서는 시대착오적이라할 만큼 격렬하여 경악을 금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동안 북한은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을 비판하면서도 북미대화를 통해서 북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국방위원회 성명을 통해서 미국과 전면대결을 선포하였다. 특히 “(북한이 앞으로) 계속 발사하게 될 여러가지 위성과 장거리로케트도 우리가 진행할 높은 수준의 핵시험도 우리 인민의 철천지 원쑤인 미국을 겨냥하게 된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고 하여 북한의 국가정책이 미국과 대결에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공식 선언하였다. “미국과는 말로써가 아니라 오직 총대로 결판내야 한다”는 표현은 북한이 외교적 수사로써 사용했던 공갈(empty threat)의 차원을 뛰어 넘는 것이다.

전쟁 예방이 아닌 대남 통일대전 선포한 조평통

국방위 성명 발표 다음날인 25일에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을 발표했다. 외무성 성명과 국방위 성명에 이어 조평통 성명을 발표한 것은 정세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한 수순이다. 외무성 성명이 유엔결의에 참여한 국제사회를 겨냥한 것이고, 국방위 성명이 유엔결의의 책임을 미국에 묻는 성격이었다면, 조평통 성명은 대남 성명인 것이다.

조평통 성명에서 △ 1992년에 남북이 채택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전면 무효화 선포 △ 유엔 제재에 직접적으로 가담하는 경우 강력한 물리적 대응조치 선포, △ 침략전쟁에는 정의의 조국통일대전으로 대답 등을 주장하였다.

조평통 성명은 남북관계의 단절을 선언한 것이다. 물론 비핵화공동선언은 사문화된 지 오래다. 그렇지만 이 정신을 유지하겠다는 자세가 한반도 비핵화의 가느다란 동력으로 작용해온 것도 사실이다. 비핵화공동선언은 남한이 재처리시설과 농축시설을 보유할 수 없게 하는 명분으로 작용해왔던 것이다.

침략전쟁을 가정하고 통일대전을 수행하겠다는 것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침략전쟁을 가정하기 이전에 침략전쟁을 예방하겠다는 것이 민족의 화해와 평화에 대한 응답인 것이다.

북한이 한국이 유엔제재에 동참할 경우 강력한 물리적 대응조치를 하겠다고 선포한 것은 이번 유엔결의가 과거보다 한결 강경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동참시 북한이 우려하는 조항은 공해상 의심선박에 대한 검색 강화 기준 마련 추진이다. 이미 PSI(대량파괴무기확산방지구상)에 의해서 북한선박에 대한 공해상의 검색훈련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북한의 추가 도발시 안보리가 중대한 조치를 취하도록 되어 있다. 대북수출통제 역시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는 품목까지 확대할 수 있는 이른바 ‘catch-all’ 성격으로 강화되었다.

실제적이고 강도 높은 국가적 중대 조치?

북한의 <노동신문>은 27일 보도를 통해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실제적이며 강도 높은 국가적 중대조치를 취할 결심”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김 제1위원장은 ‘국가안전 및 대외부문 일꾼협의회’을 소집해서 이같이 표명하고 해당부문 일꾼들에게 “구체적인 과업을 제시‘했다고 한다.

‘국가안전 및 대외부문 일꾼협의회’는 생소한 기관이다. 미국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나 중국의 주요한 외교사안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실무기구인 ‘중앙외사 영도소조’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NSC도 대통령이 의장이고 중국의 ‘중앙외사 영도소조’도 국가주석이 조장이다. 북한이 생소한 기관의 회의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회의 사진까지 공개했다. 상황의 긴박성을 내외에 표명하려는 것으로 읽힌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취하기로 했다는 ‘중대결심’과 해당 부문 일꾼들에게 제시했다는 ‘구체적 과업’이 유엔안보리 결의 채택 이후 북한이 취할 구체적인 대응조치가 될 것이다.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지 않거나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새로운 행동조치가 아니다. 기존의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효과를 내게 되는 것이다. 대화단절 상태를 유지하는 수준인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행동조치를 취하게 될 경우 새로운 상황을 조성하게 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핵실험이 꼽고 있다. 실제로 핵실험이 진행될 가능성은 매우 높아졌다.

두 차례의 핵실험 평가

그동안 북한은 두 차례 핵실험을 했다. 2006년 7월 미사일 발사 이후 10월에 1차 핵실험, 2009년 4월 장거리로켓 발사 이후 2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북한이 두 차례 실시한 핵실험은 모두 미사일 발사와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에 진행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두 차례의 핵실험에는 정세를 전환시키기 위한 북한의 의도가 담겨 있었다.

1차 핵실험의 경우 북한의 의도는 성공했다. 비록 유엔안보리 결의 1718이 채택되었지만, 부시 행정부는 곧바로 입장을 바꾸었다. 그토록 거부했던 북미 직접 접촉을 시작했고, 마침내 다음해인 2007년에 2.13 합의를 채택하여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실행로드맵을 만들었다.

하지만 2차 핵실험의 경우 북한의 의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북한은 오마바 정부 출범 직후인 2009년 4월에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다. 최대한 국제법을 준수하려는 노력까지 곁들였다. 그러나 북한의 로켓 발사는 오바마 정부가 시험에 드는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대담하게 대북정책을 취하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공약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리고 북한은 핵실험을 하였다. 북한의 핵능력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겠지만 북한이 입은 정치외교적 손실은 북한의 정치외교적 협상력을 더욱 약하게 만들었다.

3차 핵실험 가능성

북한이 작년 4월에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고도 핵실험을 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김일성 탄생 100돌을 자축하기 위한 용도였기 때문이다. 정세를 전환시키기 위한 의도가 있지 않았다. 오히려 로켓발사로 정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게 미국과 비밀접촉을 유지했다.

작년 12월 북한의 장거리 발사와 이에 따른 안보리 결의에 대해 북한은 강력하게 개입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핵실험을 비롯한 초강경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상황진행을 잘게 나누어서 매 단계마다 국면전환에 활용하여 효과를 높이는 이른바 살라미 전술을 사용해왔다. 이번에도 이런 전술을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이런 전술이 사용되는 것은 북한이 공식적으로 핵실험 계획을 발표하면 분명해질 것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두차례의 핵실험 때와는 달리 아직 공식적으로 핵실험 계획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만약 북한이 핵실험 계획을 발표한 다면 △ 핵실험 계획 추상적 선포 → △구체적 핵실험 계획 발표 → △핵실험 방식의 차별화 → △새로운 핵실험 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번 안보리 결의안 2087은 지난번 두 차례의 안보리 결의에 비해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두 번의 결의 모두 북한이 핵실험을 한 직후에 채택되었다. 이번에는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이후에 채택된 것이다.

중국도 위성발사를 제재하는 결의안에 찬성

북한은 로켓발사가 우주조약에 따른 북한의 주권사항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북한의 로켓발사가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조치를 금지한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갈등사항이 될 것이다. 북한이 이미 여러 차례 실용위성 발사를 비롯한 우주의 평화적 이용권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제 한반도는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어갈 조짐이다. 북한은 핵무기 성능 향상 실험을 계속 추진할 것이다. 핵탄두의 소형화와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다. 북한은 위성 발사를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권리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과거에 여러 차례 위성기술이 군사용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더구나 이번에 북한은 핵실험과 위성발사가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밝혔다. 이는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둔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북한의 이런 주장이 국제사회와 아무런 공감이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여론은 북한의 공갈외교에 진저리친다. 미국인들의 축제인 독립기념일에 미사일을 쏘는 북한의 행위를 비문명적인 것으로 바라본다.

중국에서도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중국이 북한에 지원하는 식량과 중유를 중단해야 한다는 여론이 생기고 있다. 중국은 일방적으로 북한 편만 들 경우에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돌출행위를 옹호하는 세력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국제사회의 각종 견제와 의혹에 시달리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변방 안정을 원하는 중국이 북한과 관계를 쉽게 단절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를 제재하는 결의에 참가한 것만으로도 시진핑 체제의 북중관계가 일정한 조정기를 거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새로운 협상수단 개발로 ‘강대 강’의 대결구도를 깨야

북한은 국제사회의 흐름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셈법으로 시나리오를 만들고 실행에 옮기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스스로 논리적인 정당성을 강변하지만 북한이 원하는 협상에 나서야할 국제사회는 북한의 주장을 외골수로만 파악하고 있다.

북한이 자신들만의 논리틀에서 벗어나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대화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북한의 말대로 남는 것은 전면대결이나 통일대전 밖에 없다. 전면대결이나 통일대전은 북한 인민들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 5년 동안 긴장고조와 제재 그리고 대화의 악순환이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대화가 단절되고 제재와 압력을 가하는 동안 북한의 핵능력만 향상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전면대결이나 통일대전을 원하지 않는다면 북한과 미국은 새로운 협상수단을 개발해야 한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평양을 방문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1988 평화연구소 연구원
1995 민족회의 정책실장, 통일맞이 정책실장
1998 민화협 정책실장
2003 청와대 NSC 정책조정실 국장
2006 민주평통 전문위원
2009 존스합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 방문연구원
2012 통일맞이 정책실장, 한반도 평화포럼 정책연구팀장


(수정,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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