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자료실

제목

[이활웅자료실] <기고> 6자회담에 비춰진 한반도 주변정세

저자
이활웅
출처
통일뉴스
발행일
2004-03-01
<기고> 6자회담에 비춰진 한반도 주변정세 

이번 6자회담, 성공한 회담이라 보기 어려워

2월 25일부터 28일까지 4일간 베이징에서 열린 제2차 6자회담은 6월 말 이전에 다시 만난다는 원칙적 합의에 따라 그 준비를 위한 실무그룹을 구성키로 했다는 의장성명을 내고 막을 내렸다.

결렬되지 않고 회담의 연속성을 유지했으니 아쉬운 대로 성과가 있었다고들 서울에서는 평하고 있는 듯하다. 워싱턴 당국도 이번 회담에서 참가국들이 모두 한반도 비핵화를 바란다는 대원칙에 동의한 것이 성과였다며 만족을 표시했다.

그러나 회담의 핵심과제인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아무 진전도 없었으니 이를 성공한 회담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지로부터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측은 유연한 자세로 군사적 핵계획의 궁극적 폐기를 향한 선행 조치로 현존 핵활동을 동결할 용의를 표명했는데 반해 미국측은 시종 북한이 먼저 CVID, 즉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핵을 폐기한 후 북에 대한 경제지원을 논의할 수 있다는 고자세로 일관했다 한다.

그래서 중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은 신축적이며 합리적이었는데 미국은 너무나 경직된 자세로 일관했다면서 문제는 북한보다도 미국 쪽에 더 있다고 평했다한다. 또 일본측 인사들도 미국이 그가 주장하는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계획의 존재를 입증할 아무 증거도 내놓지 못한데 대해 실망을 표시했다한다.

6자회담 참가국들의 입지와 역할

어쨌든 중국은 회담주최국으로서의 위상을 보다 높이면서 한반도문제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는 잇속을 충분히 챙길 수 있었다. 러시아도 6자회담 덕으로 한동안 잃었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참여자격을 회복하였으니 내심 흡족할 것이 분명하다.

한국에서는 얼마 전 마치 미 국방부 매파들을 방불케 한 한승주 주미대사의 강성발언이 있어 회담에서 어떤 자세를 취할지 걱정스러웠는데 이수혁 수석대표는 북한 김계관 대표와 직접 접촉을 하는가하면 중국 및 러시아와 더불어 북한이 우선 핵을 동결하면 에너지 지원을 하겠다는 제의를 하는 등 중재노력을 하여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미국과 짜고 한 짓이 아니고 자주적으로 한 일이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일본은 철저히 미국의 종자노릇을 했다. 마치 똥 눈 놈이 방귀 꾼 놈에게 성내고 따지듯 이 기회에 일본인 납치문제를 거론하려했지만 호응을 얻을 까닭이 없었다. 하지만 2차대전 패전 후 국제정치무대에서 3등국 대우에 만족하던 일본이 한반도문제에 다시 주변강국으로 끼어 들게 되었으니 불만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과의 양자협상을 원했던 북한에게 6자회담이 달가웠을 리는 없다. 북한은 1994년 기본협정의 의무사항으로 2, 3년 내에 완공할 예정이던 중수로 2기의 건설을 중단했는데 그 대상으로 제공받기로 약속된 경수로 건설은 중단됐다. 또 NPT(핵확산 금지체제)에 복귀하고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받는 대가로 미국이 주기로 약속한 핵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공식보장은 받지도 못 한 채 오히려 핵공격 대상국으로 지목 받았다.

즉 줄 것은 다 주고 받을 것은 8년 간의 중유 공급외에 아무것도 못 받은 채, 협정위반의 혐의로 6자회담에 불려나와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런즉 6자회담에서 북한이 아무리 협상을 잘해도 결국 본전치기 이상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6자회담, 애초 미국의 의도대로 되지 않아

지금의 북한 핵 위기는 미국이 2002년 10월 북한이 우라늄 핵계획의 존재를 시인했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진 사태이다. 그 때 미국은 북한과의 양자협상을 거부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중국을 끼어 넣은 3자회담을 시도하다가 여의치 않으니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5자회담으로 확대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북한이 러시아도 부르자고 해서 성사된 것이 지금의 6자회담이다.

취임이래 국제적 비난을 무릅쓰고 일방주의 외교를 강행하던 부시가 북핵문제를 다시 들고 나오면서 유독 이 문제만은 그가 기피하던 다자외교로 다루고자 한 속셈은 여러가지다. 북한을 약속위반으로 몰아 1994년 10월의 북미 기본협정상 의무를 벗어나자는 것이 그 첫째이다.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장차 대북 경제지원이 필요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 짐을 한반도 주변국들에게 떠넘기자는 것이 그 둘째이다. 셋째는 미국의 대북 압살정책에 한반도 주변제국들을 동참시키자는 것이다. 그 외에 고이즈미 일 수상의 방북에 따른 북일접근을 막자는 것, 한국의 대북 화해정책에 제동을 걸고 남북간 갈등을 조장시키자는 것도 숨은 목적들이다.

6자회담의 성사로 미국은 첫째와 둘째의 목적은 이루었다. 그러나 셋째 목표는 미국의 뜻대로만 돌아가지는 않는 듯 하다. 왜냐하면 6자회담의 성사 및 정례화로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독점하던 미국의 지위가 주변제국, 특히 중국에 의해 많이 잠식되었다. 일본은 여전히 미국의 장단에 맞추어 대북압력의 고삐를 조이고 있지만 러시아는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독주를 좌시만 할 자세가 아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도 종래와 같이 무조건 미국을 위해 입안의 혀 노릇을 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외교는 받는 것과 주는 것을 자국의 이익에 가장 합치되도록 조정하는 것인데 부시는 주지는 않고 받기만 할 심산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자기 꾀에 넘어가고 있는 것이 6자회담에서의 미국의 꼴이 아닌가 싶다.

핵심쟁점에 아무 진전을 못 본 이번 6자회담을 미 행정부가 잘 된 것이라고 평하는데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부시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마당에 그의 외교적 실책을 자인할 수 없다는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비밀 핵개발 계획의 존재를 시인했다며 당장 큰 일이나 날것처럼 날뛰던 미국이 왜 6자회담에서 조속한 타결을 기하지 않고 북한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무리한 제안으로 시간을 끌고 있는지는 이해하기 곤란한 대목이다. 스스로를 "전쟁 대통령"이라고 공언한 부시가 궁극적으로는 외교협상이 아니라 무력으로 해결할 생각인지는 늘 경계하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남북 공조체제 구축 가능성 넓어져

제3차 6자회담이 6월말 이전에 열릴 가능성은 그 동안에 부시의 재선전망이 결정적으로 밝아지지 않는 한 현재로서 희박해 보인다. 회담의 연속성을 위해 실무그룹을 구성한다지만 본회담에서 핵심문제를 타협보지 못했는데 실무자들이 모여서 무슨 성과를 올릴 수 있겠는가?

6자회담은 부시의 작품이지만 진행과정에서 반드시 미국의 이익대로만 돌아가지 않는 괴물로 변했는지도 모른다. 이 회담에서 미국이 직면한 그의 한반도에서의 독점적 영향력에 대한 도전은 앞으로 보다 증대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런 배경 하에 남과 북이 공조체제를 구축해 가면서 주변제국에 대한 능동적인 외교역량을 발휘한다면, 동북아집단안보체제의 테두리 속에서 한반도의 안전이 보장되고 이에 따라 주한미군을 남북화해를 방해하기 위한 군사력이 아니라 지역내 안보에만 전념하는 군대로 탈바꿈시키게 되면 남북화해와 궁극적인 통일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2004년 3월 1일자 통일뉴스  기고문입니다)
작성일:2020-10-13 10:09:32 112.160.110.45