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현 (<민족21> 대표, 국민대 겸임교수)


2012년 남과 북, 한반도 주변 4강에 모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6개국의 새 리더십이 확정됨으로써 한반도 정세 새판짜기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북한의 위성(로켓)발사에 대한 각 국의 대응이 동북아 정세를 새로 짜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존 케리 신임 국무장관을 중심으로 한 오바마 2기 행정부가 ‘전략적 관리’에서 ‘전략적 개입’으로 대북정책을 전환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월 말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가 현재보다는 탄력적인 대북정책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로켓 발사에 따른 ‘제재국면’이 종료되면 한반도 정세가 점진적으로 해빙기로 접어들 것이란 희망적 관측도 나온다.

남북관계 개선 속도와 폭이 핵심변수

물론 이 전환의 속도와 폭은 남북관계의 개선과 맞물려 있다. 한 축은 박근혜 정부의 남북대화 복원 조치이며 다른 축은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다. “대화에 전제조건이 없다”면서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하자는 것도 무책임하다”고 밝힌 박근혜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대북접근법을 취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경우에 따라서는 남북이 대화재개를 놓고 장기간 기싸움을 할 수도 있다. 금강산 관광 재개문제나 5.24 조치 해체 등 남북 간에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경색된 남북관계의 개선 속도가 더디게 진행될 경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위태롭게 되고, 자칫 동북아 정세의 변화에서 소외될 수도 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이것이 한반도비핵화 및 평화협정 논의와 맞물려 선순환구조를 만들 수 있게 될지 남과 북의 선택이 주목되는 이유다.

박근혜 정부는 정권의 속성상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을 중시하고 신중한 대북접근을 견지하는 보수색채의 외교정책과 대북정책을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다수다. 다만 이명박 정부와는 어느 정도 차별성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당선인은 대북정책의 기본방향으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정착을 제시했다. 남북 간 신뢰와 균형, 북의 비핵화가 3대 키워드다. 남북 간에 신뢰가 쌓이고 북한의 비핵화에 진전이 이뤄지면 국제사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경제협력 방안으로 ‘비전 코리아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비전 코리아 프로젝트’ 세부 내용은 북의 자생력 제고를 위한 전력.교통.통신 분야 등에 대한 인프라 구축, 국제금융기구 가입 및 국제투자 유치 지원, 라선 특구 등 북의 경제특구에 대한 진출 모색, 남북중.남북러 협력을 통한 3각 협력 강화 등이다. 또한 정치적 상황과 구분해 인도적 문제의 지속적 해결을 추구키로 하고 대북지원의 투명성 제고, 영유아 등 취약계층 우선 지원, 이산가족 문제의 실질적 성과 도출 등을 약속했다. 신뢰 형성을 위해 남북 간 대화에 전제조건을 달지 않고 남북관계에 필요하다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대체로 무난한 정책방향이다. 그러나 박근혜 당선인은 7.4공동성명과 6.15선언, 10.4선언에 담긴 평화와 상호존중의 정신을 존중하면서도 세부 사항은 현실에 맞게 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북핵문제의 해결 수단으로는 억지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이뤄지는 북핵협상의 다각화, 남북 간 실질적 협의 추진, 한.미.중 3자 전략대화 가동 등을 제시했다. 북한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국군포로와 납북자 귀환 역점 추진, 북한 인권법 제정 등도 약속했다. 이명박 정부와 큰 차이가 없다.

전임 정부와 비교할 때 차별성과 연속성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제시된 대북정책 공약을 보면 이명박 정부와는 차별성을 보이고 있지만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 요소가 혼재해 돼 있어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둘지 가늠하기 어렵다. 역시 관건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첫 번째 화두로 무엇을 삼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이와 관련해 새 정부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당시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07년 조직된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원회는 북측과 물밑 접촉을 통해 북한 특사의 대통령 취임식 파견을 협의했다. 그러나 최종 조율도 되기 전에 이 사실을 인수위 관계자가 언론에 공개하는 바람에 무산돼 버렸다. 5년 간 남북관계 악화의 출발점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통일안보 분야 책임자들의 잇단 강경 발언도 문제였다. 2008년 3월 하순에 취임한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 사업을 확대하기 힘들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군 고위관계자는 대북 선제공격론을 폈다. 얼마 후 북측은 남북당국 간 대화 중단을 발표하고, 4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함으로써 남북관계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6월 말이 돼서야 ‘상생.공영의 대북정책’이 발표됐지만 이때는 이미 남북 간 신뢰가 무너지고 있을 때였다.

박근혜 정부도 대선공약을 통해 대북정책의 방향은 제시했지만, 구체화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남북대화 복원을 시도하려면 대북정책의 기본방향이 확정될 때까지 남북관계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대화의 첫 단추를 잘 꿰야 한다. 북한은 남측에서 인수위원회가 구성되면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간 실무접촉을 갖자는 입장이고, 이러한 입장은 우리 당국에도 간접 전달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은 이 접촉을 통해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박근혜 정부의 기본입장을 타진하고, 향후 5년 간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기본틀을 협의하길 원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 복원 의지가 있다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 및 조정, 남북정상회담의 방향 등 굵직한 현안들을 이 접촉에서 충분한 협의를 통해 잘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이산가족 상봉을 남북간 첫 사업으로 할지, 유라시아 경제협력을 위한 한반도종단철도(TKR)-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결 및 가스관 연결 사업을 먼저 할 지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세워야 한다.

남북간 실무접촉이 성공적으로 이뤄 질 경우 그 내용을 2월 취임사와 공식 대북정책에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럴 경우 상반기 내에 남북간 특사교환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야 남북 실무접촉→특사 교환→첫 남북사업(행사)→당국간 대화 복원으로 이어지는 남북간 신뢰 회복의 첫 단계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

둘째로 남북관계와 비핵화문제를 분리해 남북대화와 비핵화 6자회담, 양자 또는 다자간 평화협정 논의가 선순환구조를 갖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미국과 협의해 지난해 2월에 있었던 북미간 ‘2.29합의’가 복원될 수 있도록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한다. 북핵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할 없는 문제로 6자회담을 통해 북.미관계 정상화과정과 맞물려 추진돼야 한다는 일관된 정책기조를 확립해야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처럼 ‘북 붕괴론’, ‘북 체제위기론’에 현혹돼 단기간에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대북정책을 펴게 되면 남북관계를 파탄시킨 이전 정부의 전철을 다시 밝을 수밖에 없다.

대화의 첫 단추를 잘 꿰야 한다

남북관계에 신뢰가 쌓이고 여기에 북의 비핵화가 진전되면 국제사회까지 참여하는 대규모 경제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기본적으로 남북관계의 급격한 변화보다는 단계적 접근으로 해석된다. 또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해결을 연계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선(先) 북핵문제 해결, 후(後) 남북대화’ 노선은 이미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실패한 것이 확인됐다. 남북관계와 북핵문제는 동시 병행으로, 또는 ‘정책적 분리와 전략적 연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새 정부는 실패한 정책을 답습할 것이 아니라 남북대화와 6자회담 재개를 통해 새롭게 대화의 틀을 마련한 후 북한의 반응에 따라 정책 대응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위성 발사에 대해 대화 없이 강경대응하고, 이에 반발해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할 경우 박근혜 정부 또한 남북관계에서 성과를 내기가 어렵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셋째로 대북접촉과 남북 특사 교환이 지체될 경우 대북 인도적 지원, 이산가족 상봉, 사회문화분야의 교류 활성화 등을 통해 신뢰 형성을 위한 기초를 놓아 대화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과거 정부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가장 반발이 적은 이산가족 상봉이나 대북 인도적 지원조차 집권 초기에 성사, 이행하지 못한다면 다른 남북 협력사업 추진은 더욱 어려워진다.

남과 북 모두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공동 자원개발을 추진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특구와 자원개발을 우선적으로 남측과 진행할 의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남남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남북이 공동 이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자는 것이다.

물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북한의 대남정책, 미국의 대북정책 등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남북대화가 복원되고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북한의 호응과 미국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1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은 <공개질문장>을 통해 박근혜 후보에게 대북정책에 대한 기본 입장과 남북관계 개선을 어떻게 해나갈지 명확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일단 북한은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하며 비공개 남북 접촉을 통해 박근혜 당선인의 정책 방향을 평가할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따라서 북한은 2013년 신년 공동사설에서는 원칙적인 입장만 표명하고, 박근혜 정부의 구체적 대북정책이 나올 때까지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북한도 올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서 큰 변화가 있기를 기대하고 있고, 남측의 대북정책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온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해 12월 25일 한반도 정세에 대해 “표면상의 현상 유지는 오래가지 못하고 2013년에는 정세 변화가 가속화될 수 있다”며 “조선(북)의 강성국가 건설 노정도는 나라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을 목표로 상정하고 있는 것만큼 대외관계에서는 대립과 갈등이 아니라 협조와 상생을 추구하게 된다”라고 밝혔다. 북한은 오바마 대통령 재선 직후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면 언제든 화답할 준비가 돼 있다는 대화의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결국 북한의 입장은 남과 미국에게 집권 초기에 ‘통큰 대화’를 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다만 북한의 위성 발사에 따른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계속 추진되고, 서부전선 최전방 애기봉의 성탄절 등탑 점등 행사 등 북한을 자극하는 남측의 행동이 계속될 경우 한반도 정세에 냉기류가 강해져 박근혜 정부의 초기 남북관계가 갈등국면으로 빠져들 수 있다. 특히 북한이 지속적으로 위성 발사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 남북대화와 비핵화 6자회담, 양자 또는 다자간 평화협정 논의를 선순환구조를 조기에 정착시키지 못할 경우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구상과 마찬가지로 성과를 내기는 어려워 질 것이다.

조심스럽게 전망을 해보자면 적어도 대북정책, 대중외교에서는 이명박 정부와는 다른 리더십을 보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기에 ‘남북간 신뢰 회복의 첫 단계’는 비교적 무난하게 진행시켜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북대화와 비핵화 6자회담, 평화협정 논의가 맞물려 상호 촉진되는 선순환구조를 정착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남북관계 개선의 속도와 폭, 북.미간 현안에 대한 조정력,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박근혜 당선인의 의지 등이 중요한 가늠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한신대, 방송대, 상명대 등에서 강의했다. 1994년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통일문화연구소)에 전문기자로 입사해 10년간 주로 남북 현대사, 남북관계 분야 기획연재를 담당했다.

 KBS "현대사 다큐멘터리 극장",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등의 방송프로그램에 자문으로 활동했으며, 통일부.국가기록원 자문위원과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역사연구회에서 활동하며 『한국현대사』(1~4),『한국역사』,『한국역사입문』등의 집필작업에 참여했다.

저서로 『곁에서 본 김정일』,『인물로 본 북한현대사』,『변화하는 북한 변하지 않는 북한』,『북한사회 깊이 읽기』,『북녁의 사회와 생활』,『CEO of DPRK 김정일』,『KIM JONG IL of NORTH KOREA』,『남북현대사의 쟁점과 시각』 등을 출간했다.

공저로 『발굴자료로 쓴 한국현대사』,『실록 박정희』,『WWW.한국현대사.com』,『남북정상회담600일』,『朝鮮半島のいちばん長い日』, 『박병엽증언록1-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탄생』,『박병엽증언록2-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등이 있다.

현재 (주)이제이컨설팅 대표, 국민대 교양과정부 겸임교수,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집행위원, 경실련 통일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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